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클림트 -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ㅣ 클래식 클라우드 3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평점 :
20~30분 정도의 길이로 딱 출근길에 듣기 좋아
'클래식 클라우드 김태훈의 책보다 여행'이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즐겨듣고 있다.
책에 관한 팟캐스트 방송이 은근 많지만
평소 좋아했던 진행자라 듣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그 구성과 내용이 너무 좋아 방송이 업로드되는
월수금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책을 보다 여행을 한다는
말놀이같은 중의적인 제목의 '책보다 여행'은
책의 주제 인물을 선택하여 그 인물을 알 수 있는 키워드,
작업실, 그리고 그 인물의 삶의 동선을 좇는 여행지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인물에 따라 약간의 구성차이는 있지만
이 큰틀을 가지고 작품과 인물을 탐구하는 프로그램이다.
처음 시작부터 방송을 먼저 시작하지만
이 내용을 기반으로 하는 책이 시리즈로 출간될 것이라고
방송 시작부터 얘기했었는데 드디어!!!!
3종이 출간된 것이다.

http://www.podbbang.com/ch/13842
각 인물별로 전문가가 집필을 하고 여행지를
직접 취재하고 다녀와서 집필을 하는 형식이다.
셰익스피어는 방송보다 출간이 먼저되었고,
니체와 클림트는 작년 이맘 때쯤 방송이 되었었다.

이 시리즈 중 가장 먼저 읽게 된 책이 [클림트]이다.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클림트를 소개한 책이다.
벌써 10년 전쯤인데 한국에서 열렸던
클림트 전시회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클림트란 화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때였지만
눈이 부실만큼 화려한 색감과 관능적인 그림이
인상적이어서 그 화려함에 압도당했던 느낌이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다른 화가들과는 느낌이 참 달랐던
그래서 유독 잔상이 많이 남았던 화가였다는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방송을 들으니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책으로 만나는 클림트는 어떨까
도착하기도 전에 떨리고 설레었었다.
고전은 나이에 따라 읽을 때의
느낌과 감동이 다르다고 한다.
이는 그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
같은 그림이라도 언제 보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감동의 포인트가 달라지는 것 같다.
10년 전에 봤던 클림트의 그림과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 보는
클림트 그림의 느낌은 많이 달랐다.
더 깊게 더 짙게 화가의 고민과 생각들이
전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게 세월의 안경을 쓰고 바라본
클림트의 그림들은 10년 전보다 더
가슴을 요동치게도 하고 뻐근하게, 슬프게도 만들었다.
이렇게 세대의 결에 따라 다르게 전달되는
클림트의 그림의 힘은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고
오늘 하루도 더 나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치열한 자기와의 사투를 벌이는
화가의 노력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에는 그런 노력의 과정과 흔적들이
그대로 작품에 담겨져 있다.

[클림트] 책은
클림트의 작품이 쇠락해가고 있는 시점에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신예작가 '에곤 실레'가 그린
<푸른 작업복을 입은 클림트>라는 그림으로 시작한다.
그림에 대한 열정,
한 여성을 평생 사랑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던 가정,
수많은 여성과 끊이지 않았던 스캔들,
틀과 파격 사이를 넘나들었던
클림트의 마력이 집약된
클림트, 그대로의 클림트 같다.
다음으로 클림트의 명실공히 대표작,
<키스>가 양면을 가득 담겨있다.

이어서 클림트의 예술과 생애를
만나러갈 수 있는 루트가 소개된다.
예술가 클림트의 출발점 '부르크 극장'부터
거장의 마지막 작업실 '클림트 빌라'까지
총 8군데의 여정을 담고 있다.

여기에 클림트 영감의 원천 '아터 호수'까지
추가한다면 클림트를 제대로 만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하게 변화에 차단된 빈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클림트이기에 그의 예술의 여정을 좇는 일은 단순해보인다.
이렇게 견고한 틀안에서도
오히려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새로움을 찾아내고 작품 속에서 독창적으로 풀어낸 것을 보면
그의 천재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리적인 이동없이도 그는 자유로운 정신으로
단단하기만 했던 오스트리아 빈의 한복판에서
예술의 혁신을 이뤄낸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클림트의 삶과 그림의 여정은 빈의 클림트 빌라에서 시작해 부르크 극장과 빈 미술사 박물관, 빈 분리파 회관인 제체시온을 거쳐 이탈리 라벤나의 산비탈레 성당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빈 벨베데레 미술관과 빈 시립미술관, 아터 호수의 클림트 센터와 클림트 트레일을 거쳐 빈 응용미술관과 레오폴트 미술관으로 마무리된다. 이 공간들은 빈과 아터 호수, 라벤나로 이어졌던 나의 기행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 p.16~17 <프롤로그 中>
여행지를 따라 클림트를 좇는 여정이지만
한 면 혹은 두 면 가득 담겨져 있는
클림트의 그림들과 그에 대한 깊이있는
해석들을 보노라면 마치 화집을 보고 있는 것 같다.
클림트의 그림에 관해 언급하는 거의 모든 그림이
감각적으로 실려있어 글을 배제하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보는 즐거움도 준다.


특히나 시대별로 두드러진 변화를 보이는
클림트의 작품 세계의 흐름을
면밀하고 세심하게 소개해준다.
10년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황금시대,
자포니즘 영향의 원색 장식 등장 시기,
그리고 아터 호수의 풍경화의 변화,
전성기의 작품과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던 때의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을 비교 분석하면서
클림트의 명은 물론 암까지
그 안에 담겨있는 사상과 철학를 세밀하게 다룬다.


"영감으로 가득 찬 1900년대 초반의 풍경화에 비하면 1910년 이후의 풍경화들은 한층 더 장식적이고, 반대로 클림트의 개성이 그만큼 줄어든 듯한 느낌을 준다. (중략)
1916년 작품인 <닭이 있는 마당 풍경>(238쪽)의 장식들은 이즈음 그가 그린 초상화의 의상 장식들과 상당히 비슷하다. 그리고 먼거리에서 본 풍경을 그린 초창기 풍경화에 비해 이 시기의 그림들은 가까이에서 바라본 정경을 담았다. 클림트의 풍경화들은 전성기를 지난 화가의 쇠락의 징후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그림을 채운 것은 오직 정교한 장식, 장식, 장식뿐이다." ---p.237

"스타일과 장식, 시간과 분야를 막론하고 클림트 작품의 핵심은 늘 이 두 가지였다. 어떤 그림이든 클림트의 작품은 그 전의, 그리고 그 후의 누구와도 닮지 않은 클림트만의 분명한 개성이 있다. 그리고 빈 분리파 창립 이후 클림트가 그린 모든 그림의 핵심적 요소는 장식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초상이든 풍경이든 장식은 클림트 그림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개입한다. (중략)
그리고 1910년을 기점으로 클림트의 그림은 달라진다. 한때 그의 팔레트를 가득 채웠던 황금빛은 사라져다. 장식을 포기하지는 못했지만, 이제 그의 그림은 원색의 장식들, 기묘하고 동양적인 장식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림의 인상들은 한층 어둡고 철학적이며, 삶과 죽음의 알레고리를 보여주는 듯하다. 유난히 빠른 나이에 성공했던 클림트는 이제 화가로서 더 이상 올라갈 길이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인기는 점점 더 높아졌고 해외로도 명성이 알려졌지만 그 어떤 성공도 다가오는 종말을 이길 수는 없었다." ---p.270~271
클림트를 얘기할 때 '여성'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이다.
"여자가 없는 클림트는 상상할 수가 없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그는 모델들과 숱한 염분을 뿌리며
수많은 자녀를 낳을 정도로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뮤즈와 같은 존재 '에밀리'와
평생을 함께 했지만 끝끝내 결혼은 하지 않는
독특한 관계를 유지했다.


"클림트는 인간관계에서 상대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원초적인 강렬함 때문에 클림트가 등장하면 좌중의 사람들이 술렁이곤 했다. 그러나 보다 내밀한 관계를 들여다보면 클림트는 오랫동안 여성들과의 관계에 얽매여 있었다. 특히 그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성과는 끝내 그 관계를 완성하지 못했다. 어쩌면 클림트가 그린 매우 에로틱한 스케치들은 그가 그 여성과의 관계에서 얻은 좌절과 고통을 비뚤어진 방식으로 표현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클림트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여성에게결국 행복의 왕관을 씌워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여성의 품에서 종말을 맞는 특권을 누리지도 못했다." 미술사가 헤르만 티에체가 1918년 쓴 클림트 부고 기사의 일부분이다. ---p.207~208
당시의 여성으로는 드물게 에밀리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있는 여성으로 백 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지금으로 말하자면 CEO이기도 했다.
부인이라는 위치가 남편의 소유로 규정되던 시기이니
누군가의 부인으로 만족하고 살기에
에밀리는 자아가 강했는지도 모른다.
여러 여자들과의 관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결혼이라는 제도권으로 들어가길 거부했던 것은
에밀리의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클림트 옆을
평생, 죽는 순간까지도 곁에서 지켰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클림트 예술의 키워드'라는 제목으로
클림트 예술을 키워드로 정리해주고 있다.
책을 읽은 독자라면 한번 더 깔끔하게 정리가 되고,
아직 읽지 않은 독자라면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책을 읽게되면 더 이해가 쉬워질 것이다.

다음으로는 '클림트 생애의 결정적 장면'을
연대순으로 정리해두었다.
본문에 실리지 않은 가족들의 사진과
사건과 관련된 사진들도 볼 수 있는 소소한 재미를 준다.


클림트의 뎃생 초상화로 시작했던 책은
클림트의 황금시대의 개막을 알렸던 작품
<베토벤 프리체>의 스케치로 마무리한다.
절정의 시작을 시작하는 장면.
오롯이 선으로 표현된 스케치일 뿐임에도
시선을 빨아들이는 엄청난 파워가 느껴진다.

생각해보니 얼마 전 우연히 EBS에서 방영했던
<우먼 인 골드>라는 영화를 봤었다.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이라는
작품을 둘러싼 개인과 오스트리아라는 국가간의
소송을 다룬 내용이다.
영화를 볼 때만 해도 예전에 갔었던
'그 전시회의 화가....?'라는 생각으로 봤었는데
불과 몇 달 사이 또다시 클림트를 방송으로,
책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찾다보니 이달 중순부터
클림트의 작품을 이용한
미디어아트 전시회가 열린다고 한다.
실제 작품은 아니지만 엄청난 흡인력을 가진
클림트의 작품들이 어떻게 구성될 지 궁금해진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봐야지.
평소 즐겨듣던 방송의 출간 첫 번째 책으로
'클림트'를 만날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어렸을 때 집에 있던 세계문학전집에는
뒷부분에 꽤 길게 작가의 일생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실제 소설보다는 작가와 관련된 정보를
더 재미있게 보곤 했는데
이 책의 컨셉이 바로 그런 형식이 아닐까 싶다.
작가를 알고 작품을 보면 더 이해가 잘되고
더욱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즐겼던 나만의 보물창고 같았던
그런 내용들을 이렇게 책으로 만나볼 수 있다니
정말 기쁘고 반갑기만 하다.
클림트를 만났으니 이제
니체와 셰익스피어를 만나러 가야겠다.
하루 빨리 다른 인물들도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