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신세계 메타버스를 선점하라 - 앞으로 인류가 살아갈 가상 세계를 위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자오궈둥.이환환.쉬위엔중 지음, 정주은 옮김, 김정이 감수 / 미디어숲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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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다시 메타버스인가?


   코로나로 촉발된 언택트, 온택트의 시대에 작년 한해 최대 화두는 메타버스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제는 누구나 메타버스를 언급할 정도로 익숙한 용어가 되었지만, 사실 메타버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개념이 광범위하고 게임부터 SNS까지 실제로 폭넓게 이미 활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메타버스가 유용하냐? 허구에 지나지 않으냐의 문제로 첨예한 대립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항상 새로운 개념의 용어를 주창하면 그 반대 급부로 무용론이 등장하곤 하니 자연스러운 흐름이긴 합니다. 게다가 대체로 대중은 부정적인 주장에 더 관심을 보이고 공조하는 경향도 있다 보니 한동안 유행처럼 통용되다가 시큰둥해진 느낌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왜 다시 메타버스일까요? 생각해 보면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어떠하건 간에, 우리의 미래 사회가 지금과 같을 수는 없으며 적어도 디지털 트랜스폼이 더 활발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그러기에 메타버스가 어떤 용어인지 개념만 이해하는 수준에서 조금 더 나아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메타버스에 관련된 기존 대중서가 메타버스의 개념과 적용되는 기술, 이미 일부 적용되고 있는 분야의 사례 소개 등에서 그쳤다면 이 책 <디지털 신세계 메타버스를 선점하라>는 한 두어 발자국 정도 더 나간 내용을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도대체 메타버스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일개 개인에 불과한 대중들이 뭘 할 수 있는지 남일처럼 여겨지는 시기에 생각해 볼 이슈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한 책이 아닐까 판단됩니다.


   중국의 젊은 작가들이 공저한 이 책은 메타버스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는 물론 메타버스에 익숙한 M 세대에 대한 언급, 메타버스의 촉발을 유발한 게임, 메타버스의 경제학적 분석, 현실 세계와의 연계와 관리 방안, 메타버스 인프라의 관점에서 초대륙에 대한 소개, 마지막으로 관련 히스토리 정리와 더불어 메타버스 활용방안에 대한 제언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2. 경제분야에 특화된 메타버스 설명서

   이 책은 메타버스의 본질과 관련 분야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이고 차별화되는 분야는 단연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설명하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만의 존재 가치를 한 마디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탁월한 경제학적 시각의 제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메타버스 세상에서의 경제라 하면 독자에게 어렵고 생소할 소지가 다분합니다. 이 책은 기존 경제 원칙과 대비해 달라지는 부분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어 훨씬 생생하게 다가온다는 점이 강점입니다. 전통 경제학의 가장 기본 전제 조건은 경제활동을 위한 자원이 유한하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가치가 결정되고 공급과 소비의 문제가 얽히게 됩니다. 또한 경제 주체가 이성적으로 행동한다는 전제 역시 중요합니다.


   이 책은 메타버스 내 경제에서 주체가 되는 아바타가 이성적이기보다는 경험을 중시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아바타는 죽음의 위험이나 삶이 일회성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기 때문에 '한 번 경험해 보고 아니면 말고'가 가능하다 보니 일단 경험하는 쪽으로 결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복하는 온라인 게임을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양상입니다.


   또한 디지털 세계에서 자원이란 유한하기보다는 오히려 무한한 쪽에 가깝습니다. 필요한 자원을 끊임없이 생성하고 유통할 수도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불법 복제의 문제도 방지할 수 있어 자원의 공급자 입장에서도 수익이 보장되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런 환경이다 보니 노동 자체로 가치가 결정되기보다는 구성원들 간의 인정이라는 요소가 가치를 결정하게 됩니다. 거래를 위한 시장 형성 비용도 줄고 거래 자체의 비용도 거의 들지 않습니다. 이런 디지털 세계 내 경제학적 특성이 잘 설명되어 있어 이해를 돕습니다.


   책에서는 메타버스 경제의 4요소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창조, 디지털 자산, 디지털 시장, 디지털 화폐의 4가지 요소를 소개하고 각각의 세부적인 내용을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경제적 시각으로 메타버스를 살펴보는 중요한 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환경에서나 항상 문제는 돈입니다.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 돈 문제임을 감안하면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발점에서부터 돈 문제를 유발하는 요소와 특성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3. 메타버스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회자되고 있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무척 추상적인 개념일 수밖에 없습니다. 익숙해진다는 것과 내가 활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메타버스의 세계가 열린다고 각 개인이 그 주체가 될 수 있는가는 의문의 영역에 있습니다. 메타버스는 사실 굉장히 광범위하고 거대한 흐름이기 때문에 개인에게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비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무용론, 허구론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메타버스를 이해하던 무시하던 메타버스라는 용어로 통칭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올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외면하기보다는 새로운 개념과 그에 따른 변화를 최대한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해하고 파생분야까지 알고 있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자는 메타버스의 큰 덩치를 감안해서 메타버스를 선점하는 것은 메타버스를 형성하는 기반 시설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데이터와 애플리케이션 등을 모두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플랫폼을 초대륙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결국 메타버스를 선점한다는 것은 거대 기업이나 국가, 또는 컨소시움 등이 전체적인 플랫폼을 얼마나 잘 제공되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초대륙의 성공 여부에서 관건은 플랫폼 참여자가 쉽고 단순하게 활용할 수 있는 툴을 제공하고 범용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주느냐의 문제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규모에 있어서 거대 공룡들의 각축장이 될 것임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에서 개인이 끼어들 공간은 사실상 없어 보입니다. 메타버스가 뜬구름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개인이 좌우할 수 있는 범위를 까마득히 넘어서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드넓은 메타버스 세계에서 메타버스를 움직이고 발전시키고 변화시키는 주체는 결국 참여하는 개개인입니다.


   결국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 메타버스의 문제에서 독자인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디지털 신세계 메타버스를 선점하는 플랫폼을 잘 살펴보고 빠르게 선택해 올라타는 안목일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올라탄 메타버스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구성원의 인정을 통해 경제적 부를 누리는 데까지 가면 더없이 좋은 시나리오일 것입니다.


   메타버스에 대해 막연한 개념만 가지고 있던 분들이나 메타버스 시대에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시각과 통찰이 필요한 독자가 계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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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변화는 말투에서 시작된다 - 소중한 내 인생과 관계를 위한 말하기 심리학
황시투안 지음, 정영재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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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을 잘하는 것도 능력이다.


살다 보면 주변에서 말을 정말 유창하게 잘 하는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뭔가 자신감이 없어 우물쭈물하면서 말하거나 같은 말이라도 듣는 사람의 신경을 건드리고 불편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말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하려고 하면 땀이 줄줄 흐르고 온몸이 긴장되어 제대로 말을 못 한 경험이 떠오릅니다. 그때는 뭐가 그리 두려웠는지 자신감 없이 벌벌 떨고 얼굴이 붉어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말하는 것도 조금은 나아진 것 같습니다. 이런 변화는 개인적으로 나이가 들어 뻔뻔해졌기 때문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인생의 변화는 말투에서 시작된다>의 저자 황시투안은 말을 잘하는 것이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 반복학습하거나 모방하거나 책을 읽는 등의 행위를 통해 학습이 되고 개발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말을 얼마나 잘 하는지는 성격과 전혀 상관없다. 천성이 강직한 사람 중에도 대화에 능통한 달인들이 많다. 말을 할 줄 아는 것은 하나의 능력이다. 그리고 능력은 학습을 통해 충분히 향상될 수 있다."


성격이 활달하고 좋은데 말은 듣기 싫게 하는 사람을 종종 만났던 경험에 비추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말을 잘하는 것과 성격을 연결하게 되는 큰 이유가 말이 심리학적인 문제와 연관이 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심리학자이자 심리상담가인 자신의 직업적 경험과 노하우를 토대로 심리학과 연계한 말하기 방법론을 정리해 책으로 출간한 것입니다.


이 책의 기본 기조처럼 말을 잘하는 것이 심리학적 접근으로 차근차근 정리하고 연습하면 충분히 좋아지는 능력이라면 이 책의 유용성은 더욱 빛날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의 풍부한 상담 경험에 기초한 다양한 방법론을 읽다 보면 나의 말 하기 능력을 향상시킬 방법이나 방향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능력은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니 말입니다.



2. 말투를 공부하다 인생을 배우는 이유


말투에 대해 고찰하고 말하는 방식을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자연스레 '나의 말 하는 방식'에 대해 살펴보게 됩니다. 한 인간이 말하는 방식, 말투는 당연히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과 학습 수준, 경험의 차이 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체로 좋은 말투와 나쁜 말투가 확연히 구별되기는 하지만, '왜 저렇게 말하는가?'의 문제는 개개인의 특성의 영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투에서 시작된 고민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게 됩니다. 내가 하는 말투는 나의 내면을 드러내고 나의 상태를 표현하는 하나의 그릇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말투를 바꾸는 공부를 하는 것은 자연스레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는 시도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말이 씨가 된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는 내가 뱉은 말이 나를 구속해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경우입니다. 이 책의 2장 챕터 제목이 <내가 뱉은 말이 내 인생을 구속한다>입니다. 책의 주제와 잘 어울리는 소제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긍정적인 말을 내뱉으면 내 인생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긍정적인 말을 뱉으려면 나의 내면이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선문답 같은 이야기지만 결국 내면이건 말투 건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부정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는 차원에서 볼 때 표면으로 드러나는 말투를 바꿔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빠른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은 매우 유용합니다. 챕터마다 소개되는 예시를 통해 말하는 방식과 메커니즘에 대해 다양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다소 과장되어 보이거나 극단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관점에서는 적절하고 와닿습니다.


더 좋은 것은 말투에서 시작된 나에 대한 관찰과 공부는 자연스레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이런 식으로 인식의 범위를 넓혀 나가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타인과의 관계도 잘 맺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발전시켜 주는 시작점이 말투를 긍정적이고 바람직하게 바꾸는 것입니다. 이 책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읽어나가다 보면 분명 인생을 대하는 의미도 조금은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3. 말하는 방법을 책으로 배워야 하는 이유


이런 유의 책을 읽다 보면 항상 만나는 반응이 있습니다. 어차피 읽어도 바뀌는 것도 없는데 뭐 하러 시간 들여가며 읽느냐? 좋은 말이지만 막상 해보면 하나도 안되더라. 결국 사람들의 결핍을 이용해 저자나 출판사만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냐? 등의 이야기 들입니다. 흔한 자기 계발서 무용론의 반응 중 일부입니다.


저도 유사한 책들을 많이 읽었지만 저의 말이 눈에 띄게 좋아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뭘 해야 하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어떤 태도로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말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등에 대한 기준은 어느 정도 생긴 것 같습니다.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우고 본능적으로 말솜씨를 가다듬는 방법도 매우 유용하고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같은 노력을 들인다고 가정할 때 전문가들의 조언과 노하우가 담긴 이런 책을 꾸준히 읽어나가는 일을 병행한다면 장기적으로 훨씬 더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인생의 변화는 말 하는 습관을 바꾸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말을 잘하면 평생 득을 보고, 그렇지 않으면 가는 곳마다 벽에 부딪힐 것이다."


말하는 습관을 그냥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관련 주제로 정제된 좋은 양서를 통해 지향점을 배우고, 구체적인 방법을 익히는 편이 훨씬 바람직합니다. 여정을 떠날 때 시작점과 목표지점을 정확히 알고 여행의 수단까지 안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습니다. 평생 득을 보는 말하는 습관을 어떻게 바꿔 나갈지 책을 통해 점검해 보는 일은 상당히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세련된 언어의 기술들로 자신과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더 나아가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잘 정제되고 세련된 언어는 타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힘을 북돋아줄 수 있습니다. 도움을 줄 때도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개개인의 노력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사실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거라는 믿음조차 말을 긍정적으로 하려는 노력에서 시작해 사고방식과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노력의 결과로 빚어낸 긍정적인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되는 것도 없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 상황일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늘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낙심하지 않고 말하는 것 하나부터 먼저 바꿔보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미디어숲에서 출간된 신간 <인생의 변화는 말투에서 시작된다>를 읽어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적어도 긍정적인 변화의 시작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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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의 인사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8
김서령 지음 / 폴앤니나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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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뜻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는 최고의 소설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 전에 장 해독, 간과 담낭 담석 청소(플러싱) 프로그램을 했습니다. 채식 위주의 식사로 몸이 가벼워지고 특히 음식을 먹을 때 재료 본연의 맛이 느껴지는 것이 큰 소득이었습니다. 맨밥에 알배추만 찍어 먹어도 너무 맛있다는 느낌, 순한 맛이 깔끔하고 오히려 깊다는 느낌을 되찾아 먹는 행복이 커졌습니다.

 

이런 와중에 제주 여행을 다니면서 맛집을 검색하고 방문하면서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고 좋아하는 맛집은 맛이 정말 강렬하다 것, 참기 힘들 정도로 간이 세고 자극적입니다. 개인적으론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다는 감상과 함께 음식점 리뷰를 써서 비추라고 하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음식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재료 본연의 맛...이라고 해도 요즈음 트렌드에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맛집의 조건 중 최상위를 차지하는 건 '인스타그램 사진이 얼마나 이쁘게 잘 나오는가?'인 모양입니다. 너도나도 맛집을 찾아 사진을 올리고 자랑합니다. SNS 유저들은 그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며 맛있겠다고 감탄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SNS의 시대에 모양은 공유해도 맛 자체를 공유할 순 없으니 보이는 것이 중요한 세상입니다.

 

거두절미하고 김서령 작가의 경장편 소설 <수정의 인사>는 근래 만난 소설 중 단연코 최고입니다. 음식뿐 아니라 근래 웹소설, 웹툰, 넷플릭스 드라마 등 전반적으로 강렬한 장르 위주로 보고 읽고 있는데, 매우 자극적이었습니다. 솔직히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갈증이 꽤나 컸습니다. '이런 거 밖에 없을까?' 정도의 감상이 남는 재미랄까... 재미있고 강렬하고 좋은데 뭔가 아쉽습니다. 채워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계속 있었습니다.

 

<수정의 인사>는 저의 이런 갈증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해준 작품입니다. 슴슴하지만 깊은 맛이 살아있는 소설입니다. 재료와 조리법, 플레이팅의 조화가 완벽해 여러 번 놀라는 소설이었습니다. 심지어 분량도 짧아서 산듯하고 깔끔하지만 끝까지 깊은 그런 웰메이드 작품입니다.

 

 

 

2. 무엇이 웰메이드인가?

 

이 소설의 특장점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가장 직접적으로 와닿았던 부분은 독백체, 서간체 느낌이 환상적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이 떠오르는 작품이었습니다. <환상의 빛>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서간체 문학의 백미와 같은 작품입니다. <수정의 인사>도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의 동화 같은 독백체가 매우 매력적입니다. 문체는 무척 발랄하고 통통 튀는데 독자는 쓸쓸하면서도 처연하게 느끼게 만드는 기교는 가히 환상적입니다.

 

또 하나 큰 장점은 겉과 속이 다른 겉촉속독 같은 반전 매력에 있습니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형식은 촉촉한데 이야기 속을 들여다보면 소름 끼치게 잔인하고 냉정한 인간 세상의 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겉은 촉촉, 속은 매우 독한 그런 소설입니다. 마치 신나고 빠른 멜로디에 잔인하고 슬픈 이별 가사가 흘러나오는 90년대 댄스음악 같은 느낌입니다.

 

최근 주로 만나는 영화, 드라마, 애니, 웹툰 등에서 드러나는 미덕은 익숙함, 클리셰 덩어리에 약간의 참신함의 가미인 것 같습니다. 뻔한 듯 하지만 약간의 새로움만 있으면 성공 보장인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전통적인 의미의 소설이란 부담일 수 있습니다. 사는 게 골치 아픈데 소설 읽으면서 머리를 써가며 감정을 소비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죠. 늘 읽던 그 패턴과 익숙함으로 쭉쭉 읽히면 좋습니다. 그렇다고 같은 소설을 반복해서 읽을 순 없으니 내가 편한 한도 내에서 약간의 신선함을 추가해 주면 최고입니다. 그런 느낌 때문에 수십만 명이 읽으며 대 성업을 이어가는 웹소설의 제목이 신기할 정도로 비슷하고 유치합니다.

 

물론 웹소설 시장이 워낙 커지면서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작품들도 큰 인기를 끌고 있어 양상이 변하고 있기는 합니다. 흥미로운 변화입니다. <수정의 인사>는 그런 익숙함에서 오는 재미와 결이 다른 소설입니다. 근래에 만나기 힘든 소설 본질의 재미를 잘 살린 작품이라는 점이 크게 와닿습니다. 읽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3. 피해자와 가해자, 인권 대 인권

 

<수정의 인사>에서 이수정 대리는 터무니없는 범죄의 피해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와 가까웠던 지인들과 가족들은 큰 고통을 겪습니다.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지고 위로해 주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지만 현실 세계는 의외로 그렇지 않습니다. 가해자가 일방적인 범죄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럴만해서 그랬을 것이라는 억측이 난무합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혀서, 단순한 악의가 겹쳐서 의도와 진실이 오염됩니다.

 

이 소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일상적이지만 이상적이지 않은 양상을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로 상반된 입장과 감정 대립, 법의 비상식적 판단 등이 전개되면서 내가 저 사람 입장이었다면? 내가 시장통의 저 상인이었다면? 하는 상상을 해가며 읽었습니다. 드러난 결과는 매우 비상식적이었지만, 그 개개인의 입장으로 들어가 보면 저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는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인간은 각자의 입장과 태도와 처지가 있기 마련이고 이런 욕망들이 부딪히면 배가 산으로 가는 엉뚱한 결론에 이르기 쉽습니다. 이 소설 말미의 판결문이 바로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작 최대의 피해자인 당사자는 이 상황을 담담하면서도 처연하게 관조합니다. 마치 남의 일처럼 메마른 감정으로 관찰합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입장이 되어버린 상태입니다. 어디에도 관여할 수 없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역설적으로 더 부각해서 드러내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주제 의식 차원에서 매우 영리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끝내 전하지 못한 수정의 인사는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가해자의 논리를 피해자 가족도 누리기를 바라는 이수정 대리의 마지막 배려입니다. 배려하는 자는 끝까지 배려하며 피해를 보고, 자기만 생각하는 자는 끝까지 자기 논리로 피해를 최소화하며 인간의 도리조차 다 하지 않습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그런 인간들은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타인의 입장과 감정을 살피는 일은 생각보다 고도의 지능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지능이 떨어져 타인의 입장까지 생각할 능력이 안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결론이 신선합니다. 저는 좀 똑똑한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안 주려고 노력하는 정도의 눈치는 있는 인간이고 싶습니다.

 

<수정의 인사>는 자극적이고 클리셰 가득한 소설에 너무 익숙해진 분들에게 일독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소설의 또 다른 재미와 함께 뜻하지 않은 위로와 감정의 정화를 경험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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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 사용설명서 - 블록체인과 메타버스가 바꿀 거의 모든 돈의 미래 NFT 사용설명서
맷 포트나우.큐해리슨 테리 지음, 남경보 옮김, 이장우 감수 / 여의도책방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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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뒷방 늙은이 취급받기 싫다면 NFT!


역주행 신화로 유명해진 브레이브걸스가 NFT를 발행했고 1분 만에 완판되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M.BRAVE GIRLS"라는 이름으로 400개의 작품을 내놓았는데 불과 1분 안에 팔려나갔다는 말입니다. 미디어그룹 NEW는 배우 박소담 씨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범죄 오락 영화 "특송"에서 영감을 받은 아트웍 작품을 NFT로 발행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 브루클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엘리스 스웨프는 올 3월부터 NFT 작품을 판매해 20만 달러(약 2억 4천만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고 합니다. 이게 다 무슨 일일까요?



비트코인만 해도 헷갈리는 상황에서 생소한 신조어 NFT가 유행 중입니다.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은 리포트를 통해 최근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웹 3.0 트렌드가 일반화되면서 필수 구성 요소인 NFT와 메타버스, 디파이 등의 성장이 눈에 띌 것이며, 특히 NFT를 활용한 아트 분야는 시가총액이 100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합니다. 뭔가 눈에 안 보이는 가상 세계에서 돈이 돌아다닐 거란 말로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변화에 민감해야 합니다. 트렌드에 뒤처진 옛날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면 하나하나 공부하며 개념 정도 만이라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시대라도 교양인으로 살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아름다운 법입니다. 하물며 인류가 가상과 현실이 복합되어 돌아가는 세상으로 가열차게 달려가고 있는 상황이라면 핫 트렌드 키워드 정도는 챙겨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NFT 사용설명서>는 그런 의미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입니다. 최근 메타버스가 미래의 파라다이스냐 과장된 허구냐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또 하나 크게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키워드가 바로 NFT입니다. "대체 불가능 토큰"이라고 약어를 풀어도 감이 안 오신다면 증세가 심각한 상황이니 이 책을 사들고 꼭 앞부분 만이라도 정독해야 합니다. 그래야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습니다.




2. NFT 어디까지 다루고 있나?


<NFT 사용설명서>를 통해 과연 NFT가 어떤 의미이고 어디서 어떻게 왜 생겨났는지,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 정도의 기본적인 개념만 익혀도 굉장히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디지털 트렌드에 민감하시고 익숙하신 분들이라면 사실 이 책이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NFT를 완벽하게 알아서라기보다는 여러 매체를 통해 감을 잡는 것은 물론 추가로 알아야 할 부분은 검색으로 해결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의미가 큰 것은 그 어떤 매체보다 NFT라는 키워드에 관련해 체계적이고 압축적이면서도 빈틈없는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우선 NFT가 대체 무엇인지 기본 개념부터 정리하면서 시작합니다. NFT의 "Non-Fungible(대체 불가능)"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Token(토큰)은 무엇인고 코인과는 또 어떻게 다른지와 같은 기본 중 기본부터 다룹니다. NFT가 어떤 종류가 있는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지, 어떤 NFT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지 등도 짚어주고 있습니다. 챕터 1~2만 읽어도 최소한의 상식은 충분히 채울 수 있습니다.



기본 개념 설명 후에는 NFT가 가치를 가지는 이유에 대한 고찰이 바로 이어지는데, 기존 수집 시장, 미술 시장의 한계와 문제점을 대비해 NFT가 가진 장점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NFT가 마냥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며 한계도 있고, 아직 불안한 부분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설명합니다. 독자들이 NFT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해하도록 팝아트와 앤디 워홀을 시작으로 NFT의 역사를 정리해 주고, NFT를 사고팔 수 있는 마켓 플레이스 들을 소개합니다.



책의 중, 후반으로 넘어가면 NFT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실무적 내용이 담깁니다. 원제가 "NFT Handbook"이라는 걸 고려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핸드북은 실제 사용법을 돕는 매뉴얼과 같은 책입니다. NFT의 기본적 개념을 이해했다면 어떻게 만드는지, 만들어서 유통하고 알려서 판매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소비자 입장에서 구매는 또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 책 한 권이면 본인의 저작물이 있을 경우 얼마든지 판매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정도로 실용 법을 자세하게 가이드 하는 책입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NFT를 사고팔 때 반드시 알아야 하고 주의해야 할 법적 해석의 문제까지 놓치지 않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NFT의 시작부터 생산, 유통, 판매, 구매, 법적 해석까지 총망라한 정보가 담긴 토탈 핸드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NFT의 A부터 Z까지 궁금한 점은 거의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실용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3. 급변하는 미래, 어디까지 어떻게 갈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만 방심하면 세계를 인식하는 눈이 뒤처진다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디지털 베이스로 딱히 그림이나 영상 등을 생산해낼 재능은 없다 보니 트렌드 변화에 둔감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코인도 블록체인도 막연한 개념만 가지고 있다 보니 이 책에서 설명하는 부분에서 뭔가 막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역시 변화의 트렌드는 나이에 무관하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체험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아직까지는 NFT가 미술이나 영상예술 등 디지털 아트 쪽에 국한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향후 훨씬 더 다양하게 발전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변화의 주기가 워낙 짧아지고 있어 장담할 수는 없지만 대중적으로 익숙해지고 적응하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사실 NFT 대중화가 날개를 다는 일일 수 있습니다. 음악의 경우만 봐도 창작자보다는 배포하는 대형 플랫폼에서 훨씬 많은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NFT로 음악을 발행할 경우 중개 플랫폼이 불필요합니다. 마음대로 카피도 못하니 불법 유통도 막고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NFT의 미래를 매우 낙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이용해 시공간을 초월, 공유하고 소통하는 메타버스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술품, 골동품, 보석 등 수집품과 부동산, 저작권이나 특허 같은 비단보 가능 자산의 거래에 활발히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향후 디지털 지갑이 모든 결제의 기본 수단이 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NFT의 활용은 더욱 일상화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NFT의 미래에 대해 아직 쓰임새가 완전히 정형화되지 않았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고 있습니다. 앞서가는 모험가들이 다양한 시도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노력의 첨단에 당신과 내가 서있을 수도 있고, 모험가들의 시험 현황을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으며 여기에서 또 다른 기회와 가능성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의 동향이 궁금하고 정확히 알고 싶으신 분이 계신다면 이 책<NFT 사용설명서>로 미래 경제 키워드 NFT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정확한 정의와 개념, 사용법과 미래상을 알아야만 개인들도 스스로에게 유의미한 무언가로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착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저 교양으로라도 꼭 읽어보시기를 적극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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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문 고등학교, 수상한 축제 블랙홀 청소년 문고 20
정명섭 외 지음 / 블랙홀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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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문 고등학교 미스터리의 화려한 귀환

 

<귀문 고등학교 미스터리 사건 일지>가 나왔을 때만 해도 재미있는 스토리는 분명하지만, 이 책이 시리즈로 출간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에 미스터리 소설 작가들이 의기투합해 앤솔로지를 다양하게 출간하는 시기였고, 그런 여러 실험작들 중 하나로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후에 많은 앤솔로지 중에 <귀문 고등학교 미스터리 사건 일지>는 유독 판매 스코어가 좋았던 것을 보고 반가웠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님들과 팟캐스트 방송 녹음까지 하면서 즐거운 캐미를 뽐냈던 장면을 돌이켜보면 특히 잘 기획된 앤솔로지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고등학교가 배경인데다 소설 속 주인공들도 거의 학생이다 보니 학생 독자들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에 두루두루 많은 사랑을 받았을 거라 판단됩니다. 이 소설이 시리즈로 출간될 수 있었던 큰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가 살아남아 또 다른 재미있는 스토리로 꽃 피는 모습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편에서 다섯 가지 이야기들이 독립적으로 잘 마무리되었기는 하지만, 짧은 단편으로 마무리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설정과 캐릭터들이었습니다. 작가들의 뛰어난 역량을 고려하면 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다른 이야기 속에서 반드시 다시 등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마도 이 소설을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저처럼 새로운 이야기로 귀환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귀문 고등학교, 수상한 축제>는 이전 이야기를 읽지 않아도 전혀 무리가 없을 만큼 독립된 이야기로써 완성도가 높은 단편들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독자라면 더욱 즐겁고 익숙하게 읽을 수 있어 더 풍성한 느낌과 반가움으로 읽을 수 있는 이야기기도 합니다. 뭔가 짜이지 않은 자유분방한 느낌의 글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던 시리즈 첫 편을 생각하면 이미 손발을 맞춰본 프로 작가들이 내놓은 두 번째 이야기들은 훨씬 서로 합이 잘 맞았습니다. 조화로운 바탕 속에 개성과 필력을 뽐내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환영할 만한 귀환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확실히 자리 잡은 시리즈의 개성만발 스토리

위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이번 책은 첫 번째 시리즈에 비해 뭔가 짜임새 있게 자리를 잘 잡았다는 느낌입니다.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작가들이 각자 애정 하는 소설들을 더 업그레이드해 내놓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내용을 재미있게 써 냈을 뿐만 아니라 전작의 이야기나 설정을 잘 유지해 연속성도 잘 살렸습니다.

 

전작들에 비해 보다 전반적인 배경의 톤과 이야기의 매너도 서로 더 잘 어울리도록 조정이 된 느낌입니다. 첫 작들은 설정 공유 외에는 서로 되도록 자유롭게 집필해서 인지, 스타일이 지나치게 개성적이라 하나의 앤솔로지로 엮기에 부족한 부분도 있어 보였습니다. 학교 밖에서 일어나는 일도 있었을 만큼 자유로운 느낌이었습니다.

 

확실히 이번 편은 다섯 편의 단편이 모두 같은 공간, 비슷한 시간에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확 살아서 짜임새 좋은 앤솔로지 같았습니다. 하나의 시공간에 서로 다른 다섯 명의 화자가 서로 동시다발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입체적인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각각의 소설 들은 모두 같은 학교의 축제일이라는 구체적인 공통점으로 묶여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섯 개의 단편을 하나의 장편처럼 한 호흡에 쭉 읽기에 너무 편했습니다. 어느 단편을 읽어도 '이건 또 무슨 이야기지?'라는 의아한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서로 호응을 이루는 가운데 개성도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모든 이야기 속에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며 교내로 경찰차가 질주해 들어오는 장면이 사용됩니다. 여기에도 톤 앤 매너가 통일감 있게 펼쳐지는데, 다들 경찰차 소리가 각자 이야기의 메인 스토리와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사용됩니다. 이런 설정은 지금 읽고 있는 스토리 자체도 흥미롭지만, 각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귀문 고등학교 자체의 미스터리함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서로 서로의 이야기를 살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다른 이야기에 놀랄만한 사건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지속적으로 느끼게 하는 장치로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상당히 스마트한 설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3. 균형감 좋은 앤솔로지를 대하는 즐거움

<귀문 고등학교, 수상한 축제>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하나같이 학원 미스터리 물이고, 주요 등장인물들이 교사 또는 학생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실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상당히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이 겪는 일상과 고민 등이 생각보다 진부하고 스테레오 타입으로 드러날 위험성이 상당히 큽니다. 자칫하면 '또 이런 이야기야?'라는 반응이 나오기 십상입니다.

 

개인적으로 학원물을 별로 즐기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집은 그런 진부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다섯 가지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데 있어서 뭔가 불편하게 느껴지거나 걸리는 부분이 하나 없이 후루룩 읽을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가볍게 웃으면서, 때로는 가슴 아픈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10대의 직접적이고 투박한 감정 표현이라든가, 무모한 행동 등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건들을 대하면서 추억도 떠오르고 부모의 심정으로 읽기도 했습니다. 정명섭 작가님이 풀어낸 소년 탐정 안상태의 "축하 공연을 사수하라!"라는 귀엽기도 하고 제법 정직한 정통 추리 소설이었습니다. 지난 작품보다 조금은 더 밝은 톤으로 전체적인 이야기와 분위기를 잘 맞추면서 첫 작품으로 포문을 잘 열어주었습니다. 걸그룹 이야기 속에 팬과 안티팬 등의 문제가 잘 드러나고, 중간에 톡 소설 같은 장면이 사용된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정해연 작가님의 "찢어진 드레스"는 기존 작품 속 설정이 그대로 잘 살아나 반가웠던 작품입니다. 유일하게 선생님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주인공이지만 사건의 관찰자 같은 포지션이라 학생들의 심리가 잘 드러나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런 포지션을 무척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방의 죄책감을 읽는 능력은 상당히 독특한 능력입니다. 이를 최대한 잘 활용할 수 있는 스토리를 잘 풀어냈고, 모든 소설 중 가장 감정의 폭발을 잘 표현한 작품이었습니다.

 

조영주 작가의 "아무도 모르게"는 역시 독특한 이야기를 창조해 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가 애정 하는 사이코패스 애리가 돌아와 흥미로운 스토리를 잘 풀어나가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과연 사이코패스가 맞는가의 고민이 별로 들지 않을 정도로 맵지만 훈훈한 역할을 하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이런 미스터리한 캐릭터의 특징을 그대로 유지한 점이 무척 좋았습니다. 역시나 캐릭터의 내면 묘사에 특화된 작가의 장점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전건우 작가의 "탐정은 가면을 쓰지 않는다"는 전작에서 유일하게 정통 탐정 추리소설을 패기 있게 써냈던 그 스토리가 그대로 이어진 이야기입니다.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해도 좋을 만큼 잘 짜인 설정이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어떤 작품보다 전작의 스토리, 캐릭터, 배경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 느낌입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이슈를 잘 버무려 역시나 훌륭한 단편 추리소설이 완성되었습니다.

 

김동식 작가의 "역보물 찾기"는 역시나 가장 독특한 소설이었습니다. 보물 찾기를 시작도 전에 찾아내 감추고 문제 출제자가 보물을 역으로 찾게 만든다는 설정도 신선했고, 이 과정에서 전혀 다른 사회파적 메시지가 드러나도록 짧은 분량에 담아낸 것도 훌륭했습니다. 소설 속에서 문제를 푸는 과정에 등장하는 애너그램도 신기했습니다. 머리가 나쁜 저에게는 정말 괴로운 부분이었는데 등장인물이 풀어내도록 포기하고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즐겼습니다. 학교 속 괴롭힘 이야기도 역설적으로 더 선명하게 와닿았습니다.

 

너무 심각하지 않고,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읽을 만큼 가볍지도 않은 균형감각이 좋은 앤솔로지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무조건 추천해 드릴 소설집입니다. 부담 없고 불호가 거의 없을 거라 판단되는 만큼 10대 아이들부터 전 연령대에 모두 즐겁고 편안하게 즐기기 좋은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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