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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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었다.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방대한 분량을 숨도 쉬지 못하면서 심장은 쿵쾅거리고,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팔이 뻣뻣해질 정도로 긴장하면서. 한페이지 넘길 때마다 축축해진 손때문에 페이지는 우글거렸다. 책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들에게 말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냉정해지라고. 여기서 그만두라고. 독자인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주인공들은 계획을 감행했고,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한다.

 

그럴줄 알았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그래, 이제 어떻게 할거야? 나도 모르게 숨이 가빠진다. 너무도 큰 일을 벌이고 돌아온 동생을 마주대하듯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온갖 머리를 짜내지만 '진퇴양난'이다. 그렇다고 기브 업을 선언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책을 덮어버렸다.

도저히 그녀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차마 못보겠다. 이미 그녀들은 내 가족, 아니 나 자신이 되어 있었다. 한발 한발 그녀를 향해 달려오는 섬뜩한 위기를 더 이상은 지켜보기가 어려웠다. 현실로 나와서 심호흡을 한 후 잠시 숨을 고른다. 책 속에서 벌어진 허구라는 사실에 새삼 안도감을 느낀다. 마치 악몽에서 막 깨어나 현실을 느낄 때처럼.

 

도저히 안되겠다.

다시 책을 집어 든다. 그녀들이 위험에 빠져 있는데 그대로 둘 수가 없다. 얼굴을 가리고서도 손가락 사이로 흐릿하게 보게 되는 공포영화처럼 어떻게 해서든 결말은 봐야할 것 같다. 아니, 봐주어야 할 것 같다. 상황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어진다. 모든 것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긴다. 그래, 어떻게 해서든 이겨내. 포기하지 마! 마음 속으로 응원을 하면서 끝을 향해 함께 달려간다.

 

마지막 장을 넘긴다.

급격한 피로감이 몰려온다. 얼마 전에 봤던 영화 '끝까지 간다'를 보고 난 후 같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인생의 낭떠러지의 직전까지 몰려가는 상황의 긴장감.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도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역자의 말처럼 주인공의 관계, 사건의 발단은 이 영화를 모티브로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닮아 있다. 전혀 다른 결말,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영화가 머리 속을 빙빙 돌면서 그야말로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심장이 쫄깃해진다.

 

 

왜 죽여야만 했을까?

책의 주인공은 미술관 큐레이터를 꿈꿨지만 일이 제대로 안 풀려 현재는 백화점 외판부에서 특수 고객들을 상대하고 있는 '나오미'와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로의 삶을 살고 있는 그녀의 유일한 친구이자 대학동창인 '가나코'이다. 원하지 않는 삶, 무감각적인 일상을 이어가고 있던 나오미는 가나코가 남편에게 상습적인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기억 저 밑바닥에 잊고 있었던 같은 고통을 당했던 엄마를 떠올린다. 그리고 늘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던 자신과 언니의 자매의 모습도. 가나코의 고통은 곧 그녀 자신의 고통이었다. 힘없던 어린 시절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2층으로 피해서 도망가는 것밖에.

 

 

처음 사실을 알았을 때 나오미는 가나코에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이혼을 권했다. 그러나 이성을 잃고 달겨드는 짐승을 피하기에 법과 제도는 그야말로 허울 뿐일 수 있다. 후에는 그녀도 그 허울을 이용하지만. 어쨌든 결코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 주지 못하는 이상 시도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을 그녀는 맞으면서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만이 만들어 놓은 세계로 도피하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남편을 이 세상에서 '제거'하기로 합의한다. 더이상 나오미는 2층으로, 가나코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로 도망가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일까?

뉴스에서 보도되는 수많은 살인사건의 정황들을 보면 선과 악이 뚜렷하다. 피살자는 선이고, 살해자는 악이다. 살해자는 천인공로할 악의 존재로 비춰진다. 물론 정황에 따라서 정당방위, 정상참작의 경우도 많다. 그러나 살인을 하고, 태연히 저녁을 먹고, 가구를 바꾸며 일상 생활을 즐기는 장면은 분명 뉴스로 재조합해 볼 때는 인면수심의 행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책을 읽은 독자라면 안다. 그녀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그렇게 잠깐의 행복을 만끽했던 이유를. 그녀를 응원할 수밖에 없어진다.

결국 선과 악은 관점의 차이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나오미의 고객이자 친구인 중국인 리사장은 악이 선으로 바뀐 인물이고, 그녀들을 도왔던 린류키는 선이 악으로 된 경우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악을 제거하며 희망을 얻었다. 그러나 그 희망이 선일지 악일지는 모른다. 선일 수도 있고, 악일 수도 있다. 결국 선과 악이라는 것는 따로 존재하지 않을 지 모른다. 그것을 해석하는 틀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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