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 교양학부 생각하는 힘의 교실 - 흔한 머리에서 모두가 반하는 기획을 만드는 생각의 기술
미야자와 마사노리 지음, 최말숙 옮김 / 북클라우드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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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는 숨을 막히게 한다.
주제가 주어지고,,, 그 공간을 메꾸어
결과물을 만들어야 할 때
막연하고 막막한 마음은 뭐라도 끄적이게 한다.
그렇지만 같은 자리만을 맴돌다가
마감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모양새만 갖춘
진부한 결과물을 마주하게 된다.
때론 그럴 듯 해보이거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지?
하고 스스로를 놀라게 만드는 결과물을
의외로 만들어 낼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우연이고 대부분은 누구나
뻔히 생각해낼 수 있는 것들이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변명을 하며
결과물에 당위성을 부여해본다.
그러나 스스로는 알고 있다.
우연은 거듭되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는 또 벽에 부딪히고 말 것이라는 것을.
쥐어짜도 나오지 않는 아이디어에
스스로를 책망하며 스트레스에 짓눌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아주 오랜만에 자기계발서를 읽게 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직종,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무언가를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일은 직장을 다니는 직장인이라면
흔히 겪는 일일 것이다.
나 역시 뭔가 일이 주어질 때마다
백지 공포증에 사로 잡힌다.
불안한 마음에 일단 시작해보고
이리저리 방향을 찾는 편이라
우왕좌왕 헤매는 일이 많다.
그렇게 윤곽을 찾아가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힘들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고 힘들기만 하다.

 

 

[도쿄대 교양학부 생각하는 힘의 교실]

도쿄대에서 임상으로 증명된 강의이고,
아이디어를 체계적으로 만들어내는
명쾌한 생각의 기술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읽게 된 것이다.

 

 

책을 읽어보니 정말 설명도, 구성도, 내용도 명쾌했다.

구성도 비교적 탄탄했으며
실제 수업에서 활용되고 있는 만큼
기능성, 실용성도 꽤 높았다.  
당장 활용해보고 싶은 것들도 많았다.

 

 

이 책의 핵심은 '리본사고'이다.

이 틀에 대한 개념 설명부터 적용해보는 연습을 한다.

 

"'그렇다면, 리본 사고를 바탕으로 한 사고 프레임이나 과정은 왜 배워야 할까?'
이런 의문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모델이 전혀없으면 새로운 것을 생각할 때 어디서부터 손을 대면 좋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리본 사고는 인풋-콘셉트-아웃풋이라는 사고의 3단계로 구성됩니다.

 

인풋 사실(정보)에 대해 생각한다.

콘셉트 해석에 대해 생각한다.
아웃풋 해결책에 대해 생각한다. 

 

리본 사고의 3단계는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기 위한 기본 형식입니다. 단계별로 사고하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관점이나 생각하는 방법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3단계의 흐름을 항상 의식함으로써 지금까지처럼 막연하게 생각하는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 어느 단계에서 사고하는지'가 명확해지므로 어떻게 사고하면 좋을지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리본 사고를 통해 여러분이 익혔으면 하는 '나만의 사고법을 창조하는 방법'입니다." --- p.31~32

 

마치 생각한다는 무형의 과정을

공식화해 체계적이고 기능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리본사고'이다.

문이 바뀌면, 답도 바뀐다.

질문의 중요성이야 말해 무엇하랴. 
인풋의 과정은 바로 그 질문을 바꾸는 과정이다.
어떤 재료를 준비할 것인가.
어떻게 재료를 얻을 것인가.
다양한 조사방법, 접근 방법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진다.

 

 

 

그중에서 '마음 속 수치를 끄집어내는 탐색형 정량조사'는

조사를 당하는 사람조차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던
무의식의 생각들을 끄집어내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조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본질을 새로운 각도로, 색다른 관점으로도
볼 수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리본의 묶인 부분인 '콘셉트'는

전체를 가로지르는 구조화된 개념, 즉 핵심 주제를 말한다.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수집한 방대한 양의 정보(인풋)을 재통합해
하나의 콘셉트로 승화, 집약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행할 수 있는
사고모드를 비롯 다양한 방법을 알려준다.

 

 

마지막으로는 아이디어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아웃풋' 단계이다.

 

"아웃풋을 요리 과정에 비유하자면 마지막으로 요리를 그릇에 담는 플레이팅에 해당합니다. 이 단계에서 소스를 뿌리거나 고명을 얹어 음식의 풍미를 더할 수 있고, 어떤 그릇에 어떻게 담아 보여줄지를 정해 시각화할 수 있습니다. 즉, 인풋(재료 수집)과 콘셉트(조리)에 의해 완성된 요리를 최종적인 형태로 빚어내는 과정입니다.

아웃풋 과정에서는 '사고의 폭을 넓혀서 구체화하는 작업'을 수행합니다. 압축된 콘셉트를 확장시켜 형상화하는 것입니다. 이때 단순히 넓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p.167

 

아이디어를 변형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하는 힘의 교실에서는

유명한 스캠퍼 일곱가지 체크리스트
대체, 결합, 응용, 수정 확대/축소, 다른 용도로 사용, 제거, 반전 재배열을
네 가지로 집약해서 활용한다고 한다.

 

관점을 바꾼다.

시간과 공간을 바꾼다.
형태를 바꾼다.
의미를 바꾼다.

 

실제로 적용해보면 재미있는 결과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는 생각하는 힘의 교실에서 나온

실제 구체화된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소개하는데
신선하고 탄탄한 새로운 발상에 절로 감탄을 하게 된다. 

 

 

 

머리가 좋아서도 아니고,

톡톡 튀는 개성이 넘쳐서도 아닌
인풋->콘셉트->아웃풋이라는
기능적 과정에 의해서 만들어낸 결과이니만큼
누구나 적용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고
해볼만하겠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그렇지만 놓치지 많아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협업.
혼자보다는 함께가 더욱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여기서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마후네 후미타카 도쿄대학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는 말한다.

 

"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복잡한 시대에 가장 필요한 세 가지 능력,

창조성, 협동성, 실천성을 배울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이 어떤 길을 가든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책을 끝까지 읽고 결과물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그 말에 100% 공감하게 된다.

실제 참여해보면 가장 좋겠지만
책으로라도 그 과정을 충실히 따라가다 보면
조금씩 익숙해지고 어느 정도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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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이영훈 교수의 환상의 나라 1
이영훈 지음 / 백년동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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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클립 한주한책 서평단 책으로여는길입니다"


이 책을 받고는 한동안 읽지 않고 쳐다보기만 했다.

역사는 팩트지만 어디를 조명하고 부각시키느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지니 가공 이상의 위험요소가 따른다.

내가 역사를 잘 알거나, 연구를 하는 입장이라면

아마 그 주장이 궁금해서 좀더 집중해서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책표지 뒷날개의 '대한민국 정체성 총서' 시리즈의

제목 리스트를 본 순간 

이 책을 집중해서 읽을 마음을 접어버렸다.

 

[세종은 과연 성군이가] 라는 책 제목의 질문에는

세종이 성군이라고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럼, 왜 그런 주장을 하는 지 그 관점에서 읽어보기로 했다.

 

사실 처음 책을 죽 훑어보면서 일단 신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책 정도의 활자크기와 180페이지 정도되는 분량의 글은

얼마 되지 않은 내용을 억지로 늘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대한민국은 자유인의 공화국이다'라는 챕터는 또 뭔가.

세종이 대한민국의 시각과 기준에 맞지 않다고 해서

성군이 아니라는 얘긴가.

저자가 주장하는 성군의 개념과 기준은 또 뭔가.

조선시대의 정치 중심에 있던 세종이

현대의 사상과 관점에 맞지 않은 정치를 했다고 해서

성군이 아니라는 것인가.

그의 공과 업마저 없던 것이 되는 것인가.

세종의 잘한 점은 미리 공부를 하고 오란 것인가.

양쪽을 모두 균형있게 다뤄줘야 그나마

명군이었는지 악군이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성군이라는 모호한 용어에 정의도 기준점도

제시하지 않고 그간 너희들은 잘못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과만(실은 그것도 정확한 근거인지 확실치 않고

이미 논란이 된 것도, 결론이 아직 나지 않은 것도 있다)

나열해놓고 독자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세종도 사람이고, 과도 있을 수 있고,

그로 인해 후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역사적인 지식이 부족하고

다른 자료를 비교해봐야 하기에

자세한 내용에 대한 비판과 반론은 하지 않겠다.

다만, 저자가 주장을 하면서도 단편적으로 접근한 점,

한 줄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극적인 예나 크게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예들로

분량을 채운 점 등은 읽는내내 인내를 필요로 했다.

실은 5장에 실린 4페이지 정도의 요약한 글이

이 책에서 주장한 내용의 전부다.

 

1. 15~17세기 전체 인구의 3분의 1은 노비였다.

이렇게 노비가 팽창하게 된 데에는 세종의 역할이 컸다.

노비가 주인을 고소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박탈했고,

노비와 양인의 결혼을 방임했고,

비와 양인 남자의 소생을 노비 신분으로 돌려

노비제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2. 기생 신분을 세습시키고 기생제를

창출한 군왕이 세종이었다.

세종이 창출한 기생제는 20세기 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원류를 이루었다.

 

3. 하늘에 대한 제사를 폐지하고 명의 황제를

섬김에 있어 성과 예를 다한 사대주의를 추종했고

25일상을 폐지하고, 3년상을 지냄으로써

중앙군제를 약화시켰다.

 

4. 훈민정음은 일반 백성이 아닌

조선의 지식인이 중국어를 보다 정확히

구사할 수 있도록 고안된 문자였다.

당대의 보편적 국제질서로서 중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문화정책이었다.

 

단편적인 근거만으로 주장하는 것도 회의적인데

역사가는 자료의 부족으로 많은 추측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더더욱 못미덥게 만든다.

 

무엇보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의도에 대한

의심을 제기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세종의 한글 창제부터라고 칭송하였다. 과연 그러한가."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한글창제가 세종의 애민정치의 대표적인 산물이라는 것은

저자도 공감하듯 학계와 국민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굳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그자리에

끼워넣은 것은 무슨 의도인지.

아무리 이 책이 저자의 강연자료를 보강하여

출간했다고 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심히 거슬렸다.

이 책이 저자의 주장을 피력하는 논설문이가?

 

세종의 공과 오를 균형있게 객관적으로

좀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며 주장했다면,

'환상'이라는 이상한 철학을 들이밀거나

'건국헌법'과 같은 뉴라이트의 발언이나

사상을 끼워넣지 않았다면,

이 책을 좀더 진지한 시선으로

면밀히 따져보며 읽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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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3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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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분 정도의 길이로 딱 출근길에 듣기 좋아

'클래식 클라우드 김태훈의 책보다 여행'이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즐겨듣고 있다.

책에 관한 팟캐스트 방송이 은근 많지만

평소 좋아했던 진행자라 듣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그 구성과 내용이 너무 좋아 방송이 업로드되는

월수금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책을 보다 여행을 한다는

말놀이같은 중의적인 제목의 '책보다 여행'은

책의 주제 인물을 선택하여 그 인물을 알 수 있는 키워드,

작업실, 그리고 그 인물의 삶의 동선을 좇는 여행지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인물에 따라 약간의 구성차이는 있지만

이 큰틀을 가지고 작품과 인물을 탐구하는 프로그램이다.

처음 시작부터 방송을 먼저 시작하지만

이 내용을 기반으로 하는 책이 시리즈로 출간될 것이라고

방송 시작부터 얘기했었는데 드디어!!!!

3종이 출간된 것이다. 

 

http://www.podbbang.com/ch/13842

 

셰익스피어, 니체, 클림트.

각 인물별로 전문가가 집필을 하고 여행지를

직접 취재하고 다녀와서 집필을 하는 형식이다.

셰익스피어는 방송보다 출간이 먼저되었고,

니체와 클림트는 작년 이맘 때쯤 방송이 되었었다.

 

 

이 시리즈 중 가장 먼저 읽게 된 책이 [클림트]이다.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클림트를 소개한 책이다.

벌써 10년 전쯤인데 한국에서 열렸던

클림트 전시회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클림트란 화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때였지만

눈이 부실만큼 화려한 색감과 관능적인 그림이

인상적이어서 그 화려함에 압도당했던 느낌이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다른 화가들과는 느낌이 참 달랐던

그래서 유독 잔상이 많이 남았던 화가였다는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방송을 들으니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책으로 만나는 클림트는 어떨까

도착하기도 전에 떨리고 설레었었다.

 

고전은 나이에 따라 읽을 때의

느낌과 감동이 다르다고 한다.

이는 그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

같은 그림이라도 언제 보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감동의 포인트가 달라지는 것 같다.

10년 전에 봤던 클림트의 그림과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 보는

클림트 그림의 느낌은 많이 달랐다.

더 깊게 더 짙게 화가의 고민과 생각들이

전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게 세월의 안경을 쓰고 바라본

클림트의 그림들은 10년 전보다 더

가슴을 요동치게도 하고 뻐근하게, 슬프게도 만들었다.

이렇게 세대의 결에 따라 다르게 전달되는

클림트의 그림의 힘은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고

오늘 하루도 더 나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치열한 자기와의 사투를 벌이는 

화가의 노력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에는 그런 노력의 과정과 흔적들이

그대로 작품에 담겨져 있다.

 

 

[클림트] 책은

클림트의 작품이 쇠락해가고 있는 시점에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신예작가 '에곤 실레'가 그린

<푸른 작업복을 입은 클림트>라는 그림으로 시작한다.

그림에 대한 열정,

한 여성을 평생 사랑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던 가정,

수많은 여성과 끊이지 않았던 스캔들,

틀과 파격 사이를 넘나들었던

클림트의 마력이 집약된

클림트, 그대로의 클림트 같다.

다음으로 클림트의 명실공히 대표작,

<키스>가 양면을 가득 담겨있다.

 

 

이어서 클림트의 예술과 생애를

만나러갈 수 있는 루트가 소개된다.

예술가 클림트의 출발점 '부르크 극장'부터

거장의 마지막 작업실 '클림트 빌라'까지

총 8군데의 여정을 담고 있다.

 

 

여기에 클림트 영감의 원천 '아터 호수'까지

추가한다면 클림트를 제대로 만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하게 변화에 차단된 빈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클림트이기에 그의 예술의 여정을 좇는 일은 단순해보인다.

이렇게 견고한 틀안에서도

오히려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새로움을 찾아내고 작품 속에서 독창적으로 풀어낸 것을 보면

그의 천재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리적인 이동없이도 그는 자유로운 정신으로

단단하기만 했던 오스트리아 빈의 한복판에서

예술의 혁신을 이뤄낸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클림트의 삶과 그림의 여정은 빈의 클림트 빌라에서 시작해 부르크 극장과 빈 미술사 박물관, 빈 분리파 회관인 제체시온을 거쳐 이탈리 라벤나의 산비탈레 성당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빈 벨베데레 미술관과 빈 시립미술관, 아터 호수의 클림트 센터와 클림트 트레일을 거쳐 빈 응용미술관과 레오폴트 미술관으로 마무리된다. 이 공간들은 빈과 아터 호수, 라벤나로 이어졌던 나의 기행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 p.16~17 <프롤로그 中>

 

여행지를 따라 클림트를 좇는 여정이지만

한 면 혹은 두 면 가득 담겨져 있는

클림트의 그림들과 그에 대한 깊이있는

해석들을 보노라면 마치 화집을 보고 있는 것 같다.

클림트의 그림에 관해 언급하는 거의 모든 그림이

감각적으로 실려있어 글을 배제하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보는 즐거움도 준다.

 

 

 

특히나 시대별로 두드러진 변화를 보이는

클림트의 작품 세계의 흐름을

면밀하고 세심하게 소개해준다.

10년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황금시대,

자포니즘 영향의 원색 장식 등장 시기,

그리고 아터 호수의 풍경화의 변화,

전성기의 작품과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던 때의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을 비교 분석하면서

클림트의 명은 물론 암까지

그 안에 담겨있는 사상과 철학를 세밀하게 다룬다.

 

 

 

"영감으로 가득 찬 1900년대 초반의 풍경화에 비하면 1910년 이후의 풍경화들은 한층 더 장식적이고, 반대로 클림트의 개성이 그만큼 줄어든 듯한 느낌을 준다. (중략)

1916년 작품인 <닭이 있는 마당 풍경>(238쪽)의 장식들은 이즈음 그가 그린 초상화의 의상 장식들과 상당히 비슷하다. 그리고 먼거리에서 본 풍경을 그린 초창기 풍경화에 비해 이 시기의 그림들은 가까이에서 바라본 정경을 담았다. 클림트의 풍경화들은 전성기를 지난 화가의 쇠락의 징후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그림을 채운 것은 오직 정교한 장식, 장식, 장식뿐이다." ---p.237

 

 

"스타일과 장식, 시간과 분야를 막론하고 클림트 작품의 핵심은 늘 이 두 가지였다. 어떤 그림이든 클림트의 작품은 그 전의, 그리고 그 후의 누구와도 닮지 않은 클림트만의 분명한 개성이 있다. 그리고 빈 분리파 창립 이후 클림트가 그린 모든 그림의 핵심적 요소는 장식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초상이든 풍경이든 장식은 클림트 그림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개입한다. (중략)

그리고 1910년을 기점으로 클림트의 그림은 달라진다. 한때 그의 팔레트를 가득 채웠던 황금빛은 사라져다. 장식을 포기하지는 못했지만, 이제 그의 그림은 원색의 장식들, 기묘하고 동양적인 장식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림의 인상들은 한층 어둡고 철학적이며, 삶과 죽음의 알레고리를 보여주는 듯하다. 유난히 빠른 나이에 성공했던 클림트는 이제 화가로서 더 이상 올라갈 길이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인기는 점점 더 높아졌고 해외로도 명성이 알려졌지만 그 어떤 성공도 다가오는 종말을 이길 수는 없었다." ---p.270~271

 

클림트를 얘기할 때 '여성'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이다.

"여자가 없는 클림트는 상상할 수가 없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그는 모델들과 숱한 염분을 뿌리며

수많은 자녀를 낳을 정도로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뮤즈와 같은 존재 '에밀리'와

평생을 함께 했지만 끝끝내 결혼은 하지 않는

독특한 관계를 유지했다.

 

 

 

"클림트는 인간관계에서 상대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원초적인 강렬함 때문에 클림트가 등장하면 좌중의 사람들이 술렁이곤 했다. 그러나 보다 내밀한 관계를 들여다보면 클림트는 오랫동안 여성들과의 관계에 얽매여 있었다. 특히 그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성과는 끝내 그 관계를 완성하지 못했다. 어쩌면 클림트가 그린 매우 에로틱한 스케치들은 그가 그 여성과의 관계에서 얻은 좌절과 고통을 비뚤어진 방식으로 표현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클림트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여성에게결국 행복의 왕관을 씌워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여성의 품에서 종말을 맞는 특권을 누리지도 못했다." 미술사가 헤르만 티에체가 1918년 쓴 클림트 부고 기사의 일부분이다. ---p.207~208

 

당시의 여성으로는 드물게 에밀리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있는 여성으로 백 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지금으로 말하자면 CEO이기도 했다.

부인이라는 위치가 남편의 소유로 규정되던 시기이니

누군가의 부인으로 만족하고 살기에

에밀리는 자아가 강했는지도 모른다.

여러 여자들과의 관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결혼이라는 제도권으로 들어가길 거부했던 것은

에밀리의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클림트 옆을

평생, 죽는 순간까지도 곁에서 지켰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클림트 예술의 키워드'라는 제목으로

클림트 예술을 키워드로 정리해주고 있다.

책을 읽은 독자라면 한번 더 깔끔하게 정리가 되고,

아직 읽지 않은 독자라면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책을 읽게되면 더 이해가 쉬워질 것이다.

 

 

다음으로는 '클림트 생애의 결정적 장면'을

연대순으로 정리해두었다.  

본문에 실리지 않은 가족들의 사진과

사건과 관련된 사진들도 볼 수 있는 소소한 재미를 준다.

 

 

클림트의 뎃생 초상화로 시작했던 책은

클림트의 황금시대의 개막을 알렸던 작품

<베토벤 프리체>의 스케치로 마무리한다.

절정의 시작을 시작하는 장면.

오롯이 선으로 표현된 스케치일 뿐임에도

시선을 빨아들이는 엄청난 파워가 느껴진다.

 

 

생각해보니 얼마 전 우연히 EBS에서 방영했던

<우먼 인 골드>라는 영화를 봤었다.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이라는

작품을 둘러싼 개인과 오스트리아라는 국가간의

소송을 다룬 내용이다.

영화를 볼 때만 해도 예전에 갔었던

'그 전시회의 화가....?'라는 생각으로 봤었는데

불과 몇 달 사이 또다시 클림트를 방송으로,

책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찾다보니 이달 중순부터

클림트의 작품을 이용한 

미디어아트 전시회가 열린다고 한다.

실제 작품은 아니지만 엄청난 흡인력을 가진

클림트의 작품들이 어떻게 구성될 지 궁금해진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봐야지.

 

평소 즐겨듣던 방송의 출간 첫 번째 책으로

'클림트'를 만날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어렸을 때 집에 있던 세계문학전집에는

뒷부분에 꽤 길게 작가의 일생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실제 소설보다는 작가와 관련된 정보를

더 재미있게 보곤 했는데

이 책의 컨셉이 바로 그런 형식이 아닐까 싶다.

작가를 알고 작품을 보면 더 이해가 잘되고

더욱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즐겼던 나만의 보물창고 같았던

그런 내용들을  이렇게 책으로 만나볼 수 있다니

정말 기쁘고 반갑기만 하다.

클림트를 만났으니 이제

니체와 셰익스피어를 만나러 가야겠다.

하루  빨리 다른 인물들도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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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물로 자란다
정강현 지음 / 푸른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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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의 국민적 공분이 한참이었던 2016년 말.

처참하게 무너진 현실을 뉴스를 통해서 한참 확인하던 시기.

이전까지는 오후 5시에 특별히 뉴스를 볼 일이 없었지만

그때는 뉴스라도 틀어놓지 않으면 

황당하고 답답한 상황에 화병이라도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보기 시작했던 jtbc의 <정치부회의>.

뉴스를 쇼처럼 재미있게 전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했다는

이전에는 없었던 독특한 형식의 뉴스로

각기 다른 개성이 넘치는 반장들의 발제를 듣는

재미에 빠져 한동안 즐겨보았었다.  

개그맨 뺨칠 정도로 끼가 넘치는 양반장과는 달리

금요 정다방을 운영하는 정반장, 정강현 기자는

감성적인 균형을 맞추며 무게중심을 잡는 역할을 한다.

언젠가 9시 뉴스룸이 끝나고 하는 소셜라이브에

직접 출현해 정치부회의 뒷얘기를 들려주었는데

그때 정반장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중앙일보에서 오랜 시간 문화부 기자를 하면서

문학, 음악 등 문화적인 감각을 키워오던 저자가

갑자기 jtbc로 발령이 나면서 '정치부회의' 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기자가 하루아침에 방송을 하게 되는 환경이

정말 황당하고 쉽지 않았겠지만 정반장은 잘 적응하여

이제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된 것이다.  

 

사실 <소소한 책수다>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였던 터라

방송이 영 낯선 것은 아니었을테지만

그럼에도 TV 방송은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을텐데

훌륭히 잘 적응을 하여

지금은 자연스러운 진행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그만의 특기를 살려

'금요 정다방'이나 '한끼정치'와 같은

따뜻한 시선과 인간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코너를 만들어 그의 색깔을 입혀 진행하고 중이다.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는 그의 세 번째 산문집이다.

소설집도 1권 있으니 이제는 작가라는 말도

어색하지 않은 그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사실상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첫 산문집이라고는 하지만 기자라는 역할에

익숙한 그이기에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도 사회에 대한

연민과 고민, 공감의 시선이 깊게 묻어난다.

 

"사십대 초입에 서서 돌이켜보니, 내 삶을 흐르게 한 것은 결국 눈물이었다. 나는 슬퍼서, 기뻐서, 서러워서, 감격해서 울고 또 울면서 성장했다. 삶의 곡절마다 눈물로 출렁이지 않은 적이 없지만, 그 눈물 덕분에 내 삶은 한껏 단단해졌다. 그러므로 내게 눈물은 단지 슬픔의 기호가 아닌 것이다. 조그맣게 자부하며 말하거니와, 눈물은 내 삶을 길러낸 거의 절대적인 자양분이었다. 나는 눈물로 자랐다."

---p.10~11 <책머리에> 中

 

제목이 이해는 되었지만 선뜻 와닿지 않았는데

그의 설명을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이들면 눈물이 많아진다고 하는데 경험상으로도 그렇다.

삶의 구비구비 눈물을 흘리며 버티고 견디었던

그 경험은 타인의 상황에서도 역시 눈물로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 때나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을

이제는 그렇게 민망해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을 크게 4부로 구성했다. 1~3부는 연대기와는 무관하게 글을 독해하는 정서적 리듬을 고려해 배치한 글들이다. 그래서 가급적 1~3부를 순차적으로 읽기를 권하지만, 실은 아무페이지라도 펼쳐서 아무렇게나 읽더라도 무방한 것들이다.

다만, 4부에 관해선 약간의 설명이 필요해 보이는데, 4부의 타이틀 '시와 음악사이'는 푸른봄에서 운영했던 팟캐스트 <소소한 책수다> 속 코너명이다. 나는 그 팟캐스트의 공동 진행자로 1년 8개월 남짓 활동했는데, 당시 '시와 음악 사이'란 별도 코너를 꾸려었다. 그 코너에서 나는 시를 골라서 해설하고, 해당 시와 어울리는 음악을 선별해 틀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니까 4부 '시와 음악 사이'에 담긴 글은 당시 진행했던 방송 스크립트를 토대로 했으되, 온전히 새로 작성한 산문이다. 4부에 담긴 글을 읽을 때는 각 시마다 짝지은 음악을 직접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p.13~14

 

아무리 문화부 기자였지만

이렇게 감성이 말랑말랑한 그에게

팩트를 전달하는 기자로서만의 생활은

힘들고 답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 권의 산문집은 아마도 그런 답답한 공간에서

그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의 탈출구가 아니었나 싶다.

팩트와 대척점에 있는 소설까지 쓴 것 역시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잘난 팩트의 세계라면 나도 모르지 않는다. 그게 세계의 진실이라면서, 보도 행위를 하는 게 내업이니까. 하지만 그 잘난 팩트의 세계가 지닌 치명적인 오류도 나는 안다. 팩트의 세계란, 감수성을 발라낸 앙상한 세계다. '잘 느끼는' 사람보다는 '잘 아는' 사람이 대접받는 곳이다. 그곳이 치명적인 이유는 '타인'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이 아파하는 걸 느끼는게 아니라, 그 아픔의 정확한 근거를 찾는 데 혈안이 된 곳이 바로 팩트의 세계다. 물론 그것도 충분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잘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을수록 더 따뜻한 세계가 되지 않을까. 우리 공동체에 고통 감수성을 갖춘 사람이 더 많아진다면, 이 세계만큼 좋은 소설 작품도 없을 것이다." ---p108~109 <고통의 감수성에 대하여> 中

 

그런 좋은 소설 같은 세상을 꿈꾸며

그는 팩트의 세계에서 타인을 보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현직 기자이다 보니 글 속에는 현재진행형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사건들과 이슈들이 많이 나온다.

세월호 한가운데에서 취재를 담당했던 그였기에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무게감보다

그는 훨씬 더 큰 부채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꽤 많은 페이지가 그 고통의 공감을 풀어내는 공간으로

되어 있지만 그 여백에는 미처 다 담아내지 못한

감정, 이야기들이 수북하다.

세월호 속에서 아이를 낳고 아빠가 된 그에게

공감의 고통은 세월과 함께 성장해버렸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는 것이다.

결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이해도 하기 힘든 그런 세상.

그 세상으로 들어와 그는 또다른 아픔을 느끼게 된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그의 관심사가

'시'와 '음악'으로 압축되는 것을 느낀다.

물론 팟캐스트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시와 음악에 대한 그의 태도나 호기심을 보면

단순히 뭔가 준비를 위한 것만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을 인터뷰하면서 시란 무엇인지,

시는 어떻게 써야하는지 등과 같은

그 스스로가 정말 궁금해하고 답을 찾고 싶어하는

질문들을 하는 것을 보면

그리고 나름의 시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할 때면

그는 시를 정말 사랑하고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시에는 의도적으로 생략된 언어의 구멍 같은 것이 있습니다. 시를 처음 읽을 때는 그 구멍이 다소 걸리적거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복하여 시를 읽다 보면 그 구멍에 오래 머물러 사색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시인은, 말하자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발굴하는 사람입니다. 시인이 발굴해놓은 새로운 말들이 가지런한 리듬으로 출렁일 때, 당신은 상투적인 일상에서 달아나는 체험을 할 것입니다. 시는 반복되는 일상에 느닷없이 주어지는 휴식같은 것입니다. 시를 읽는 순간이란, 돈을 벌기 위한 것도 스펙을 쌓기 위한 것도 아닌, 아무런 목적이 없는 무목적의 시간입니다. 오로지 나의 내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오직 내 것인 시간. 그 사색의 시간이, 시에 있습니다."

---p.238~239 <시를 읽어야 할 이유> 中

 

기자라는 업을 삼고 있는 저자라서 그런지

보통의 산문집과는 글의 결이 좀 다르다.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문장에  

육하원칙까지는 아니지만 폐부를 찌르는 듯한 논리성,

여기에 솔직함과 따뜻한 감수성이 배어있다.

기자 출신의 작가는 많이 있지만

저자의 글은 또다른 색깔의 또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다.

 

점심 먹으러 갈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정치부 회의> 기자들은 바쁘다던데

언제 이렇게 글까지 썼을까.

그렇게 자신의 언어로 속엣말을 내뱉어야

살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야근을 밥먹듯 하는 일상 속에서도

이렇게 꾸준히 글을 쓰고 다듬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심지어는 지쳐가는 일상조차도 글로 뱉어내고야 만다.

 

"하얀 눈이 내리는 모습이 봄날의 벚꽃처럼 보여서 나는 조금 들뜨기도 했는데, 방송을 준비해야 했으므로 매몰차게 커튼을 다시 내리고 말았다.

그러곤 다시 시집을 펼쳤는데, 문득 시를 읽는 것이 무슨 노동처럼 느껴졌다. 시 읽기는 내게 거의 유일한 휴식이었는데. 방송이라는 목표를 향해 시를 노동하고 있는 내가, 나는 측은했다. 노동의 연장으로 시를 읽어야 한다면, 이따위 시가 다 무슨 소용일까. 나는 시집을 덮어버렸다.

커튼을 다시 올리자 이러다 밤하늘이 주저앉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형광등 스위치를 내리고 오랫동안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까만 밤하늘을 씻어 내리는 눈송이가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몇 분쯤 흘렀을까. 나는 어떤 목적도 없는 시간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p.190 <고독이라는 사치에 대하여> 中

 

아무리 좋은 것도 일로 다가오면 짐이 될 때가 있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숙제처럼 해치워가는 요즘.

내가 지금 딱 이 상황이다.

다 덮어버리고 잠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휴식을 갈망하고 있었는데

저자 역시 같은 상황에 몰리고 있었던가 보다.

이렇게 고독한 휴식을 즐길 줄 아는 저자는

아마도 꽤 오랜 시간 글을 쓸 것 같다.

그때는 기자가 아닌 작가, 저자로서가 더 자연스러워지겠지.

비슷한 세대는 아니지만 꽤 많이 공감을 할 수 있는

문화적인 배경과 기반도

그의 글이 가슴을 때리는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시간층으로 차곡차곡 쌓여가는 글에서

나는 추억까지도 선물받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맑은 세계가 아닌 거칠고 투박한 세계를

맑고 투명하게 닦아내려고 애쓰고 있는 그의 글을

그렇게 오래오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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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요리 - 이재훈 셰프의 첫 번째 이야기
이재훈 지음 / 북스고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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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요리는 많이 못했지만

이제는 충실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도 이제 훌쩍 커버려 손이 가는 나이도 아니고

거동이 어려울 만큼 내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니

이제는 서서히 먹거리에 대한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는가 보다.

여전히 일을 핑계로 외식이 더 많긴 하지만

학원 시간 때문에 주말 저녁까지 끼니를 때우고

들어오는 날이 많은 큰 아이가

어느 날 이제는 집밥이 그립다고 하는 순간,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입도 짧고 까다로운 아이가

밖에서 먹는 허한 음식에 지쳐가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어쨌든 지금도 일을 하고 있으니

많이는 못해줘도 늘상먹는 음식보다는

간단하지만 좀 색다른 요리를 해주고 싶었다.

 

 

[그 남자의 요리]는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흉내라도 내볼까 보게 된 책이다.

제목이 꽤 감성적이다 했는데

역시나 요리책임에도

에세이처럼 음식에 담겨있는

셰프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다.

셰프로서 지금의 모습이 갖춰지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이 각 챕터마다 실려있어

음식 속의 스토리와 함께 전달한다.

맛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영혼이 녹아들어간 정성스런 음식이라는

생각에 그의 요리 과정도 기대가 된다. 

 

 

하루종일 손을 쓰는 일을 하는 셰프의 손이

멀쩡할 리가 없다.

울퉁불퉁한 그의 손이 실린 에필로그로

책은 시작한다.

 

"문득 지금 하는 이이 누군가의 배고픔을 채우기 이전에 기억을 찾아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식을 통해서 기억을 되살리기도 하고

기억을 되살리려 음식을 찾기도 한다.

음식은 그래서 감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런 저자의 마음을 통해서 바라본 음식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책은 기본 소스와 드레싱, 에피타이저와 샐러드

스프, 파스타, 리소토와 해산물, 고기 요리,

디저트 총 6개의 part로 구성되어 있다.

 

 

part1은 파스타의 기본이 되는 육수인 각종 스톡부터 소스와 드레싱 등

요리의 베이스 준비부터 시작한다.

가끔씩 튀어나오는 낯선 재료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과정이 6단계를 넘지 않을 만큼 간단해보인다.

물론, 직접 해볼 때는 생각처럼 잘 되지 않거나

실패할 가능성도 각오는 해야겠지만 말이다.

 

 

소스와 드레싱에 열심히 빠져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난 'his story'

매 장이 끝날 때마다 그려지는

그의 셰프 이야기 첫 번째.

이탈리아에서의 유학 생활의 단상부터 그려진다.

 

 

part2에서는 본격적인 요리법이 펼쳐진다.

 애피타이저와 샐러드.

가장 먼저 소개하는

  '구운 파프리카를 곁들인 브루스케타'는

jtbc 방송의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도

종종 나왔던 파프리카를 구워서 사용하는 방법으로 만든다.

굳이 구워서 사용하는 이유는 구우면

훨씬 부드럽고 당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게트를 오븐에 굽고 파프리카를 구워서 껍질을 벗겨내고

얇게 썬 후에 엑스트라 버진과 소금, 후추, 바질을 넣어 섞은 후

구운 바게트 위에 올린 후 파다노 치즈를 뿌리면 끝.

실패할 확률이 별로 없는 멋진 애피타이저 완성이다.

 

 

뒤이어 소개하는 '아보카도 무스와 생새우를 곁들인 브루스케타'는

4단계만에 끝나는 더 간단한 요리다.

색이 다른 요리이기에 그 맛이 더욱 궁금해진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기대가 되는 것은 part4의 파스타였다.

이유는 바로 '봉골레 스파게티' 때문이었다.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와 함께

기본형에 들어가는 스파게티라고 하는데

평소에 워낙 좋아해 제대로 된 봉골레 스파게티를

먹고 싶지만 흔치가 않아서 아는 곳을

작정하고 가야할 때가 많았다.

집에서 쉽게 그 맛을 낼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는데

치킨스톡이나 야채스톡도 필요없이

바지락이나 모시조개, 홍합 등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이 책의 요리 중 가장 먼저 도전해 볼 위시리스트 일순위.

그 외에도 정말 다양한 스파게티가 줄을 잇는다.

 

 

이탈리아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리소토일텐데

가장 일반적인 나폴리풍 해산물 리소토는

어려워보여도 해산물만 풍성하게 준비하면

어렵게 않게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도전 리스크 상위권에 랭크시켜본다.

 

 

특별한 음식을 먹고 싶은 날,

분위기있는 음식을 연출하고 싶을 때 도전해보면 좋을

'바삭하게 구운 허브향의 감자와 문어, 바질 오일'

문어와 감자가 오래 전부터 인기있는 조합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렇기때문에 그 맛의 조화가 더 궁금하다.

문어 다리, 로즈마리 줄기, 썬드라이 토마토, 후레쉬 모짜렐라

약간의 준비할 재료가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간단한 준비로 특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는

그만일 듯 싶다.

 

 

마지막 part6은 디저트이다.

풀코스로 즐기는 마지막 단계.

레몬, 설탕, 물만 있으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레몬 셔벗.

여기에 자빌이나 루꼴라를 넣어 갈아 주면

색다른 셔벗을 즐길 수 있다는 팁도 살짝 알려준다.

 

 

가장 입맛을 당기는 디저트는 '초콜릿 무스'

저자가 피곤할  때면 만들어 먹는 디저트라고 한다.

커피, 초콜릿 모두 좋아하는 나 역시

한 번 맛을 들이면 놓여나지 못할 것 같다.

재료도 젤라틴만 구하면 나머지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에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6장에서의 his story는 그동안 애써 외면하고 살았던

이탈리아로 훌쩍 떠나 7년 전 일하던 레스토랑의 식구들과

재회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힘들 법도 한 시절이었지만

그가 이렇게 단단하게 자랄 수 있었던 토대가 되었던

고향같은 곳에서 여전히 시간이 정지된 것같은

똑같은 모습으로 건재해 있는 식당, 식구들과 마주하며

감회에 젖는다.

 

 

그리고 에필로그.

매일 흔들리는 마음에도

'음식 정말 맛있네요!'라는 한 마디에

오늘도 다시 힘을 내어 음식 속으로 들어간다는

어쩔 수 없는 '셰프'.

흔들리고 고민하고 다시 다잡아가는

그 인간적인 모습이 그의 음식을 더욱

풍요롭고 깊어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효자동이라면 집에서 머지 않은 곳이다.

한 번쯤 그 맛을 느끼러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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