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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예찬 - 위대한 사상가들의 실패에 대한 통찰
코스티카 브라다탄 지음, 채효정 옮김 / 시옷책방 / 2024년 6월
평점 :
저자인 코스티카 브라다탄은 실패에 대해 상당히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실패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요소다. 실패에 관여하는 방식이 우리를 규정하는 것인 반면에 성공은 부차적이고 일시적인 것일 뿐 그리 많은 걸 밝혀내지 못한다. 성공 없이 살 수는 있지만, 우리가 완벽하지 못하고 불완전하며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합의를 못 하면 사는 의미가 없으며 이 전부를 깨닫게 하는 게 바로 실패다..."
저자가 실패에 대해 설명하는 기본적인 내용은 뭔가 희망적인지 절망적인지 헤깔리는 정의입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싶을 때 추가적인 설명을 해 줍니다.
"실패가 발생했을 때 우리와 세상 사이, 우리 자신과 타인 사이에는 거리가 생긴다. 우리에게 그 거리는 우리가 ‘들어맞지’ 않는다는 독특한 느낌, 세상, 그리고 타인들과 우리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느낌,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준다. (중략) 그 일은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일 수도 있다. 이 존재론적 각성이 우리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고자 할 때 정확히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각성이 선행하지 않고서는 치유가 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저자는 어떤 상황에서 실패를 겪을 때, 실패감을 느낄 때야 말로 나라는 존재의 각성이 일어나는 때이며 복잡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치유, 계몽, 자아실현이라는 기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실패 예찬>은 실패 자체를 위한 실패가 아니라 실패가 낳는 겸손, 그리고 실패가 촉발하는 치유 과정에 대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실패에 대해 다층적으로 살펴보고 잘 활용할 때 내 인생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죠.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다소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저 나름대로 겪었던 그 간의 실패와 어려움을 떠올려보면 저자의 이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몰랐으면 몰라도 조금 겪고 나니 이 양반 말이 참말이로구나 싶은 것입니다.
신선한 방식과 관점으로 접근한 좋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일이 쉽지 만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잘 안 읽어지는지 읽는 내내 고민을 했습니다. 단순히 문해력이나 지적인 수준의 문제 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자가 훌륭한 분인 것은 알겠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을 쉽게 전달하는 재주는 1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저와 지적인 수준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그런 것일수도 있습니다만, 서술 방식에 모호한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데에 있어서 직설적으로 정의를 내리거나 정확한 논점을 제시하고 이후에 다양한 예시나 논거를 풀어놓는 방식이 이해가 쉽습니다. 이 책은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내내 충청도식 애둘러 말하기를 시전하는 느낌입니다. 이런 거죠. '에, 그러니까 내가 하고자하는 말은... 거시기 저 간디가 언론을 대하는 방식을 한번 살펴봅시다. 그러니까 이랬었단 말이지. 그랬답니다.' 뭐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합니다. 그 와중에 또 다른 사람 예시를 들면서 계속 타인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러다보면 독자입장에서는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문제입니다만, 각 챕터를 지배하는 중심 인물에 대해 사전 지식이 부족한 부분도 큰 어려움 같습니다. 물리적 실패 파트의 중심인물은 시몬 베유 입니다. 제가 철학자 시몬 베유를 얼마나 알겠습니까? 관심도 없고요. 이 양반의 이야기를 시시콜콜 계속 하는데 관심이 갈 수가 있나요? 집중도 안되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정치적 실패 부분의 간디 이야기는 아는 인물이라 흥미가 있었고 재미있었습니다. 사회적 실패 파트의 에밀 시오랑에 대해서도 아는 바도 없고 관심 부족이었고요,
여기에 부수적으로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뒤엉켜서 등장하는데 이들 사이의 역학 관계를 이해해가며 읽는 부분도 쉽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인물들의 예화가 나열되어 있어 읽다보면 그래서 그 시점에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바가 정확히 뭐였는지 안드로메다로 가버립니다. 요런 부분들이 저를 힘들게 했고, 꽤나 오랫 동안 조금씩 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번역의 문제인지 원문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문장이 잘 읽히지 않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번역이 되어 있는데 우리말인지 헤깔릴 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건 뒤로 갈수록 좀 더 잘 읽혔는데 이게 역자가 저자의 문장 스타일에 익숙해져서 번역이 더 좋아진건지 제가 이 번역체에 익숙해져서 읽기가 쉬워졌는지 모르겠더란 것입니다.
책을 리뷰하고 적어도 불만스러웠던 부분을 표현하려면 어떻게든 성의껏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어서 욕하려고 읽는 책도 종종 있는데 이 책은 리뷰하면서 꼭 아쉬움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완독 후 다시 프롤로그를 읽어보니 역시 좋은 책은 서문이나 프롤로그만 읽어도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실패하기 쉽고, 실패가 많은 세상입니다. 그런 장소와 시절에 우리가 놓여 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맞기는 한데, 1 실패 1 성공은 아닌데다가 실패가 반드시 성공을 이끄는 것도 아니다보니 실패를 미화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힘을 잃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기에 실패의 구렁텅이에서 방황하지 말고 실패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에 대해서도 접해보는 것이 좋은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패 예찬은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책입니다. 드럽게 안 읽히기는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