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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재석이가 열받았다 (양장) - 20만 독자가 열광한 <까칠한 재석이> 세 번째 이야기 ㅣ 까칠한 재석이
고정욱 지음 / 애플북스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까칠한 재석이..."시리즈는 익히 알고 있었다. 온라인 서점에서 스치듯 보기도 하고, 일반 서점에서 혹은 도서관에서 꽤 자주 마주쳤던 책이었다. '까칠한 재석이'가 왜 집을 나갔지? 어? 돌아왔네? 제목만 봐도 궁금증이 생긴다. 청소년 도서가 딱 내 수준에 맞아 즐겨보고 있던 터라 호기심이 생겼었다. 만화 같은 주인공, 까칠한 재석이의 일러스트도 흥미를 자아낸다. 그럼에도 이래저래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까지도 그 시리즈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벌써 세번째 이야기가 출간된 것이다.
[까칠한 재석이가 열받았다]
까칠한 재석이가 무사히 집에는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열을 받았단다. 이번에는 안되겠다. 기필코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드디어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와 첫대면을 하였다. 사실 이 시리즈가 궁금한 이유 중에 하나는 작가가 바로 '고정욱'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보던 인물이야기 책 중에는 고정욱 작가의 작품이 꽤 있다. 같은 인물이지만 더 무겁게 그리고 더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려내는 그의 필력에 감탄을 했던지라 작가의 다른 작품 역시 보지 않아도 믿을 수 있었고, 그래서 더 궁금하기도 했었던 것이다.
전작은 읽지 않았지만 각 권이 서로 다른 주제를 가지고 청소년의 관심사와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순서를 달리한다 해도 읽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인물에 대한 이해도나 공감은 아무래도 전작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급한대로 세 번째 책을 먼저 읽었다. 이번 이야기의 주제는 바로 청소년들의 성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가장 호기심이 왕성한 나이이다 보니 자칫 한 순간의 실수로 평생 지우지 못할 상처를 남길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시기가 바로 청소년기이다. 어른이 나서서 설명을 해준다고 해도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겪어보라고 둘 수도 없는 터 공감하고 스스로 경계하고 조심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또래의 이야기로 직접 겪는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 속의 인물들에게 감정이 이입된다면 직접 겪는 것 못지 않은 경각심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스토리의 힘은 그래서 부드럽지만 강하다.
책에서는 단순히 청소년들의 성적 호기심을 다루지 않는다. 성적 호기심에서든, 감정적인 외로움에서든 그것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서 놓아 버렸을 때 후에 감당하게 될 차갑고 무거운 현실을 객관화시켜서 보여준다. 물론, 잘못하면 이렇게 된다는 메시지가 아니다. 현재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적어도 그렇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결국 그 차가운 현실을 무조건 피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순간의 실수로 떨어졌을 때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나락이 아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보듬어 주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작지만 의미있는 한 발을 내딛는다. 책을 읽으면서 굳이 학교라는 울타리로 다시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공부를 하려면 검정고시도 있고, 다른 대안도 있는데 지나치게 기존의 틀을 고수하고, 마치 그게 정답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것은 상징적인 것이라는 알게 되었다. 사회를 바꾸기 이전에 아이들이 속한 작은 사회, '학교'를 먼저 바꿔나가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미혼모, 특히 학생 미혼모에게 가해지는 불공정 압력과 차가운 시선들을 학교에서부터 걷어 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을 때는 좀더 큰 범위의 사회도 조금씩 바꿔 나가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갖게 한다.
그리고 어른들의 직설적인 잔소리가 아니라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객관화시킬 수 있는 해법도 자연스럽게 제안한다.
"내 배부른 모습이랑 저 쓸쓸한 모양새를 보니까 정말 한심해. 도서관 다니고, 야자할 시간에 저러고 다니니까 우리 엄마 아빠가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겠어? 난 내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잖아. 내가 봐도 내 꼴이 미워. 미워 죽겠어."
네 아이는 할 말을 잃었다. 은지는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해서 보게 된 것이었다. 민성이의 영상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고등학생의 그것이 아니었다. 배가 불러 있고, 머리는 노랗게 물들인 채 밤거리를 헤매거나 우울하게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중략-
"은지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저런 거야. 영상으로 찍어서 자기 모습을 보잖아? 문제아들도 좋아지는 경우가 많아."
"왜?"
"자기가 사고 치는 걸 스스로는 못 보잖아. 그런데 막 애들 때리고 난동을 피우고 하는 모습을 찍어서 보여 주잖아? 그러면 갑자기 저게 나라는 인식이 팍 드는 거지. 그러고는 각성을 한대." --- p.123~4
아이들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모여서 동분서주 하면서 일을 풀어 나갈 때는 너무나 어른스럽고, 일사분란한 모습에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했지만, 현실적으로만 그려진다면 벌어진 상황에서 일은 전혀 진척이 없을 것이고, 그만큼 긴장감과 박진감도 떨어졌을 것이다. 아이들은 위기의 상황에서 친구를 돕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자신들의 '꿈'에도 한 발 더 다가가게 되는 선물도 얻는다. 타인에 '진심'을 가지고 몰두했기에 그 과정 속에서 '자신'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성'이라는데 주제를 한정짓지 않고 그들 앞에 놓여 있는 가장 위험한 지뢰 중에 하나로 다루고 있다. 자칫 실수로 그것을 밟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님을. 서로가 보듬어 안고 같이 가는 과정을 통해서 그들은 서로를 발견하고, 자신을 발견하며, 그리고 그렇게 성장해 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사천리로 해결되어 가는 과정에 자칫 너무 밋밋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예상치 못한 반전은 '역시' 감탄을 자아낸다. 왜 '까칠한 재석이...'시리즈가 사랑을 받았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내 전작이 다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