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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품는 능굴능신의 귀재 유비 ㅣ 삼국지 리더십 1
자오위핑 지음, 박찬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5월
평점 :
누구나 한 번쯤 읽기 도전을 해봤을 법한 책
<삼국지>. 나 또한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닳도록 보시던 그 모습에 호기심을 가지고 몇 번 도전을 했었다. 10권짜리 시리즈부터
만화까지 도전을 해봤지만 끝내 끝은 볼 수 없었다. 방대한 인물과 복잡한 서사구조, 선호하지 않는 전쟁 이야기까지, 짧은 이해능력으로는 인내심을
꽤나 요구했고, 결국 채 3권을 넘기지 못하고 번번이 포기했다.

이 책 <사람을 품는 능굴능신의 귀재 유비>를 보았을 때 처음
스쳤던 생각 역시 지난 시절 포기했던 <삼국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4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이 전부 유비에 관한
내용이라고 하니 삼국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는 할 수는 있을까 하는 염려가 앞섰던 것이다. 첫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하면서부터
걱정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낯선 지명, 생소한 인물들과 시대적인 상황 어느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고 겉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오른손에
느껴지는 책의 두께가 한없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그렇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해를 하든, 못하든 끝까지 읽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더딘 책장을 계속 넘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인물과 배경, 패턴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이 책은 사실 처음부터 책의 출판을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TV프로그램의 강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중국 CCTV가 고급 지식의 대중화를 모토로 기획한 인기 교양프로그램
<백가강단百家講壇> 강의가 그것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유비 뿐만 아니라 조조, 사마의, 제갈량 등 다양한 인물을 다루었고, 각 강의
역시 책으로 엮어 출판되어 있다. 여기서 핵심은 '인기 교양프로그램'이다. 인기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재미가 있다는 이야기이고 대중에게 쉽게
접근을 했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실제 강의를 듣고 있는 것과 같은 생생한 느낌이 든다. 자연스럽게 책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저자가 유능한 이야기꾼이었기 때문이었다.
두번 째 이유는 책의 구성에서 찾을 수 있다. 미약한
집안에서 출생하여 한 나라의 왕이 되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유비의 영웅 성장기를 연속극처럼 1강부터 16강까지 스토리로 연결시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매 강의를 통해서 유비는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면서 조금씩 리더로 성장해나간다. TV프로그램의 특성을 그대로 옮겨와 다음 편을
예고하는 형식으로 적용한 포맷도 다음 강의에 대한 기대감과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지루함없이 400페이지의 분량의 책을 읽어나갈 수 있게 만든다.
또한 '유비'라는 인물의 리더십과 처세의 방법, 성공할 수 있는 원인을 뽑아내어 진행하는데 연결이 억지스럽지 않고 일대기처럼 흥미진진하면서도
극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셋째, 중국 고전 관리 사상 전문가이면서 관리학 박사인
저자는 고전을 고전 속에 머물러있게 하지 않는다. 유비가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을 분석하면서 그 근거를 심리학, 관리학 등 다양한 현대의
학문에서 찾아 이와 접목해서 설명하고 적용한다.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박학다식한 저자의 설명은 그럼에도 전혀 어렵지 않다. '고급 지식의
대중화'라는 모토 그대로 대중의 눈높이에서 쉽고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유비의
외유내강형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카리스마를 가지고 이끄는 것이 아니라 약간은 우유부단해 보이는 모습이 보통 생각하는 리더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배경도 없고, 자원도 없고, 전쟁에서는 상대를 앞도할 정도의 능력도 부족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는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이 책은 과연 유비의 성공 포인트가 무엇이었는 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짚어준다. 목차는 그의 성공 요인을 집약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사람'이었다. 지금도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바로 '네트워크'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유비는 본능적으로 사람을 다루고 관계를 맺는
능력이 탁월했다. 이러한 능력 덕분에 위기의 순간마다 그를 받아주고, 도와주는 이가 있어 그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진심으로 대하기도
했거니와 상대에게 적재적소에 도움을 주고, 상대가 자신을 필요하게끔 만들어냈다. 그래서 유비의 주변에는 믿을 수 있는 인재가 많았던 것이다.
피를 나눈 형제 이상의 우애를 다졌던 관우와 장비가 있었고, 평생 그 옆에서 지략가 역할을 자처했던 제갈량, 법정, 방통 등이 그를 도왔다.
이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유비는 그들을 지지하고 지원해주었던 것이다.
"당시 탁주에서 유비는 이 세 가지 요소를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성격 좋고 감성지수가 높았으며
사람 모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말에 신용이 있고 약속을 중히 여겨 신임을 받았습니다. 조직이 있고 영향력과 호소력이 높아 남들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요소를 갖추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유비를 지지했고 마을의 많은 소년이 유비에게 의탁했던 것입니다."
-p.40
""무릇 큰 일을 이룰 때는 필히 사람을 근본으로 삼는 법[以人爲本]이오. 지금 사람들이 내게
귀부하는데 어찌 차마 버리고 떠나겠소.!"
저는 그동안 중국 고대 관리사상에서 뛰어난 관리자를 많이 연구해왔는데, 그 가운데 직접 '사람이
근본'이라는 말을 한 사람은 유비가 처음이었습니다." -p.245
사람의 마음을 먼저 얻고, 일를 도모하는 것은 평생
유비의 정치스타일로 일관되게 나타나게 된다. 여기에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 '능굴능신'의 전략이 더해지면서 유비는 소리없는 강자로 떠올랐던
것이다. '능굴능신'이란 고개를 숙여야 할 때와 적극 나서야 할 때를 능히 구분히 행동하는 전략이다. 감정을 다스리며 허리를 굽힐 수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비는 이에 능했고, 적과 동지가 하룻밤 사이에도 바뀌는 난세에서 당당히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전진과 후퇴를 거듭해가며 조금씩 자신의 입지를 넓히며
성장해가던 유비는 더딘 걸음이었지만 결국에 형주와 성도까지 손에 넣는다. 이때 정치적인 능력은 많이 원숙해졌지만 승리에 취해 마음의 평정을 잃은
실수를 저지른다. 성도를 차지한 후 부하들에게 성 안의 모든 보물을 취할 수 있도록 허한 것이다. 조운의 권고를 듣고서야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명령을 거두게 된다. 이 사건은 유비가 변해야 할 시점이 왔음을 알려준 것이다. 이제는 작은 단위의 통치 관념에서 벗어나 좀더 큰
조직을 이끌어 갈 사고의 변화와 감성이 아닌 제도의 경영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빼앗으면 이후 누가 섬기겠습니까? 유비는 이때 비로소 명령이 타당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조운의 권고를 받아들였습니다. 성도를 차지한 이후 유비는 절실하게 사고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었습니다. 파괴자에서 건설자로 사고의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p.348
이후 조직을 정비한 유비는 드디어 오랜 격전의 펼쳤던
조조와 한중전투에서 가장 완전하고도 중요한 승리를 거두었다. 30여 년의 힘겨운 분투 끝내 마침내 승리의 단맛을 맛본 것이다. 유비는 더 커진
조직을 이끌기 위해 한중왕으로 즉위하여 권위를 세우고, 인사를 단행하면서 기틀을 마련했다.
이렇게 절정의 리더십을 발휘하던 유비는 다시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이것은 결국 그의 목숨까지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생사를 함께 하기로 했던 관우가 전장에서 죽자 유비는 이성을 잃고
준비도 갖추기 전에 출장을 해 참패를 당한 후 그 충격으로 몸져 누운 뒤 결국 예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계속 정서적으로 안정을 느끼려면 심경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써 외부이 좋지 않은 정서에 쉽게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 일을 할 때 태도상으로는 몰입해야 하지만 심경상으로는 초탈한 마음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것이 긴장을 동반한 도전적인
업무를 완성하는 관건이다." -p.385
"여기서 유비의 군사 생애의 한 가지 법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을 지지하고
고무하며 권한을 주었을 때는 성공했고, 그가 대권을 잡고 스스로 "돌격 앞으로"를 외칠 때는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유비의 가장 뛰어난 성공 노선은 지지형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었지, 통제형 리더십이
아니었습니다.
-중략-
그렇다면 왜 이번 동정에서는 평소와 다르게 행동했을까요? 근본 원인은 그가 또다시 정서적인 동요를
겪었다는 데 있습니다. 흥분해 있었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판단능력을 잃어버린 것이지요. - p.426~427

맨손으로 시작해서 한 나라의 왕까지 올랐던 유비. 그
어떤 영웅보다 오랜 시간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게 만든 이유는 그가 출중해서도 아니고, 능력이 뛰어나서도 아닐 것이다. 사람을 근본으로
생각하는 바른 신념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 정도를 걸으면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선 자수성가형 영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실수도 하고 좌절도 겪는 보통 사람이었기에 2천 년을 뛰어넘는 시간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유비의 성공사는 그야말로 '풀뿌리 영웅의 성장사'였습니다. 그는 한미한 출신으로 문으로는
제갈량·방통에 미치지 못했고 무는
관우·장비·조운·마초·황충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삼분천하해 익주를 근거지로 천하에 군림했습니다.
유비의 신상에서 우리는 확실히 일반인을 뛰어넘는 리더로서의 재능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는 사람을 알아보는 데 밝았고, 덕망 높고 어진 사람을
예의와 겸손으로 대했으며, 인재를 중용했습니다. 사람을 의로 대하고 인의와 마음을 중시했습니다. 그는 형세에 잘 기대어 무대를 차지했고,
상대에게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부탁을 하면서도 시종 도의의 기치를 내걸었습니다. 이 모두는 유비의 특기였고 유비가 성공할 수 있던
기초였습니다." -p.442
이 책은 처세와 성공과 관련된 책을 읽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2천 년의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묵직한 재료에 능숙능란한 요리사의 격식있는 요리같은 완성도와 무게감이 느껴진다. 게다가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삼국지>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을 슬며시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