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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넌트 ㅣ 버티고 시리즈
마이클 푼케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월
평점 :

#1. 디카프리오 개고생의 강렬함...
여태껏 원작 소설에 기반을 둔 영화치고 소설보다 더 훌륭했던 영화를 보지 못 했습니다. 영화의 오락성과 대중성을 염두에 둔 구성적 특징 때문에 원작 소설에서 보여주는 깊이 있고 디테일한 깨알 재미들이 거의 죽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원작 소설의 이런 디테일과 깨알 재미를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런데, 저의 편견에 가까운 원작 소설 사랑이 이번만큼은 처음으로 깨졌습니다. 이제야 원작 소설보다 더 나은 영화를 만났군요.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 소설을 접한 탓도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아무래도 영향이 없을 수는 없겠지요.
"레버넌트"라는 소설은 미국의 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광활한 자연에 몸을 내던진 사람들과 한 남자의 처절한 생존기를 다룬 실화 바탕 소설입니다. 당시 미국인들은 동물과 기후는 물론 토착 인디언들에게까지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었습니다.(솔직히 누가 누구를 위협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원작 소설에서 휴 글래스는 그렇게 죽을 위기를 넘기며 복수를 꿈꾸는 인물입니다. 이런 휴 글래스라는 캐릭터를 바탕으로 목숨을 걸고 아카데미를 향한 처절한 고개생의 발걸음을 디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대장정은 원작 속 실존 인물 휴 글래스를 가볍게 압도하는 형국입니다. 그리하여 영화와 소설을 모두 접하고 나면 뭐니 뭐니 해도 디카프리오에 대한 애잔한 마음만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디카프리오는 아카데미 수상으로 생애 숙원을 풀지 않았을까 생각되어 다행입니다.
#2. 소설 레버넌트의 장점
이 원작 소설 "레버넌트"와 영화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소재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가 극명해서 한편으로 장점이 다른 한편으로는 단점이 되는 묘한 대비를 보입니다. 소설 레버넌트만의 장점은 분명합니다. 차분하고 질서 정연한 서사가 있어요. 이게 의외의 장점이어서 별 대단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에 흡입력이 있습니다. 내용 자체가 아주 길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될지?에 대한 궁금증이 독자를 계속 끌고 밀고 갑니다.
서부 개척 시대 미국 중부에서 일어났던 일을 매우 실감 나게 들려주고 있기 때문에 세계사 책에서 읽어서 배우는 지식을 접하는 느낌과는 전혀 다릅니다. 당시 주요 강들을 사이에 두고 일어났던 미국사에 대해 피부에 와 닿는 생생한 정보를 간접 체험하게 해줍니다. 마치 누군가가 직접 겪은 일을 들려주는 듯한 느낌으로 책을 읽어나갈 수 있어서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우리와는 전혀 결이 다른 미국의 과거사와 함께 당시 살았던 개척 정신 충만 했... 다기보다는 돈벌이가 되니까 목숨 걸고 했던 모피 교역의 모습 등과 당시 원주민과의 사정이랄까? 이런 소소하고도 깨알 같은 디테일이 잘 살아있어요. 심지어 미국 중부의 지리까지 알게 되는 덤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맨 앞에 제공되는 미국 중부 지도를 계속 살펴보게 되거든요.
#3. 소설 레버넌트의 아쉬움 점
영화가 없었고, 미리 보지 않았다면 아쉽다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상대적인 아쉬움이 꽤나 있었습니다. 이 중 원작소설 "레버넌트"의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의 행동에 심리적 동화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인공 휴 글래스가 악착같이 살아나서 복수를 하려는 동기는 "자신이 사경을 헤맬 때, 버려두고 가면서 나의 개인 물품이자 생존 필수품을 모두 가져가버린 사실"입니다. 물론 드럽게 열불 터지는 상황이긴 하지만 어차피 누가 봐도 살아날 가망성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척박하고 자기 목숨조차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의 개인 소장품을 그냥 두고 갈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일반적으로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어지간한 물건은 가져가는 게 맞지 않을까요? 휴 글래스가 안 죽고 살아나서 보니 열받는 거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것 때문에 드럽게 개고생을 하니까요.
이게 자기 물건 가져간 두 사람을 쫓아서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주인공을 정서적으로 지지하지 못하겠어요. 어디서 맞고 어디다 화풀이입니까? 곰한테 죽도록 맞고 동료한테 화풀이하는 형국이란 말입니다. 모양새가 안 좋아요. 비록 배신한 동료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원래 주인공의 심리에 동화돼서 완전히 몰입하고 마치 내가 거기 서 있는 것만 같은 마음으로 읽어야 화악 빠져드는 거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아.. 이거 너무 찌질한거 아닐까? 정말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까지 책임을 돌려도 되는 걸까?' 이런 마음이 스믈스믈 든단 말입니다.
한편 영화에서는 어떤가 하면 휴 글래스가 원주민이던가? 여튼 인종이 좀 다른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리더에게 인정받고 있어서 무시를 안 당하는데 소중한 아들과 함께 다닙니다. 곰에게 당한 건 동일한데 주인공이 꼼짝도 못하는 상황에서 아들이 살해당해요. 아, 내가 다쳐서 꼼작도 못하는데 내 눈앞에서 죽일 놈이 내 아들을 해쳐요. 이 상황은 완전 눈 돌아가는 상황이죠. 이후 주인공은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는 처지가 되어버리고,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복수를 하고 싶어 하겠죠. 이런 조건은 완전 공감이 가는 상황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글래스가 그 개고생을 하면서 악착같이 두 사람을 쫓아가는 과정이 이해가 간단 말입니다.
소설에서는 중간중간 만나는 사람들이 제안하는 좋은 조건도 다 마다하고 악착같이 쫓아가는데 마지막에도 찌질한 짓을 해서 그나마 복수도 제대로 못하고 바보가 됩니다. 이거 뭡니까? 아무리 실화 속 역사적 사실이라 하더라도 드럽게 재미없는 결말입니다. 딱히 아름답게 인간적 성숙미를 뽐내면서 용서한 것도 아니고 멍청하게 행동해서 오히려 어이가 없게 만든단 말입니다. 그러더니 얼렁뚱땅 이야기가 끝나요. 완전 헐... 영화도 마무리가 좀 어색했는데 이건 뭐 훨씬 심하구만.. 하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읽는 재미만은 어느 정도 보장되는 이야기인데다 전체적인 흐름이 영화보다는 훨씬 설득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아쉬움이 많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디카프리오와 자연 설경을 영상으로 감상하는 부분이 너무 컸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역시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는 원작 소설부터 읽는 것으로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