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시대 일자리의 미래 - 세계 1위 미래학자가 내다본 로봇과 일자리 전쟁
제이슨 솅커 지음, 유수진 옮김 / 미디어숲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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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이후 100년, 로보토피아는 오는가?


   "로봇"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체코의 소설가 카렐 차페크는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이라는 희곡을 통해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로보토피아의 세계를 그렸다가 결국 인간의 발명품인 로봇의 반란으로 인류가 멸망하는 로보칼립스의 절망까지 드라마틱 한 스토리로 그리고 있습니다.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이후 벌써 100년이 흘렀고, 당시는 상상도 못했던 로봇의 활용과 자동화가 현실 속에 실현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류는 여전히 우리의 미래가 로보토피아가 될 것인지, 로보칼립스가 될 것인지 정확히 예측하기보다는 각자 극단적인 미래 전망을 내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로 유명한 미래학자 제이슨 솅커는 신작 [로봇 시대 일자리의 미래]에서 자동화와 로봇의 대중화 시대를 맞이해 "인류의 보편 일자리"의 관점에서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전망하고 있습니다. 책의 중반부까지를 할애해 미래 인류의 일자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로보칼립스의 견해와 긍정적으로 보는 로보토피아의 견해를 소개하고 보다 바람직한 견해와 태도가 무엇일지 고찰합니다. 로봇이 인류를 집어삼켜 모든 직업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노동시장의 변화를 따라기 못하고 삶의 목적을 상실할 것이라는 한없이 부정적인 예측을 쏟아내는 로보칼립스의 미래가 지나치게 과도하고 정확한 근거에 기반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반면, 로보토피아적 관점에서 로봇으로 대체되었을 때 인류가 얻을 수 있는 이점인 시간과 이동 및 선택의 자유, 그동안 없었던 일자리의 부상으로 인한 새로운 시대의 도래가 가능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대체로 근거 없는 부정론을 경계하는 입장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장밋빛 밝은 미래를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자동화와 로봇으로 인한 직업의 미래는 로보칼립스와 로보토피아 사이 그 어딘가의 모습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피력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미래에 적응하는 승자와 도태되는 패자가 존재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설명합니다. 어떤 상황이 오던 적극적으로 상황을 이용해 더 나은 어딘가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미래의 일자리는 정말 괜찮은 것인가? 대책은 무엇인가?


   저자는 책을 통해 중세 시대 그 많던 대장장이들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묻습니다. 영어권에서 가장 흔한 이름인 "스미스"가 바로 대장장이를 의미하며 그만큼 당시 대장장이가 흔하기도 하고 대중적인 직업군이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세상이 바뀌고 산업 구조가 변하면 직업군도 당연히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구조적 변화가 극심하면 할수록 이런 직업군의 변화도 크게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구조와 경제의 변화는 얼마나 많이 변하는가의 문제인 변화량 변수와 얼마나 자주 태세가 전환되는가의 문제인 빈도 변수 두 가지를 다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증기기관으로 시작한 산업혁명은 대량생산의 시대를 넘어 서비스와 IT 기반 자동화 산업으로 이동했다가 인공 지능,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등을 특징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갈수록 변화량이 크고 변화의 주기 또한 짧아지는 급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과거처럼 하나의 기술을 익혀 평생 먹고살던 시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와 미래의 직업은 다양화될 수밖에 없고, 각 개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대에 맞는 여러 가지 지식과 기술을 꾸준히 익혀 나가야 합니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변화를 거부하거나 두려워해서 "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하는 성실한 사람이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지속적으로 변화를 꾀하되 사회 변화 방향을 면밀히 살피며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 시기입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런 시대적 대 전환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으로 현명한 직업 선택, 끊임없는 배움, 지속적인 변화와 기회 모색 등을 들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문제를 다룬 책에서 한결같이 만나는 한계는 실용적이고 유의미한 대안 제시가 빈약하다는 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속이 뻥 뚫리도록 시원한 감은 없더라도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고는 있습니다. 



3.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극단적인 전개의 불편함...


   어지간하면 책을 읽으면서 배울 점과 긍정적인 면만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이 책의 중후반부 내용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사회보장제도와 보편적 기본소득의 문제가 책에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이 책의 주요 골자인 자동화와 로봇의 시대상에 대한 고찰, 우리의 일자리의 미래와 다소 거리가 있는 논제라 의아합니다. 산업화와 일자리 분야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는 김에 강하게 주장하고 싶은 논제를 끼워 넣기 하는 느낌입니다.


   어차피 사회보장제도나 보편적 기본소득은 정부 정책 차원에서 사람들의 일자리 문제와 생계 문제에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함께 다뤄도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없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단순히 어떤 소주제를 다루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주제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 다소 극단적이고 과장된 방식이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사회보장제도가 국가부채를 지나치게 증가시키고 인구통계학적인 관점에서 비용을 부담할 사람은 줄어들고 보장과 혜택을 받을 사람은 계속 늘어가는 상황을 고려할 때 더 이상 지속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며 이런 상황은 자동화를 더욱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측은 납득이 갑니다. 여기에 급부상하고 있는 로봇세 문제를 함께 지적하면서 비현실적이라고 단정합니다. 개인적으로 저 역시 로봇세를 받는다는 것이 언 듯 그럴듯한 대안처럼 보일 수 있지만 조금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어디까지 로봇세를 거둘 대상으로 볼 것인지, 어떤 조건에 얼마나 걷을 것인지 등을 정하기가 사실상 난해합니다. 그러나 본문 속에 느껴지는 저자의 뉘앙스는 로봇세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입니다. 


   보편적 기본소득의 문제로 들어가면 더 심각해집니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로 인해 공산주의가 다시 도래한다는 주장까지 갑니다. 기본소득은 말도 안 되고 사람들의 의욕을 떨어뜨려 사회를 붕괴한다는 정도의 극단적인 주장을 하며 기본소득은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정치적 도구로 사용될 뿐 실현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정치적 관점으로 보면 극단적인 보수 주의적 주장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정치적으로 어떠하냐의 문제보다는 본인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논리 전개가 합리적이지 못하고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소 과장되어 있는 것이 독자를 불편하게 합니다. 


   책의 전반부에서 로보토피아와 로보칼립스의 극단적인 견해의 문제점을 지적하던 저자가 스스로 극단적인 주장을 벌이는 상황이 아이러니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로봇 시대 일자리의 미래]라는 책 전체의 주제에 대한 관련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문제를 저자 개인의 견해를 강하게 주장하기 위해 할애함으로 인해 전반적인 내용상 통일감은 물론 신뢰도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아쉬움을 제외한다면 눈앞으로 다가온 사회적 변화와 일자리의 문제, 미래 예측의 두 가지 양극단의 특징, 바람직한 생존과 적응을 위해 고려해야 할 점 등을 쉽고 간결하게 잘 설명한 좋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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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 댄스
앤 타일러 지음, 장선하 옮김 / 미래지향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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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소설로 만나는 미국인들의 삶


앤 타일러의 장편 소설 "클락 댄스"는 1960년대 이전에 태어난 미국 여성의 삶 전반을 다룬 소설입니다. "클락 댄스"란 여러 명이 겹치게 서서 서로 다른 각도로 손을 뻗으며 추는 춤을 말합니다. 앞사람이 양팔로 2시와 10시를 가리키면 그 뒤 사람은 3시와 9시를 다음 사람은 4시와 8시를 가리키는 식으로 하는데 서로 손의 각도를 엇갈리게 계속 바꿔가며 추면 리드미컬하게 보이는 효과를 노리는 춤입니다.


클락 댄스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이 소설의 전반을 설명하는데 "클락 댄스"라는 단어가 매우 효과적일 뿐 아니라 생각할수록 여러 가지로 해석하기 좋은 단어기 때문입니다. 소설에서는 주인공 윌라의 소녀 시대부터 노년까지의 삶을 조망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이던 1967년의 한때, 대학생이던 1977년의 한때, 그리고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2017년의 한 시기를 특정해 삶의 변곡점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마치 클락 댄스에서 특정 각도만 절도 있게 바꾸는 것처럼 말입니다.


소설의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미국인의 전형적인 삶을 묘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건 아마도 한국의 유명 작가 소설을 읽을 때 소설 속 인물을 통해 한국적 삶의 한 단면을 보게 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일반적인 미국인의 삶이 이렇지 않았을까?'라는 상상과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듯한 이야기입니다. 대체로 여성의 삶이 주체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았을 1960년대 이전에 태어난 주인공 윌라는 삶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만나는 선택의 순간마다 안타깝게도 수동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그 선택의 결과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아주 나락으로 떨어지지도 않지만 내세울 것 없는 인생이 되어 그저 그렇게 삶을 마무리할지도 모를 상황으로 흘러갑니다. 원하는 방향으로 물길을 내며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중력이나 주변인의 간섭으로 방향이 결정되는 그런 삶과도 같습니다.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엄마와 평범하지만 공감 능력이 부족한 아빠 사이에서 자란 윌라는 자기중심적이고 사려 깊지 못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도, 힘들 게 키운 두 아들도 모두 윌라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비슷한 시기를 살아낸 국내 소설 속 여주인공 캐릭터와 비교해보면 오히려 무난하고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윌라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감정이입을 하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작가의 필력이 빛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윌라가 만나는 독특한 주변 인물들을 보며 느끼는 감정 또한 신선합니다. "클락 댄스"는 소설을 통해 느낄 수 있는 타인의 삶에 대한 공감과 저항감이 공존하는 간접 체험의 즐거움을 최대치로 느끼게 됩니다.


 


2. 낯선 곳에서 찾은 생소하고 기분 좋은 변화


우리 인생은 항상 선택의 연속이며 그 속에 기회가 오기도 달아나기도 합니다. 좋은 선택은 좋은 기회와 결과를 동시에 얻을 확률을 높여줍니다. 앤 타일러는 "클락 댄스"를 통해서 주인공 우리 삶에서 종종 찾아오는 이례적인 사건과 선택의 상황을 생각하게 합니다. 주인공 윌라는 어린 시절 일관성 없고 무책임하며 감정의 기복이 도를 넘어 롤러코스터처럼 불안정한 엄마와 자신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아빠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지만 이렇다 할 표현을 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대학교에 가서는 열심히 준비하던 전공 공부와 미래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남자친구의 의도대로 이끌려 결혼하게 됩니다. 이 파트를 읽으면서 윌라에게 숨이 턱턱 막히는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너의 공부를 선택하라고! 남자에게 인생을 맡기지 마!'라고 소리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던 그녀는 차 사고로 남편을 잃습니다. 상당히 드라마틱 한 일련의 상황이 펼쳐지는 과정이 생생하고 상황 묘사는 디테일합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에 한껏 빠져들게 됩니다. 독자지만 마치 주인공 주변 인물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옆에서 조언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윌라는 노년이 된 2017년에 와서야 수동적이던 일상에 균열이 생깁니다. 이상한 일이 발생하고 낯선 곳에 가야 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오랫동안 수동적인 삶을 살아온 주인공은 묘한 호기심에 전에 없던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일상을 벗어나는 결정입니다. 이렇게 평소와 다른 한 번의 선택으로 벌어지는 낯선 곳에서의 모험과도 같은 이야기가 이 소설의 핵심 스토리가 됩니다.


소설 속 주인공 윌라는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라고 닦달하는 두 번째 남편과 스스로의 선택으로 벌어지는 미지의 세계 간에서 망설입니다. 내면에서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에 대한 선택은 윌라만의 고유한 것이자 특권입니다. 인생에서 나에게 익숙한 것에는 사실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기회가 있었다면 이미 무언가를 성취했겠지요. 보통 기회는 내가 모르는 낯선 것으로부터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평소 하지 않던 낯선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아무런 의무도 없는 사람을 위해 먼 곳으로 떠나는 윌라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3. 변화를 즐기는 삶의 유익


소설 클락 댄스는 한 여성의 삶을 시간 순으로 조망하는 어쩌면 잔잔한 이야기입니다. 가만히 그녀의 삶을 함께 걷다 보면 노년이 되도록 인생에 별다른 기쁨과 즐거움, 환희의 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마도 수동적으로 환경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이는 내 삶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길 것이고, 혹자는 왜 이렇게 사느냐며 화를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공 윌라는 삶의 변화를 선택합니다. 그녀의 삶이 활력이 넘치고 재미있게 변하는 순간은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선택한 순간입니다. 그로 인해 생소한 환경, 독특하고 유별난 인물들을 여럿 만나며 서서히 변화를 받아들이고 삶의 즐거움을 찾습니다. 사실 변화는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지속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관성은 매우 강력합니다. 그렇기에 지속적으로 변화를 즐기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인생에서 몇 번 경험하기 힘든 순간이 됩니다.


더 이상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운 노년이 되어서야 윌라가 새로운 시도를 해 보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윌라는 염려가 많고 걱정을 사서 하는 소심한 성격으로 묘사됩니다. 수동적이기까지 하다 보니 되도록 보수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행동의 근간은 기존 사회의 매뉴얼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발견하고 변화를 즐기는 단계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결국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힘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윌라는 다소 많이 늦었지만 인생을 마무리하기 전에 그 삶의 즐거움을 깨닫습니다. 삶의 주체성과 환희의 순간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사회적 통념과 행동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노년의 윌라가 멋있어 보이는 것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은 소설은 읽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읽으면서 자신과 사회를 고민하게 합니다. 비록 가상의 이야기일지라도 타인의 스토리를 통해 자아성찰을 하도록 해줍니다. 삶을 깊이 있게 만들어줍니다. 그렇기에 앤 타일러의 "클락 댄스"는 매우 훌륭한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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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는 말투 호감 가는 말투 - 어떤 상황에서든 원하는 것을 얻는 말하기 법칙
리우난 지음, 박나영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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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을 잘 한다는 것...


   "저 친구는 입만 닫으면 최곤데..."라는 말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인간을 평가하는 데 있어 "말하는 능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입니다. 보기엔 준수한 외모와 이미지인데 말을 못 하거나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 매력이 반감되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겉보기는 그다지 매력적인 외모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훌륭한 말솜씨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인싸"가 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의 일상화로 포노 사피엔스적 삶이 자연스러워지고 코로나로 인한 언택트 환경이 조성된 최근에는 직접 말로 의사소통을 하기 보다 간단한 텍스트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말의 중요성'이 줄었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판단입니다. 말보다 문자나 SNS 소통이 일상화되면 될수록 반드시 말을 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말의 중요성'이 더 커집니다. '말하는 능력'의 격차가 커지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 더욱 눈에 띄기 때문에 어쩌면 그 어느 시기보다 말하는 능력을 갈고닦을 필요성이 큰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끌리는 말투 호감 가는 말투]의 저자 리우난은 말하기 전문 강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도 그런 대회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리우난은 학생들에게 말하기를 가르쳐 전국 말하기 대회에 내보내 입상을 많이 시켰다고 합니다. 말하기 대회라니 그 자체가 신기합니다. 중국은 말을 못 하는 학생이 많은 것인지, 말하는 능력에 대해 우리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타고난 달변가여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성격이 활달해 거리낌 없이 말을 내뱉는 것이 중요한 것일까요? 이 책의 저자 리우난은 말솜씨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고 단정합니다. 말하는 능력은 향상이 가능한 기술의 영역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을 잘 하려면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말이라는 것은 방법을 알고 연습하면 좋아진다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말을 잘하고 못하고에 있어 개인차는 분명 있다고 봅니다. 학습 능력에도 개인차가 큰 만큼 말하기도 연습에 비례해 향상되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그러나 말하기를 연습하면 말하는 기술이 늘어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단 말뿐만 아니라 인간은 무엇이든 배우고 연습을 반복하면 잘하게 되는 "반복 학습"의 동물이 아닙니까? 말하기라고 해서 예외일 리가 없겠지요.




2. 말하기 능력을 키우려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말하기가 노력에 의해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 문제는 단순해집니다. '말을 잘하고 싶으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입니다. 저자는 책에서 상황에 따른 적절한 말하기 법칙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다음 단계로 아는데 그치지 않고 연습과 훈련을 통해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여러 가지 전략과 기술을 적절히 활용해 수준 높은 말 하기를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끌리는 말투 호감 가는 말투]가 말하는 원칙과 방법론을 논하는 책이라고 할 때 중요한 것은 이 책의 내용을 읽고 실제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뭔지는 알겠으나 나는 따라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내용이라면 실용성이 떨어지는 공허한 내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책은 일상의 교제, 대화, 감정 교류, 설득, 연설, 토론, 협상, 취업 등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8가지 상황에 따른 구체적 원칙과 예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폭넓은 경험에서 나오는 다양한 예시가 실려 독자들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중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 활동을 하는 분 같은데 재미있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예시는 대부분 미국의 주요 인물들에 얽힌 에피소드라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중국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공부하고 활동을 하는 사람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책은 정말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조언으로 시작해 점점 특수한 상황에 이르는 말 하기로 수렴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제1장의 일상 교제에서 활용할 만한 거절 잘하는 법, 속담이나 격언을 활용하는 법, 유머 감각을 키우고 자조적인 태도를 활용하는 방법 등은 매우 범용적인 조언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배우고 익힐 법한 내용입니다. 다음 제2장에 등장하는 대화의 기술 편 역시 대동소이합니다. 3부, 4부로 넘어가면서 점점 범위가 축소되고 특정화되어 갑니다. 급기야는 면접 시 말하는 기술에까지 이릅니다.


   말하기 능력을 키우려면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말하는 법은 뭉뚱그려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책에서 병렬식으로 설명하는 다양한 상황에서 꼭 필요하고 염두에 두어야 할 법칙들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정리하고 새기면 분명 말하기 능력이 향상될 것 같습니다.




3. 말하는 능력이 주는 효용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말하기 지침서로 활용하면 단기간에 말하기 고수가 되도록 이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말하기 고수가 되면 어떤 효용이 있을까요?


'말'로 더욱 만족스러운 인간관계를 맺고, 직장에서 더 여유를 가지며, 다양한 상황에서 당신의 매력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말을 잘하게 되면 인간관계를 유리하고 풍성하게 해나갈 수 있다는 점은 상상이 가능합니다. 저는 이 책을 다 읽었습니다만, 아직 연습과 훈련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당장 크게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만, 그 효능 만은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디테일한 조언들을 적용할 수만 있다면 왠지 만족스러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직장에서 말의 위력은 설명이 필요 없을 지경입니다. 일을 잘하는 능력 있는 직원이지만 말을 딱 부러지게 못해서 평가에서 손해를 많이 보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런 분들은 술에 취하시면 과격한 표현으로 울분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경우입니다. 대답만 시원하게 해도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그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꽤나 있습니다.


   [끌리는 말투 호감 가는 말투]에서 설명하고 조언하는 여러 가지 원칙과 주의사항들을 하나하나 익히기만 한다면 말하기의 고수가 될 것 같습니다. 한 번 읽어서 많은 조언들을 다 기억하지 못하는 만큼 이런 책은 가까이 두고 여러 번 숙지하기에 좋은 책입니다. 실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반복해서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책의 내용을 전반적으로 평가하면 기본에 충실한 책입니다. 없는 게 없는 기본 교제 같은 느낌의 책입니다. 뭔가 묘한 필승전략을 알려준다기보다는 누구나 알아야 할 기본기를 빠짐없이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분야에서건 기본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본이 빠진 요령으로는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용빼는 재주를 알려주는 비법서라고 하기보다는 반드시 알아야 할 기본을 충실히 알려주는 핵심 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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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들 - 일상을 이루는 행동, 생각, 기억의 모음 들시리즈 1
김설 지음 / 꿈꾸는인생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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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슷해 보이는, 그러나 같을 수 없는 일상의 이야기

 

김설 작가의 두 번째 에세이 "사생활들"은 그녀의 일상을 두루 다루고 있습니다. 책 한 권에 담긴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일상의 일부분 만으로도 그녀를 잘 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첫째는 글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솜씨가 뛰어나기 때문이고, 둘째는 글에 솔직함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작부터 그녀는 자꾸 자신이 평범하고 자신의 삶이 남다르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평범'이라는 단어는 사실 저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그녀의 전작 "오늘도 나는 너의 눈치를 살핀다"에서 들려주었던 그녀의 삶을 생각하면 과연 '평범"이라는 단어와 "김설"이라는 사람의 인생에 붙을 수는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녀의 글은 순탄치 않았던 삶의 여정에서 눈물과 고난으로 다듬어졌습니다. 삶의 질곡을 겪어낸 사람이 삶의 무게에 무너지지 않았을 때 풀어낼 수 있는 형태의 글입니다. 애써 평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리 자랑할 것 없는 삶의 과정이었다는 겸손의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읽는 독자는 누구나 느낄 수 있습니다. 고난과 고통의 시간을 이겨낸 사람은 누구보다 위대하며 그 삶 자체가 위로가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독자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때로는 놀라고, 화가 나며, 답답하고, 슬픕니다. 이런 감정의 동요는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부분이 클수록 강해집니다. 공감은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어려움이 있고, 풀리지 않는 미칠 것만 같은 고민과 고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고난과 어려움이 마치 나의 이야기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비슷한 것과 같은 것은 당연히 다릅니다. 누구도 그녀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르기에 얻는 유익도 있습니다. 담담한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유사 감정을 경험하고, 내 삶에 대입해 보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평온한 삶을 살아왔던 것에 대한 위안을 느끼기도 합니다. 에세이의 여러 유익 중 큰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에세이 "사생활들"은 이런 유익을 주기에 매우 의미 있는 책입니다.

 

 

2. 그녀가 사랑하는 것들, 내가 사랑하는 것들...

 

 

책 속에서 작가는 몇 가지 애정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대표적으로 고양이, 문구류, 찻잔, 그리고 책입니다. 일부는 저와 겹치기도 하고 속을 들여다보면 또 다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녀는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애착이 깊습니다. 이전 책의 내용을 떠올려도 짐작할 수 있지만, 그녀는 뭔가를 적당히 하는 법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사랑을 넘어 집착의 수준까지 깊고 집중력 있는 감정을 쏟아붓습니다.

고양이에 대한 애정도 그렇습니다. 처음에 SNS를 통해 고양이를 입양하고 가까워지고 챙기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찌할지 몰라 옹냐옹냐 대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단순히 마음이 약하신가 보다 했었습니다. 고양이가 버릇없이 굴고 할퀴고 생채기를 내도 역시나 옹냐옹냐 봐주기만 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일면 안쓰럽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모습이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부분에서는 저와 같지만 또 다른 점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저는 고양이들을 돌보면서도 할퀴려고 하거나 물려고 하거나 하면 바로 응징(?) 해서 할 수 있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배우도록 해줍니다. 냥이들이 생각보다 똑똑해서 한두 번이면 더 이상 그런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문구류를 좋아하고 사 모으는 건 제 아내와 비슷합니다. 저 역시 도대체 쌓여 있는 노트를, 이미 많은 필통을 왜 또 사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가님의 남편과 다른 점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아도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합니다. 말하지 않아야 좋은 일들이 세상에는 의외로 많습니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찻잔을 좋아하고 모으는 취미는 좋아 보입니다. 뭔가 있어 보입니다. 품격이 있어 보인다는 점에서도 좋은 취미입니다. 인스타그램 하기에도 유리한 취미라 부럽습니다. 저는 뭘 모으는 취미가 딱히 없습니다. 한때는 책을 너무 많이 사고 모았는데 바보 같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대부분 처분하고 요즈음은 가능하면 이북으로 읽고 있습니다.

그녀의 책 "사생활들" 리뷰를 쓰면서 얼렁뚱땅 저의 취미와 생활 일부분을 쓰고 있는 이유는 이 책이 좋은 에세이기 때문입니다. 무릇 좋은 에세이란 저자의 경험이나 일화에 얽힌 이야기를 읽는 독자가 유사한 경험을 떠올리거나 반대로 저자와는 사뭇 다른 기억을 불현듯 떠올리게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이 책 "사생활들"처럼 말입니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경험들의 일부를 리뷰에 옮겨 적고 있는 것입니다.

 

 

3. 글을 쓰는 사람의 인격, 글을 쓰는 사람의 글의 글격

 

 

사실 말장난이기는 합니다만 에세이 같은 성격의 글에는 글을 쓰는 사람의 인격이 묻어나기 마련입니다. 작가는 글의 전반에 작가가 된 자신의 정체성을 둘러싼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인생 중, 후반부에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민이 느껴집니다. 당연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고난 끝에 인생의 안정기에 접어든 작가의 여정을 고려하면 어떤 일을 너무 당연히 받아들이고 자만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길고 어둡고 깊은 동굴을 지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겸손함과 감사함의 표현들을 대하면 작가의 인격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런 인격을 지닌 작가의 글에서는 글을 쓴 사람의 글격이 묻어납니다. 독자들이 이 글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리뷰에서 작가의 지난 삶의 여정과 고난의 일부를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것은 현재 그녀의 삶의 모습은 어두운 동굴을 빠져나온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책을 통해 그녀의 삶의 일부를 함께 들여다본 독자로써 회복되고 나아진 현재의 삶을 마음껏 기뻐하고 축하해 줄 수 있습니다. 책의 중반부에 떠나보낸 절친의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무엇보다 어려울 때 늘 위로하고 함께 하던 친구가 상황이 나아지자 오히려 멀어졌다는 대목에서 안타까웠습니다. 힘들 때 함께 하는 친구가 좋은 친구인 것은 맞지만 그에 못지않게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축복해 주는 친구가 좋은 친구입니다. 상황이 나아지고 성공을 했는데 그 친구가 함께 축하해 주지 못한다는 것은 그 친구가 진심으로 나를 위로했다기보다는 나의 어려운 상황을 보며 상대적인 위안을 누렸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김설 작가가 앞으로 좋은 글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이 모두에게 유익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글을 통해서도 스스로 차차 치유해 나가는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또 어떤 글로 독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지 기대가 됩니다. 이제는 글에 아픔이나 고난보다는 삶의 찬란함과 기쁨과 희망을 담아낼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은 멋있고 아름답기만 한 인스타그램 사진과 글과는 다른 이면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하지만 애써 외면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설 작가의 지극히 사적인 글 "사생활들"처럼 아픔도, 고난도, 괴로움도 적당히 내보이면서 서로 위로하고 이해하며 살아가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글을 통해 삶의 용기를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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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토요일처럼 Monday to Sunday
하재욱 지음 / 삼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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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시대의 사랑과 연민을 노래하는 작가 하재욱


하재욱 작가하면 항상 떠오르는 이미지가 "사랑"과 "연민"입니다. 그중 굳이 따지자면 "연민"의 느낌이 더 진하기는 합니다. 그의 글과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랑은 찬란하고 뜨거운 사랑보다 '나'를 견디게 하는 모질고 벗어날 수 없는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이를테면 가족 간에 나타나는 사랑 말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며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과 같은 사랑입니다.


그의 글과 그림에는 애증과도 같은 사랑의 형태가 자주 묘사됩니다. 이런 사랑의 모습이 독자로 하여금 '연민'을 느끼게 합니다. 때로는 '연민'이 아닌 '공감'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이런 감정의 흐름이 반복되면서 조용한 '치유'의 정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하재욱 작가의 그림 에세이에는 이런 힘이 있습니다.


그의 그림에는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그럴싸함'이 없습니다. 솔직하고 담백한 작가의 성향이 글과 그림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매우 직관적인 감정의 표현이 특징입니다. 작가의 솔직함은 진정성으로 드러나고 이는 독자의 정서를 터치합니다. 그렇기에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묘한 페이소스를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보통 감성적인 작가, 시인의 경우 일상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재욱 작가는 본업인 게임 그래픽 회사일을 충실하게 해 나가면서 매일매일 출퇴근길에 손바닥만 한 수첩에 펜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그의 성실함은 쌓이고 싸여 얼마 전 개인전을 열었고, 지금은 강남에서 상시 전시와 더불어 저 멀리 경남 진해에서도 개인전을 열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쫄 꿀(졸도할 만큼 꾸준히)"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습니다.




2. 자신만의 것이 있는 독창적인 작가 하재욱

하재욱 작가에게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그의 그림에 독창적인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작은 노트에 모나미 볼펜으로 펜화를 그렸기에 개성 넘치고 독특하기는 했지만 뭔가 아쉽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채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다녀온 개인전에서 그림을 감상하다고 확연하게 느낀 것이지만 그의 그림에는 작가만의 색감이 있습니다. 채색 방식도 독특합니다. 저는 그 차이를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만, 갤러리 사장님께서 우연찮게 하재욱 작가의 그림을 한 점 보시고 개인전을 제안한 데에는 그 독특한 채색 방식과 색감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뭔가 설명하기 힘든 그의 작품 만의 색감은 앞에서 설명한 그림 속의 연민과 묘한 우울감과 맞닿아 시너지를 발휘합니다. 저처럼 음악이나 그림으로 감동을 느끼기 힘든 건조한 스타일도 뭔가 울림을 느낄 정도니 그림의 힘이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최근에 '롤린'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브레이브 걸스를 보면서 느끼지만 지금 당장 대중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작품이 매력이 없거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작품을 보노라면 많은 분들이 지금보다 훨씬 그의 글과 그림을 사랑하고 공감하고 감동하는 기회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그의 글과 그림에는 직장인의 비애와 노고, 세 아이의 가장으로서 느끼는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과 애정, 더 이상 크게 성공하기 포기한 듯한 자조 등이 묘하게 섞이고 혼합되어 감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양한 감정의 고리를 끌어내게 합니다. 제가 느낀 그 감상을 다른 독자분들도 함께 느껴 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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