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음악과 관련된 책을 심심치 않게 읽게 된다.
음악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오는 음악을 듣다보면
음악도, 글도 함께 살아 움직이며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은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공간에서 글과 음악을 여유있게 즐기는 것이
너무 좋아서 의식적으로 음악과 관련된 책을 찾아 읽곤 한다.

[클래식 수업]을 처음 봤을 때는 가장 먼저 읽고 싶어졌던 이유는
표지와 제목
때문이었다.
고풍스러운 디자인에
깊은 암녹색이 시선을 확 끌었고,
뭐니뭐니 해도 [클래식
수업]이라는 제목이 원형적이면서도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면서 꼭 읽어봐야 할 것만 같았다.
저자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내용은 대충 짐작이 가지만
그럼에도 별다른 정보없이 책에서 느껴지는 풍미만으로도
충분히 품격이 느껴졌다.

책은 생각보다 두꺼웠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1~12월까지의 챕터, 36꼭지에
작곡가, 곡, 특정 주제 등을 가지고 자유롭게 서술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챕터 마지막에는 클래식 음악과 관련된 읽을 거리 등을
박스 형식으로 구성한 lesson이 잔잔한 재미를 준다.

처음에는 클래식 음악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을 많아 받아서
'다양한 상황에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 추천서'를 목표로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늘 그렇듯 개인의 취향은 서로 다른 입맛인 것을.
각각의 경험과 시간, 공간을 하나의 잣대로 맞춘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결국 저자가 진심으로 감동을 느낀 순간을 전달함으로써
독자도 함께 그 순간으로 들어가 체험하면서
클래식을 즐길 수 있는 컨셉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한다.
그렇게 힘을 빼고 편안한 마음으로 진정성있게 쓰여진 글은
읽는 이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정말 저자가 느끼는 느낌, 감동 포인트가 그대로 살아 느껴지고,
빠르고 느린, 강과 약이 물흐르듯이 전달되면서
함께 곡을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정말 저자가 이 곡을 좋아하는구나,
이렇게 느끼는 구나 하는 그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12월로 챕터가 나눠져 있지만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고,
마음가는 장부터, 마음가는 주제나 곡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글 하나하나가 속이 꽉 찬 열매처럼
촘촘하게 눌러담았기 때문에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읽을 수 있는 글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아까울 정도다.
처음 느꼈던 무게감은 오히려 가벼움으로 바뀐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감탄한 부분은 클래식의 거의 문외한이
내가 읽어도 쉽게 술술 읽힌다는 것이다.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음악회의 해설도 하고, 지면의 컬럼을 쓰기도 하고,
현재 팟캐스트까지 진행하는 그의 경험이
남달리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는데 이력이 났을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눈높이를 확 낮춰 독자의 시선으로 보는
그의 겸손한 성품도 한 몫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 쉽게 읽히지만
한 편으로는 진도가 안나가고, 머리에 남는 것이 없어서
'어,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음악이 없다는 것을.
음악을 얘기하는데 음악없이 설명으로만 듣고 있으니
그 음악이 머릿 속에 있지 않은 이상 공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마치 음식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그 음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나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 음식의 얘기를 듣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쉽게 쓰여졌다는 하지만 [클래식
수업]이라는 제목에 맞게
곡 해석은 악장별로 자세하게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무의미한 읽기를 깨닫고는
바로 검색해서 음악을 찾아 틀어놓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정말 생생하게 그 음악이 느껴지는 것이다.
미처 모르고 지나쳤던 부분, 악기들끼리의 교감,
곡에 담겨 숨쉬는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풀어 헤쳐지는 느낌이었다.

모차르트의 곡이 이렇게 아름다웠는 줄 몰랐다.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멜로디라서 지금까지도
압도적인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설명을 듣고 들을 때와 그냥 감성을 따라가며 들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클라리넷과 현악4중주가 힘을 합친 클라리넷5중주 A장조 K581
Quintet A major for Clarinet
and Strings, K.581은 당시로서는 등장하기 힘들었던 편성이었을 뿐 아니라 원숙기에 다다른 작곡가의 능숙한 실내악적
기법을 만끽할 수 있는 걸작이다.
-중략-
1악장은 매우 성악적인 주제들이 쓰인 소나타 형식을 독주 악기격인
클라리넷과 현악기들의 입체적인 대화가 훌륭하다. 느린 2악장은 3부 형식이며 1악장과 대조적으로 클라리넷이 먼저 주제를 연주한다. 악기 간
다양한 리듬으로 경쟁하듯 나타나는 음형들이 재미있다. 두 개의 트리오로 된 미뉴에트의 3악장은 악기가 서로 침묵을 지키며 양보하여 주인공 자리를
골고루 나눠 갖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주제와 네 개의 변주인 4악장은 명쾌하면서도 탄력적인 주제로 시작되며, 모든 변주를 마친 뒤 종결부에
해당하는 아다지오(매우 느리게) 파트가 잠깐 등장하다 다시 알레그로의 코다도 끝맺는다." --- p88~89
모차르트는 플루트를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도
"저는 풀루트를 듣고 있으면 금방 머리가 아파옵니다"라고 쓸 정도 였다고.
모차르트는 플루트가 음량과 주법에 문제가 많아
조만간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테오발트 뵘이라는 사람이 개량에 성공함으로써
지금까지 사랑받는 악기로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그는 플루트 작품을 여럿 썼고,
그 곡들이 하나같이 걸작들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하기 싫어 억지로 쓴 작품들마저 이런 걸작이라니 말이 안 나올
지경이지만 플루티스트들이 무한 감사를 보내야 할 작품인 동시에 모차르트의 작품 중에서도 베스트 들어가는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임이 틀림없다.
풀르 애호가였던 드 장에 대한 호감이 듬뿍 담긴 플루트4중주 1번 D장조 K285 Flute Quarter No. 1 D major,
K.285의 1악장은 음색이 빛나는 플루트가 상승곡선을 그리는 1주제로 시작하여 현악기가 연주하는 2주제를 지나 전개부가 시작되기
전 새로운 부주제가 등장하여 다채롭다. 아다지오(매우 느리게)의 2악장은 B단조로, 현악기 피치카로 반주하는 위에서 노니는 풀루트의 센티멘털한
가락이 참으로 매혹적이다. 3악장은 명랑하고 희극적인 분위기로 론도로, 플루트가 시종 기교적으로 활약한다. 중간부 새로운 요소가 등장할 때
비올라의 활약도 뛰어난데 악기 간의 절묘한 균형, 작은 악구도 놓치지 않고 적재적소에 사용한 천재의 꼼꼼함이 돋보인다. ---
p.92~93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20세기 초에 발표된 낭만주의의 마지막 불꽃처럼 느껴지는
곡이다. 교향시 《핀란디아》Finlandia로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가 된
시벨리우스는 낭만파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작품 목록에 '결정적 한 방'이 될 바이올린 협주곡을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 그만큼 작곡가의
정성이 느껴지는데 우선 오케스트라안에서 잘게 나뉜 앙상블과 다양한 조합에서 나오는 특별한 음색, 솔로와의 변화무쌍한 대화가 흥미로우며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로 형식에서도 파격적인 구성을 보인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북유럽 특유의 어두운 서정성과 묵직한 맛이 잇는 관현악법이 감상의
포인트다.
신비스러운 악상의 테마로 조용히 문을 여는 1악장은 서두에 등장하는
바이올린 솔로의 멜로디가 기본 주제, 오케스트라가 B플랫단조로 연주하는 주제가 두 번째 주제인데 그 외 여러 음악적 재료가 랩소디풍으로
전개된다. 장대한 카덴차가 곡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아다지오(매우 느리게)인 2악장의 주제는 무겁고 장중한 동시에 북구의
맑은 노래가 느껴진다. 서두르지 않는 행보로 때론 오케스트라에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에서 더 큰 스케일이 만들어진다. 3악장은 거칠고
투박한 기분의 3박자 춤 곡인데 작곡가는 농민의 춤곡을 그대로 나타냈다. 신나지만 들뜨지 않는 1주제는 바이올린으로, 여기에 화답하는 2주제는
오케스트라가 먼저 연주하며 서로 자리를 바꾸는 동시에 음폭이 확장되는 모습을 보인다. 두꺼운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뚫고 종횡무진 활약하는 솔로
바이올린의 활약이 극적이며 멋지다." --- p.135~136
음악을 찾아가며 듣다보니 시간이 상당히 많이 소요된다.
이전 곡이 너무 좋아서 끄지 않고 그냥 다음 꼭지로 옮겨가 읽는데
영 덜그럭거리며 느낌이 살지 않는다.
바로 다시 해당 음악을 검색해서 들으며 읽노라니
이제야 비로소 안정감이 느껴지고 음악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어차피 한 번 읽고 말 수는 없을 것 같다.
천천히 음독하며, 음미하며 반복하며 들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읽고 들으며 클래식 수업을 받다보면
클래식 음악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가을, 정말 오랜만에 고마운 은사님을 만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