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전쟁
장강명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1. 기자 → 기자 출신 작가 → 본격 장르 소설가

   그동안 장강명 작가의 작품을 꽤나 읽은 편인데 항상 기본 이상 해주는 작품들을 써 왔던 기억이 납니다. 장강명 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것은 "똑똑한 작가"라는 표현입니다. 단순히 머리가 똑똑하다는 의미보다는 주어진 상황과 현실, 자기가 뛰어들 전장(문학판)의 형편을 잘 파악하고, 자신의 위치 선점을 매우 영민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준비한 첫 작품 "표백"은 주목받기 좋은 독특한 구성은 물론 장강명 기자의 트레이드 마크인 자극적인 주제로 관심을 모았고, 그 이후에는 늘 트렌디 하거나 독특한 제목과 소재로 독자들의 관심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기에 적합한 길이와 내용으로 작가적인 입지를 잘 다져왔습니다.

   대체로 제가 읽어본 작품들은 기자 출신 특유의 사회고발적인 르포리즘 같은 스탠스를 취하는 소설들이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과연 기자 출신일세?'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들이 많았지요. 그게 장강명 작가 작품을 특징짓는 주요한 차별점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작품 "우리의 소원은 전쟁"을 읽으니 드디어 "기자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완전히 땐 작품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문학상을 돌아가며 수상하고, 수필도 출간한 이후로 이제야 정말 자기가 쓰고 싶은 장르적 특성이 넘치는 소설을 하나 완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 자극적인 제목과 화제성

   장강명 작가 작품의 또 한 가지 큰 특징은 제목부터 내용, 주제의식까지 상당히 자극적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에 좋습니다. 이번 작품도 사람들이 쉽사리 얘기하지 않는 "통일"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어 많은 관심을 받을 만합니다. 

   장강명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무관심하고 고민하지 않지만 엄연한 현실인 통일문제와 통일 이후 우리의 미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동안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치밀한 사전조사를 한 것 같습니다. 읽어보다 보면 상당히 디테일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는 꼭 시사성을 따지지 않더라도 소설에 현실감을 부여하여 독자가 몰입하기 상당히 용이하게 해 줍니다.

   한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그전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완연한 장르적 특성 때문에 무책임한 기자의 르포 글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전 작품들을 읽다 보면 작가가 '사회부조리나 현실을 꼬집는 것'까지는 좋으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정립되지 않은 독자가 읽기에 위험한 그 무언가가 포함되어 있다는 느낌을 꽤나 받았었습니다. 그리하여 기자가 기사를 작성하고 이후에 사실 여부에 대해서 무책임한 '아님 말고'식의 태도와 일견 통하는 부분이 있어 보여 불편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이번 작품은 아직 도래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통일 이후 세상을 그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통일을 미화하거나, 지나치게 비관적이지 않고 오히려 정말 그럴법하다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디스토피아 액션 스릴러 뭐 이 정도가 되려나 싶은데 이런 표현은 우습지만 '소설'이 '소설다워' 좋았습니다.


#3. 대한민국에서 장르소설을 쓴다는 것...

   아마도 이번 책은 작가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대중성 있게 썼다고 인터뷰를 했던 거 같은데, 딱 그 말대로 이기는 합니다. 정말 문학상 수상 여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쓴 장르소설입니다. 그러니까 분명 통일 이후 과도정부 시기의 부조리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가 이 소설의 목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대한민국 작가만이 잘 쓸 수 있는 남북문제에 대한 설정하에서 벌어지는 일단의 사건과 그 속에서 살아움직이는 주인공들의 액션에 주안점을 둔 것으로 읽힙니다. 작가도 밝히고 있지만 몇 가지 설정에 차이에도 불구하고 리 차일드의 '잭 리쳐' 시리즈를 읽는 듯한 느낌이 있어요. 어쩌면 약간은 오마주인 것도 같고 말이죠.

   이름조차 잭 리쳐를 닮은 소설 속 주인공 "장리철"은 그야말로 살인기계입니다. 그러나 잭 리쳐와 달리 "한국식 능력치 조정"을 거칩니다. 신체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두뇌가 그리 명석하지 않고,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하죠. 게다가 식탐도 좀 있고, 그런 캐릭터입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독자들은 완벽한 슈퍼히어로보다는 장단점을 모두 지닌 현실적인 캐릭터를 더 선호하는 면이 있다고 파악한 모양이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하여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살인기계 "장리철"은 앞으로도 보고 싶은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또 다른 어려운 모험을 나서는 장리철의 모습을 끝으로 소설이 마무리되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앞으로 이 캐릭터를 잘 활용해서 재미있는 속편이 계속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에서 구축된 작가적 세계가 이 한편으로 끝나는 것은 못내 아쉽습니다. 여러모로 잭 리처 시리즈 같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시리즈 장르 소설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제 작가가 정말 본인이 쓰고 싶은 장르소설을 쓰기 시작하는데 찬물을 끼 얻는 것 같지만 과연 그동안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얻었던 작가적 인기가 없었다면 이 소설이 이 정도 주목을 받았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본격적인 장르소설을 대하는 대한민국 독자들의 태도는 어떤가를 생각하면 과연 판매고를 지속적으로 올릴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온라인 게임 광고에 국내 톱스타가 총동원되는 현실을 보면 화려하고 자극적인 온라인 게임이나 영상으로 장르적 특성 가득한 재미난 것들이 널려있는 대한민국에서 읽는데 오래 걸리고 힘들기까지 한 장르 소설이 얼마나 대중적인 힘을 낼 수 있을지 생각하면 그리 즐거운 마음이 아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고, 그동안 마음 한구석에 있던 우려는 말끔히 씻어내는 계기가 된 작품입니다. 앞으로 더 대중적이고 가독성 좋은 작품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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