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생활기록부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나혁진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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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령으로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시공간의 한계에 갇혀 사는 인간으로의 삶이 가끔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고 그럴 능력도 없으며 상대방의 속 사정을 알 수가 없을 때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시공을 초월하는 존재가 되어 누군가를 몰래 지켜보거나 내가 몰랐던 사정을 알아내면 좋겠다는 상상을 합니다.


보통 '유령이 되어 아무도 모르게 생활하게 되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하면 마냥 해방감을 느끼거나 묘한 쾌감에 휩싸입니다. 누군가를 혼내주거나 몰래 훔쳐보는 야릇한 상상도 하게 됩니다. 나혁진 작가의 신간 [유령생활기록부]는 만약 '실제로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유령이 된다면 어떤 사후가 펼쳐질까?'라는 흥미로운 상상에서 출발한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소설에서 펼쳐지는 유령 허영풍의 사후 삶은 기대만큼 즐겁지도 자유롭지도 않습니다. 인간의 생활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보니 달라진 상황에 적응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도 다양한 불편함을 야기합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생각이 흐르는 인간의 특성상 유령이 되었을 때의 자유로움에 대해서만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인간사에 어떤 간섭도 할 수 없는 이방인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고전 SF의 전설 H.G. 웰스는 소설 <투명 인간>을 통해 투명 인간의 장점보다는 아무것도 입을 수도 기척을 완전히 죽일 수도 없는, 그렇다고 사람들 앞에 존재를 드러낼 수도 없는 투명 인간의 존재적 고충에 대해 강렬하게 묘사한 바 있습니다. 나혁진 작가 역시 유령의 존재적 고충에 대해 세밀한 시선으로 유려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죽음을 맞이한 모두가 유령이 된다면 아마도 유령 세상이 더 번잡하고 정신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설정은 소설을 극적으로 이끌어가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죽음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만 유령이 되고, 이후라도 납득할 만한 상황이 되면 소멸하거나 사후세계로 가게 된다는 설정은 독자가 이야기와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됩니다.




2. <유령생활기록부>가 더욱 재미있는 지점들


<유령생활기록부>는 장르소설로 봤을 때 상당히 탁월한 지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설정이 매우 구체적이고 섬세합니다. 모두가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구체적으로 고민해 보지 않았던 상황에 대해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익숙함과 낯섬을 동시에 느끼는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아, 그렇구나. 유령이 되면 저런 문제가 생기겠구나. 나라도 저렇게 느꼈을 것 같아'라며 공감하고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생활밀착형 드라마 같던 소설이 미스터리 요소가 어우러집니다. 여기에 "유령이라는 존재"만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을 잘 설정하고 이를 풀어나가며 장르적 재미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쉽게 풀 수 없는 미스터리한 사건일지라도 유령이라면 손쉽게 파헤칠 수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 탐정이나 형사들이 등장하는 미스터리 소설과는 또 다른 재미 요소를 포함하게 됩니다. 여기에 물리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설정상의 한계까지 잘 활용해 더욱 흥미로운 미스터리 소설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 캐릭터의 내면 묘사가 참으로 탁월합니다. 유령이 되어서 겪는 여러 가지 감정 변화와 복잡한 심경을 풀어나가는 작가의 필력이 훌륭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읽다 보면 '진짜 저런 마음이 들겠어'라며 공감하고 내 상황에 이입하기도 하면서 독서 중 다양한 감정 변화를 느끼게 됩니다. 캐릭터를 독자와 동기화시키는 작업이 매우 잘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이야기의 무게감에 있어서도 균형점을 잘 찾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령 이야기라 기본적으로 코지 미스터리 같은 풍으로 흘러갈 수도 있지만 인간으로도 유령으로도 살아가기 녹록하지 않은 존재적 괴로움에 대해 묵직하게 잘 묘사하고 있어서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울한 소설은 아닌 것이 초중반에 약간의 유머러스한 장면들을 배치해 무게를 줄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스토리가 하나의 완결성을 띠고 잘 마무리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소설적인 완성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각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추리소설적 요소가 그저 포함된 것이 아니라 결국 유령생활기록부 스토리의 대단원을 마무리해 주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여겨질 만큼 설정과 전개의 인과관계가 유기적입니다. 인간의 삶이건 유령의 삶이건 대체로 기대하는 만큼 잘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분히 극적인 마무리기는 합니다만 그렇기에 재미있는 한 편의 연작 소설이 완성된 것 같습니다.



3.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나을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도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살아있는 인간으로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나은 것인지, 아니면 먹고 자고 일하는 이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유령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을지의 문제였습니다. 이런 생각은 <유령생활기록부>라는 독특한 소설을 만나지 않았다면 평소에 생각할 일이 없는 문제입니다.


소설 속에 묘사되는 유령의 생활에서 가장 큰 문제라 생각되었던 부분은 존재적 외로움입니다. 수많은 인간은 유령을 볼 수 없어 그들의 존재 여부를 고민할 일이 없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논외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유령 입장에서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도 주장할 수 없고 인간들에게 가닿을 수도 없습니다. 특정 영매를 통해서라면 존재를 알릴 수 있지만 지나치게 특수한 상황에 한정됩니다. 인간의 인격을 그대로 유지한 유령이라면 이런 철저한 외면의 상황에 익숙해지기 어렵습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필연적으로 존재를 확인받고 정서적인 관계를 맺고 우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사회적 인간이라는 [호모 소키에스(homo socies)], 사회적 동물이라는 의미의 [호모 소시올로지쿠스(homo sociologicus)], 또는 외로운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솔루스(homo solus)], 그리고 공감하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 등의 다양한 용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허영풍의 고달픈 삶을 대하며 공감도 하고 동정도 하게 되면서 정서적으로 복합적인 심정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 좋은 점은 단순히 삶을 마감하고 유령이 된다고 해서 문제가 그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유령도 유령 나름의 애로사항이 많고, 제한도 너무 많아서 유령이 된다고 모든 것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유령이 되어도 고통받는 인생이기에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가볍고 장난스러운 마음으로 시작한 소설이 꽤나 묵직한 고민과 함께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 고민하고 전망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잡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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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줄로 사로잡는 전달의 법칙
모토하시 아도 지음, 김정환 옮김 / 밀리언서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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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

 

   페이스북,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그야말로 1인 미디어 전성시대입니다.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내고 본인만의 매력으로 돈을 벌기도 하고, 영향력을 뽐내기도 하며 자아실현을 합니다.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매우 중요한 도구입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매체의 다양화는 자기표현의 욕구를 구체화하는데 더욱 매력적인 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다양한 미디어와 기술을 활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열을 내고 있는 상황은 수용자 입장에서는 누구의 목소리에 주목할 것인가의 문제를 야기합니다. 그러나 선택의 폭이 너무 넓어지면 오히려 선택에 어려움을 겪기 마련입니다. 누구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지 선택하는 가이드가 존재하지도 않지만 기준마저 모호합니다. 부정확한 지식, 잘못된 정보, 과장 광고 등이 난무해도 옥석을 가리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원래 남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습니다. 모두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표현의 욕구는 강하고 경청의 욕구는 약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SNS, 유튜브, 짤방의 시대, 스킵의 시대답게 집중력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원래 그렇다고 보는 게 바른 관점입니다. 사람들은 원래 내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하고 싶습니다. 표현하고 싶고, 내 뜻을 관철시키고 싶습니다. 수많은 정보와 수없이 떠도는 말 중에서도 내 말을 상대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상업적인 목적이 있다면 더욱 상대의 마음에 콕 박히는 말을 전달해야 합니다. 그러나 통상 우리는 전달을 잘하는 비결이 있는지 고민하지 않습니다. 만약 뭔가 좋은 비결이 있다면, 그리고 어려운 방법이 아니라면 전달하고 싶은 욕구를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2. 전달력을 높이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법칙

 

   밀리언 서재의 신간 [단 1줄로 사로잡는 전달의 법칙]은 하루에도 수십만 개가 쏟아지는 정보 중에서 내가 전하고자 하는 정보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 책입니다. 저자 모토하시 아도는 일본 텔레비전 버라이어티 방송 연출가 출신으로 기업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방송은 특성상 짧은 표현으로 정확한 의도를 전해야 합니다. 저자는 이런 환경에서 필요한 문장 구사 법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익힌 베테랑입니다. 텔레비전 방송 제작 기법을 활용하면 다양한 미디어 제작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27가지의 중요한 비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비법들을 골고루 잘 활용할 수만 있다면 나의 의도가 상대에게 효과적으로 잘 전달되고 많은 사람들이 나의 영상이나 미디어에 집중하게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성공과 실패, 특별함과 평범함을 가르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전달의 법칙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달의 법칙은 고도로 훈련이 필요한 기술이 아니라, 늘 쓰는 문장에 "단어 하나 덧붙이는 것"만으로 대단해 보이는 연출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온라인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단 1줄 카피이며 전달력을 높이는 패턴을 잘 활용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길지 않은 분량의 이 책을 읽다 보면 진짜 전달력이 높아지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이 책을 집필할 때도 전달의 법칙을 적절히 활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3.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은 전달 법칙의 비밀

 

   이런 구성의 비법서를 읽고 나면 스스로 한 단계 성장하는 듯한 생각이 들지만 실상 현실로 돌아오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나를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연유에서 "자기 계발서 무용론"을 펼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오래전에는 자기 계발서의 허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강했습니다.

 

   대한민국 1호 잡 크리에이터 김승 씨는 저서 "서재의 마법"에서 이런 독후 무력감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산 정상에서 심장을 뛰게 만드는 것은 독서를 통한 감격과 울림이겠죠. 이를 흔히 ‘동기부여’라고 합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울컥하던 감격이 책을 덮고 일어서는 순간 사라진다는 것은 마치 산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정상에서의 호연지기를 잊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정상과 세상, 이상과 현실의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베이스캠프’라는 사실입니다."


   "서재의 마법"에서 독서 사이클을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책에 소개되는 여러 "비법"들을 읽고 새로운 것을 알고 깨닫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이를 실제 생활에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를 고민해 행동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여기에 피드백을 통한 조정 과정까지 거쳐야 실제 내 삶에 적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책의 저자 모토하시 아도 역시 맺음말을 통해 '아는' 것과 '활용하는' 것은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하면서 일상생활에 실제로 적용해 보면 일상 커뮤니케이션에 놀라운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분들, SNS 등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쏟아 내는데 사람들이 주목해 주지 않아 속상한 분들, 상업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데 쉽지 않은 분들이 계시다면 한 번쯤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 그러고 보니 [단 1줄로 사로잡는 전달의 법칙]을 다 읽은 저의 글이 너무 길고 지루하다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지는군요. 앞으로 책 리뷰를 1줄로 써야 하나 심각한 고민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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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무엇이든 괜찮아 누군가의 첫 책 3
김정희 지음 / KONG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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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날로그 맛 나는 그림 에세이

 

김정희 작가의 <지금이야, 무엇이든 괜찮아>는 공출판사 "누군가의 첫 책" 시리즈 세 번째 책입니다. 시리즈 두 번째 책 <혼잣말>도 그림 에세이지만 조금 결이 다른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인 아날로그 맛이 물씬 느껴지는 책이라는 점입니다.

작가님의 이력을 보면 나이도 나이지만 살아온 인생의 로그 라인이 아날 아날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위로 삼아 살아온 사람,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던 사람, 책을 좋아해서 늘 읽고 쓰는 사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에게 책 읽는 법을 가르치는 독서지도사로 일했던 사람. 저자의 삶의 궤적에서 나오는 솔직한 이야기들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비중이 큰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눈에 띄었던 부분이 있습니다. 책의 초, 중반에 음식 관련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그저 맛있는 음식이라기보다는 평범하고 대수롭지 않은 음식이지만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음식을 가져다 가슴 설레는, 때로는 아련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어느 장면에 이르르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떠올리게 됩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 사람들이 힐링을 받는 이유는 자연을 닮은 느리고 소박한 음식, 그 음식을 차려내는 사람, 번거롭지만 먹고사는 것에 오롯이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 때문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 소개되는 음식과 음식에 얽힌 작가의 스토리가 독자로 하여금 힐링을 느끼게 해 줍니다.

 

 

 

2. 진심이 담긴 일상 에세이의 위력

 

 

개인의 일상 에세이에 담긴 효용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내가 겪어 보지 못한 일에 대한 간접 체험의 즐거움을 얻기도 하고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면서 공감하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일상 에세이에서도 몰랐던 여러 가지 정보를 얻기도 합니다.

이런 일상 에세이가 독자의 마음에 와닿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진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심이라는 것이 마냥 진지하게 누군가에게 호소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정말 꾸밈없이 전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정희 작가님의 글은 진솔하고 겸손함이 묻어납니다.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만 해도 그 사람이 얼마나 진솔하고 진심인지 자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진심이 담겨 있다고 할 때 저자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야기 속에 맞고 틀림이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글 속 감정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단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비슷한 일상의 기억을 떠올리고 촉촉한 추억 속으로 여행하게 해주는 이점이 있습니다.

한지만 작가의 <혼잣말>이 전공자의 그림과 세련된 글이 돋보이는 책이라면 김정희 작가의 <지금이야, 무엇이든 괜찮아>는 상대적으로 아마추어적인 포근한 그림과 풋풋하지만 일상적인 글로 다가옵니다. 그렇기에 애틋한 마음으로 공감하기 좋은 책이라 색다른 마음의 울림을 주는 좋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3. 당신의 시간은 몇 시인가요?

 

공가희 작가님은 이 책의 추천사를 쓰면서 "당신의 시간은 몇 시인가요?"라고 묻고 있습니다. 무언가 화두를 던지기 가장 좋은 것은 질문을 하는 것이죠. 책을 읽기도 전에 이 책은 하루 24시간 중 오후 5시 49분을 가리키고 있다는 설명에 책에 대한 느낌을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다시 보니 아직도 끊임없이 도전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저자의 모습에서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그럼 나는 지금 몇 시쯤에 서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대략 오후 3시~4시 정도의 시간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뭔가 할 일을 어느 정도 해두고 돌아보니 뭔가 부족하고 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숙제를 다 하지 못한 느낌으로 열심히 마무리하고 저녁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시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의 시간은 몇 시인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몇 시에 있든 간에 지나온 시간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다가오는 시간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고 주저앉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이야기는 누구한테 해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 스스로에게 해주는 이야기인 것만 같습니다.

환갑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작가님의 삶의 궤적은 독자로 하여금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하는 힘들지만 즐거운 삶을 살도록 격려하는 것만 같습니다. 힘든 삶에 지쳐 있는 분이 계신다면 따뜻한 자기 고백에서 오는 공감과 위로, 힘찬 격려가 가득한 이 책 <지금이야, 무엇이든 괜찮아>를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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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형사들 - 사라진 기와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정명섭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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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팩션 소설의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정명섭 작가

 

   팩션 소설은 기록으로 남아 있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렇기에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에게 생생한 스토리로 다가오는 장점이 있습니다. 등장인물이 실존 인물로 대중적으로 알려진 경우는 더 흥미를 자극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역사적 기록이라는 것이 지면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큰 사건이 한두 줄의 요약본처럼 써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팩션 소설 얼마나 좋은 이야기인가는 기록되지 않은 행간을 채운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습니다.  팩션 소설의 승패는 결국 역사적 기록 중 독자들의 흥미를 끌만한 사건을 발굴해 선택하는 능력에 사실이라는 뼈대를 메우는 피와 살이 얼마나 충실하고 수려한가에 달려있습니다. 정명섭 작가의 [조선의 형사들 - 사라진 기와]는 역사적 기록과 작가적 상상력의 조합이 어떠해야 바람직한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와도 같은 작품입니다. 

 

   조선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 스토리는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당시 정치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주변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는 상황 자체가 매력적인 소설의 배경을 제공합니다. 왕권과 권력을 둘러싼 정쟁이 끊이지 않는 정치적 여건이 이미 소설적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일상적이지 않은 사건이 발생하면 바로 음모론적 상상과 자동으로 연결되기 딱 좋습니다. 

 

   팩션 소설의 대가인 정명섭 작가는 몇 줄 안되는 역사적 기록에서 재미있는 스토리의 냄새를 맡는 데 이미 경지에 이르른 것 같습니다. 소재 선정으로부터 상황 설정, 인물 선택과 플롯 배치와 서사의 흐름 등이 자연스럽게 연계되면서 팩션 소설은 바로 이 맛이 아닐까 하는 감탄을 하게 만듭니다. 

 

2. 의문의 사건과 흥미로운 등장인물들의 활약

 

   이 소설이 흥미로운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 엉뚱하고 의아합니다. 통상 미스터리는 누군가가 살해된다거나 사라지는 등 자극적인 사건으로 시작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달랑 기와가 사라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위패를 모시는 사당의 기와가 사라지는 일은 내부적으로 책임 소재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고 실제로 큰 소동이 일어납니다만 독자 입장에서는 '기와 따위를 왜?'라는 의문과 동시에 강렬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치로 사용됩니다. 이야기의 끝까지 긴장감과 호기심을 유지한 채 즐길 수 있는 좋은 장치로 작용합니다. 

 

   캐릭터의 설정과 활용도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존재 자체가 스토리인 네임드 정조의 존재감이 큽니다. 또 한 명의 네임드 정약용은 왕의 총애를 받으며 실질적인 실세로 활약합니다. 정약용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아주고 스토리가 정상적으로 이어지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필드에서 실제로 뛰어다니며 하드보일드 한 재미를 더하는 좌, 우 포도청 군관 이종원과 육중창도 이야기를 살리는 훌륭한 캐릭터입니다. 날렵하고 말이 많으며 지능적인 이종원과 우직한 하드웨어로 범인들을 압도하는 이름도 육중한 육중창은 서로 너무 다른 캐릭터지만 힘을 합쳤을 때 최고의 시너지를 자랑합니다. 

 

   이에 대항하는 세력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영웅 서사에서 빌런이 약하면 스토리가 흐물거리기 마련입니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배후 세력이 탄탄하고 이들의 범죄 동기가 강할수록 텐션이 살아납니다. 여기에 배후 세력을 돕는 내부 인물의 엉뚱한 짓도 스토리를 풍성하게 해주는 좋은 장치인데 이 소설에서도 포도부장이라는 인물로 이런 재미를 잘 살리고 있습니다. 

 

   사라진 기와 사건으로 시작해 포도청 군관들이 활약할 무대를 만들고 어이지는 살인 사건으로 스토리를 복잡하고 다양하게 전개하다가 다시 처음의 기와 사건으로 귀결되는 흐름이 자연스럽고 막힘이 없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뛰어나고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3. 팩션 소설 속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

 

   [조선의 형사들]이 더 좋은 소설로 여겨지는 이유는 단순히 흥미 위주로 사건을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계층 사회인 조선시대는 양반에 의한 횡포가 만연한 사회입니다. 사회 약자들이 기본적인 보장조차 받지 못하던 사회이기에 그 시대 상황을 빌어 현대의 사회적 문제를 역설하기에 좋은 구조입니다. 

 

   정명섭 작가는 단순한 역사적 기록에서 행간에 담긴 사회적인 문제를 수면 위로 잘 끌어올렸습니다.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고 있지만 기득권 권력 세력 간의 암투와 욕망의 단면을 적절히 배치했고, 권력자의 자녀가 무뢰배보다 더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단죄를 받지 않는 모습을 통해 최근에 불거진 몇몇 사건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포도청에서 빠른 사건 해결을 위해 무작정 아무나 데려가 심문을 하고 범인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선택적 조사와 사건 만들기 등의 무리수가 드러나는 현대의 상황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진실을 밝히려는 조사관들을 오히려 역적으로 몰아서 매장하는 모습도 지금과 다르지 않아 씁쓸함을 자아냅니다. 

 

   한 가지 현실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소설에서 결과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은 단죄하고 불순한 의도로 범죄를 시도하는 자는 실패하고 잡히게 된다는 점입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일임에도 소설적 판타지의 허용으로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은 독자에게 시원한 감정의 정화를 선사합니다. 

 

   이 외에도 역사 소설이라 가능한 생소한 용어들의 등장도 흥미로웠습니다. 쇠도리깨가 어떻게 생겼는지 찾아보게 되고 철릭은 뭔지 전립은 어떻게 생긴 건지 확인해가며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검계라는 조직에 대해서도 따로 찾아보니 흥미로웠습니다. 

 

   실재 사건과 실존 인물을 다루면서 작가적 상상력으로 흥미진진한 미스터리를 뚝딱 만들어낸 이 소설은 사건도 캐릭터도 너무 매력적이고 그 속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까지 더해 최고의 팩션 소설을 창조해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읽은 소설로 팩션 소설의 재미를 느껴보고 싶으신 분이나 워낙 팩션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 모두에게 권해드리고 싶은 소설입니다. 

 

   앞으로 조선의 형사들 시리즈로 지속적으로 출간되어도 계속 사랑받을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화되어도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추후 이 소설이 어떻게 발전되어 갈지 지켜보는 것도 큰 재미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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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층집 - 어둠을 찢고 들려오는 의문의 소리
박성신 외 지음 / 북오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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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층간 소음 그 미묘하고 애매한 문제에 대해...

 

살면서 누구나 해결하기 힘든 문제로 힘들어 보신 경험이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뾰족하게 답은 없고 문제는 지속될 때 우리는 미칠 것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그 문제가 해결이 어렵다면 스트레스 지수는 높아지고, 일상이 흐트러지다 못해 망가지기까지 합니다.

 

   층간 소음은 이웃관계에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입니다. 코로나 이후로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부각되는 문제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층간 소음을 유발하는 태도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민감하게 층간 소음에 반응하는 것 역시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한 요소입니다.

 

이 문제는 누구도 쉽게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점에서 더 답답합니다. 층간 소음이 어느 정도는 괜찮다는 객관적인 기준을 세우는 것 자체가 불가합니다. 시끄러움의 정도는 층간 소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형편과 상황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사를 가면 해결이 될 것 같지만 단독주택으로 가지 않는 이상 이사 후에도 어떤 이웃을 만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층간 소음 문제는 건물의 내, 외부적 상황과 관련된 사람들이 누구인가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합니다. 그렇기에 미스터리한 스토리로 풀어나가기 더없이 좋은 소재입니다. 북오션의 신간 [위층집]은 이런 층간 소음을 소재로 흥미로운 중, 단편 4 작품을 수록한 소설집입니다.

 

   개인적으로 둔감한 저는 층간 소음으로 너무 괴로워하는 분들을 보면 이해하기 좀 어렵기는 합니다만, 상상력을 조금 동원해 보면 어떤 기이한 이야기가 펼쳐져도 납득하게 될 것도 같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의 수록 작품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니 재미도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몸서리쳐지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읽는 독자의 경험 유무나 개인적 성향에 따라 무척 다양한 반응을 하며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저 재미난 장르소설로 읽을 수도 있고, 완전히 공감하며 감정이입해서 읽을 수도 있는 독자 친화적인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2.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참담하리라.

 

   개인적으로 층간 소음에 민감한 편이 아니라 이 소설의 이야기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겠나? 하는 미적지근한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첫 작품부터 장난 아닌 이야기에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그렇다고 불편해서 읽기 싫은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크게 고민을 안 해봐서 그런지 예상이 안되는 신박한 사건이 발생하는 작품들의 흡입력은 대단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으나 설마 이렇게까지 할까?라는 이중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신기한 소설들이었습니다.

 

   박성신 작가의 표제작 [위층집]은 주인공이 거동이 불편한 핸디캡을 줘 더 무섭게 읽은 추리이자 미스터리이자 공포이기도 한 소설이었습니다. 익숙한 추리 미스터리의 공식을 충실하게 밟으면서도 적당한 신선함을 잘 가미한 수작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박성신 작가님은 최근에 [장르소설 입문자를 위한 글쓰기]에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 글쓰기 비법으로 만나 뵌 분인데 작품을 읽어보니 과연 비법을 알려주실 만큼 필력이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멸 일기]로 유명하시고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는 교사이자 소설가인 윤자영 작가님의 이번 수록작 [카오스 아파트의 층간 소음 전쟁]은 가장 전형적이고 스탠더드 한 층간 소음 분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층간 소음 전쟁으로 온갖 활극이 펼쳐지다가 상상도 못한 이유 때문에 살인이 벌어지는데 여기에 다양한 인물이 얽히고설켜 복잡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가 완성되었습니다.

 

   베테랑 양수련 작가님의 [소리 사이]는 층간 소음 문제를 살짝 비트는 이야기를 탄생시켰습니다. 오히려 적막을 견디지 못하는 주인공과 온라인에서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는 인물 때문에 발생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관계 때문에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온라인 관계의 허무한 단면까지 고발하는 시사성 있는 이야기로 완성되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설정인 온라인 상담녀의 이야기와 실체에 대한 스토리는 이미 읽은 적이 있어서 설마설마하면서 읽었는데 정확히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양한 소설을 발표하고 계시는 김재희 작가님의 짧은 단편 [506호의 요상한 신음]은 층간 소음보다는 이웃집 소음을 소재로 삼은 소설입니다. 상대적으로 호러나 스릴러 같은 무서움을 유발하지는 않고 오히려 가볍게 읽을 수 있어 마무리 작품으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짧은 분량에 다양한 반전을 준비한 흥미로운 소설이었습니다. 다만, 설정이나 결말이 다소 무리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등장인물의 반응도 자연스럽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캐주얼한 소설로 읽으면 괜찮은데 아마도 앞의 세 작품과 결이 좀 달라서 연장선상에서 읽다 보니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던 것 같습니다.

 

 

 

3. 스트레스가 만연한 사회, 일상이 공포가 될 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스트레스 사회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입는 것도 무서운 일이지만 [소리 사이]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다수 속에 고립된 외로운 개인으로 존재할 때의 정서적 문제도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라고도 하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고도 합니다. 그만큼 어떤 영역에 있어서 균형감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결국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는 문제는 균형감을 잃었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의 총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까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알고 지내던 과거에는 이웃사촌 간 다양한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공동체에 오픈되어 어느 정도는 합의를 도출할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웃사촌의 역할을 관리사무소나 보안업체가 맡는 공포 사회가 되면서부터는 원만한 해결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탄 남성이 잠재적 위협요소이자 범죄자로 보게 되는 안타까운 일상은 수많은 파생적인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중년 남성인 저도 다양한 스트레스에 노출됩니다. 아마도 이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읽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건 독자들이 겪었던 일이 떠오르기도 하면서 다양한 감정과 기억과 분노를 소환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역시 여러 장면에서 공감하게 되실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요소가 무척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소설을 통해 근본적인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한 단면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파트를 세울 때 층간 소음을 충분히 고려한 구조적인 조치를 하지 않은 점, 이제야 층간 소음을 막을 수 있는 구조의 아파트를 세운다는 소식이 들리는 점도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층간 소음 문제로 너무나 고통받음에도 불구하고 너 나 없이 다들 아파트 생활을 선호하는 부분도 아이러니합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각자 그냥 더 조심하자라고 쉽게 말할 부분도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 중에 공동 주택 방식이 주를 이루는 한국 사회의 특성에서 발생하는 미스터리하고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재미는 물론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합니다. 층간 소음에 고통 당한 기억이 있으신 분들은 물론 상상도 못했던 일상의 공포와 호기심, 안타까움 등의 감정을 느끼고 싶으신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읽으실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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