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에 대한 복종
스탠리 밀그램 지음, 정태연 옮김 / 에코리브르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권위에대한복종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1960년 예일대에서 수행된 실험, 학습효과를 측정한다며 벌칙으로 전기충격을 가하는 외양을 띄었지만 사실은 사람이 타인의 권위에 어디까지 복종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전적인 연구였다. 이전에 EBS 다큐에서 본 기억이 있을 만큼 고전적이지만 충격적이었던 실험의 목적과 방법론과 결과가 고스란히 담겼다.

피실험자가 실험진행자를 도와 학습자가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충격을 가한다는 설정인데, 다행히도 실제 충격은 아니고 오로지 학습자의 연기에 의지한다. 결과는 참담하다. 권위자가 부재중이던 자기들끼리 말다툼을 하던 희생자가 바로 옆에서 소리를 지르던 혹은 예일대가 아닌 의심스러운 허름한 연구소이던, 아무려나 '권위자'에 복종하여 최대 450볼트까지의 전기충격을 가하는 피실험자가 여하한 조건에서든 절반이 훌쩍 넘었다.

히틀러 일당들을 우리와는 다른 완전한 악의 무리로 이해하던 전후 사회에서 아렌트가 던진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은 얼마나 반역적이었던지 그녀는 적잖은 비난과 인신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시대 이런 연구를 수행했다는 건 얼마나 도발적이었을지도 차마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만큼 단단하게 실험의 설계와 의미에 대해 다층적으로 보완하고 가다듬어내어, 결국 저자는 사람이 조직과 권위에 기꺼이 순응하려는 경향성을 짙게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득시킨다.

사회가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을 최대한 잘 수행해내려는 마음, 그 나무랄데 없어보이는 마음은 그렇지만 잘못된 리더십, 과학기술이 제공하는 완충장치, 혹은 전문가독재의 세상을 만날 때 다시 한번 지상에 악마를 강림시킬지 모른다. 당장 트럼프와 김정은, 드론 공격이나 핵미사일 발사장치, 그리고 대중이 기꺼이 그 권위를 인정해버린 채 결정을 이양해버리곤 하는 외교관료들이나 정치공학자들이 융합되면 어떨까. 아님 이명박근혜, 고도화된 관료 시스템,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은 국가안보 혹은 국가정보분야의 만남은 어땠던가.

9년이 지날 때까지 우리 모두는 적게는 15와트, 높게는 450와트의 전기충격을 누군가에게 가하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 그게 비록 조직화되고 문명화된 삶을 영위하는 인간의 피치못할 생리라 하여도, 그에 대한 죄책감과 반성 역시 또다른 인간의 생리일 거다. 실험 자체에 대한 정밀한 보고서일 뿐이지만 그 안에서 매순간 순응하고 반응하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겹쳐볼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쟁기획자들 - 불가능한 시장을 만들어낸 사람들
서영교 지음 / 글항아리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쟁기획자들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전쟁으로 점철된 역사를 섣부른 민족감정이나 이념, 혹은 영토야욕으로 설명하는 대신 경제적인 이해에 따른 지극히 타산적인 결과로 설명한다. 한국인에게 그저 최대의 역사강역을 구가했던 영광으로만 받아들여지는 고구려의 팽창이, 사실은 이를 물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적 수익과 무역구조를 최적화하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거다. 반대로 외교적 성취로만 여겨졌던 고려시대 서희의 담판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무역구조와 세력균형을 가져가려던 거란의 빅픽쳐에 놀아난 셈이라는 재미난 해석도 가능해진다. 말하자면 현실주의적 관점으로 다시 고대 전쟁사를 재평가해보는 참신한 시도랄까.

사실 이 책에서 과거의 국제정치를 읽어내리는데 굳이 동원한 '시장'이란 단어는 조금 과하단 생각도 든다. 세력균형이나 실리라는 좀더 일반적이고 다소 광범위한 차원의 단어가 좀더 현실에 적용하기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는 아마도 저자의 의도가 강하게 깔린 게다. 현시점 한국이 당면한 이슈나 구조적 문제와 역사적 장면과의 교차편집을 통한 통찰을 제공하고자 하는 게 이 책의 큰 미덕이기도 하다. 미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 글로벌한 식량 안보 이슈, 한국의 경제개발 과정과 기업인들에 대한 재평가들이 풍부한 역사적 장면들과 컨텍스트를 녹여낸 대화체로 다뤄진다.

몇몇 챕터에서 과거 장면과 현재의 이슈간에 다소 무리한 연결고리를 찾는다거나 저자의 시장만능주의나 보수적인 정치색이 강하게 드러나는 언사들이 나타나는 게 아쉬운 점이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시장을 만들거나 재편해서 이득을 얻는 플레이어들, 강자의 니즈와 손익계산에 시종일관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정당화하는 관점이 아쉽다. 그결과 전반적으로 그러한 전쟁이나 '시장의 선택'이 사회구성원 누구의 수혜로 귀착되었던가에 대한 비판이 사라지고, 강자의 역사적 선택에 대한 사후적인 추인만 남은 건 아닌지 뒷맛이 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의란 무엇인가 - 한국 200만 부 돌파, 37개국에서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마이클 샌델 지음, 김명철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의란무엇인가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원래 한참 핫하다고 할 때는 억지로라도 피하고 싶다. 이제야 쥐고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는 괜찮다 싶은 윤리철학 개론서. 신문 헤드라인의 가이드따라 쉽게 예단하며 혀를 차던 사람들에게, 그런데 한숨돌려 조금만 생각해봐도 다른 측면도 숨어있음을, 쉽게 혀를 차거나 한쪽만을 비난할 일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원전, 병역특례, 동성애, 부동산정책, 젠더 이슈 등 온갖 이슈들에 대한 사고실험을 통해 우리가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입장이 얼마나 얄포름한 근거와 부정합한 가치관에 근거했는지를 따져보라는 주문이다.

결국 책 마지막장을 덮으면서 두가지 정도의 삐뚤어진 생각. 이 핫했던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정작 얼마나 될까. 그래서 이 책에 담긴 메시지는 정작 얼마나 사람들에게 전해졌을까. 한때의 신드롬으로 흘러가버린 채로, 사람들은 '정의'가 무엇인지 과거와 꼭 같은 방식으로 몇가지 편린과 구습에 기댄 채 마녀사냥중인 거 아닌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고 해서 그들의 정의가 좀더 깊이와 숙고를 더한 거 같진 않아서.

다만 한가지, 원전5/6호기를 위시한 원전 정책에 대한 '숙고 민주주의'는 좀 새로운 모습이었던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증오의 세계화 - 반유대주의의 역사와 재창궐
데니스 맥셰인 지음, 황승구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증오의세계화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antisemitism

특히 유럽에서 새롭게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가 팽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반-유대주의'라는 단어를 키워드로 삼은 책이라서, 일견 이게 한국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애초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생겨나는 데서 주변에 입힌 '원죄'에 더해 미국을 등에 업고 아랍지역에 가하는 지속적인 압박이 있으니만치 감정적으로 팔레스타인에 동정적인 여론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물론 기왕 생겨난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무화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 팔레스타인 문제가 오롯이 이스라엘 때문도 아닌 복잡한 문제이긴 하지만.

그런데 생각보다 심각한가보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동정을 넘어 이스라엘을 소멸시키라거나, 다시금 아우슈비츠를 세우라거나 하는 이야기가 나온단다.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증오가 거침없이 표출되는 와중에 이차대전중 유대인 대학살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유대인들이 유리하게 써먹고 있는 레파토리라는 식의 이야기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더 나쁜 건, 이스라엘이란 국가에 대한 반감과 이스라엘인, 유대인, 유대계 자국인에 대한 반감이 마구 뒤섞이고 있다는 것. 유대계라는 이유만으로 전세계-혹은 유럽과 미국-에서 증오의 대상이 되고 이스라엘에 대한 정견과 반성의 마음을 고해성사하듯 밝혀야 하는 상황이라니.

이쯤 되어 오버랩되는 장면들이 두어개 생겼다. 민족과 국가의 꼬리표만으로 피아 식별을 하는 건 우리도 익숙한 바다. 그로 인해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거나 사실에 대한 인정투쟁을 희화화하는 식으로 받아넘기는 식, 그들 전체를 덩어리로 묶은 채 통째로 반감을 키우는 식의 악순환은 곳곳에서 계속되어 왔다. 일본과의 관계, 북한과의 관계, 혹은 일부 세력이 가진 시각에서 미국과의 관계일 수도 있겠고, 심지어 80년 광주같은 역사적 사건을 두고 급속히 첨예해진 남-남 갈등에 대입해 볼 수도 있겠다. 그 모든 것들에 보수주의 철학자 버크의 지적은 꽤나 유효한 나침반일 테다. 더불어 이야기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와 원칙. 공통의 기반을 찾아 넓혀나가려는 노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콜럼바인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사이코패스 #총기

'전모를 밝힌다', 라는 표현을 쓰려면 이정도는 들이파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다. 99년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전대미문 최악의 총기 난사사건에 대해 깊이깊이 조사한 결과물이다.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는 기본이다. 가해자의 삶은 어떠했고 왜 그런 짓을 했는지, 피해자와 주변인들의 삶은 사건 전과 후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도 한명씩 꼼꼼하게 따라간다. 사건의 대응 과정과 그것이 적절했는지 등을 둘러싼 책임 규명에 대해서도 10년간의 취재 및 집필 과정에서 공개된 자료와 사실에 근거해 빈틈없이 짚어간다.

그 결과는 자못 놀랍다. 그저 미국의 이러저런 총기 사건 중 하나일 줄 알았던 사건이 알고 보니 오클라호마 정부청사 폭파테러처럼 학교 건물을 통째로 날려버리려던 대량학살극을 의도했었단 점도 그렇고, 의외로 주정부가 사건 이전부터의 단서들을 무시하고 심지어 사건 후에는 은폐하려고 집요하게 시도했다는 점도 그렇다. 게다가 유행처럼 타고도는 '사이코패스'의 모범적인 실재 사례라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책을 덮을 즈음엔 콜럼바인에 있었던 수많은 등장인물이 제각기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느낌이 드는 거다.

10년이다.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고 그에 대해 '왕따 학생의 보복'이라느니 '가정교육 문제'라느니 따위 뻔하고 선정적인 헤드라인이 휩쓸고 지나가고, 가해자 부모던 피해자 당사자들이던 당장의 돌팔매나 종교적 영웅담의 소재로 소비당할 대로 당하고, 또 버지니아공대의 조승희사건같은 그보다 더욱 자극적인 사건들이 다발로 일어난 시간이었을 거다. 그 시간을 단지 사건 하나를 가급적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들인 저자의 공력과 열정 덕분에 콜럼바인의 이들은 자신의 삶을 계속 이어가는 존재로 복권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