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 죽은 자의 일기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9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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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파적 특성과 가독성이 돋보이는 작품


   또 오랜만에 취향을 저격하는 좋은 책을 만났습니다. "더블"로 강한 인상을 심어줬던 정해연 작가님의 신작 "악의"는 우리 사회의 오랜 문제를 잘 다룬 사회파 미스터리입니다. 게다가 마치 단편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가독성이 탁월하군요. 가독성이 그냥 좋은 게 아니라 탁월한 수준입니다. 흐름이 좋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작품을 정통 추리소설로 받아들이면 반전이 약하다거나 긴장감이 부족하다거나 이런 식의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다분한 구성이기는 하지만 저의 경우는 애초에 '누가 범인인지? 어떤 반전이 있는지? 얼마나 충격적인 결말인지?'의 문제는 개의치 않는 편입니다. 오히려 잘 끌고 가던 이야기를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을 주겠다고 갑자기 이야기를 꼬아버리면 맥이 탁 풀리는 쪽이다 보니 오히려 반전을 싫어하는 쪽입니다. 물론 이 작품도 반전이 나름 있지만 혀를 찰 정도는 아니어서 오히려 좋았습니다.


   국내 독자들은 국내 작가 장르소설에 대해서 상당히 인색한 면이 있어요. 저는 이런 대목을 대하면 조금 불편한 지점이 있습니다. 뭐 책 읽고 평가하는 거야 각자의 자유니 따질 일은 아니지만 단순히 책을 대할 때뿐이 아니라 문화, 정서적인 측면이 작용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여튼 장르소설의 최대 미덕인 읽는 재미만큼은 어느 책에 뒤지지 않을 작품입니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내용이 너무 짧다, 이야기가 급히 마무리된 거 같다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실제로 이야기의 발단과 전개가 전체 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좀 많기는 합니다.



#2. 권력자의 추악함, 비틀린 모성애, 자본의 노예가 된 언론이 만들어 내는 완벽한 하모니


   이 작품에 담긴 권력자의 추악함은 무척 익숙합니다. 그리고 그런 캐릭터를 가능하게 하는 이 사회의 구조도 견고합니다. 너무 현실 같은 이야기다 보니 오히려 "영인시"라는 가상의 도시가 어색할 지경입니다. 그냥 "서울시"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이는 이야기죠. 오히려 가상의 도시를 설정함으로써 픽션임을 애써 강조하는 느낌입니다.


   전작 "더블"에서는 개인의 욕망이 타인의 권리를 어떻게 침범하는지,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의 권리를 무시한 만큼 본인도 똑같이 당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잘 드러내 주었습니다. 즉, 사회 속에서 개인과 개인 간의 작용과 반작용을 깊이 다루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개인에서 가족, 그리고 한 도시에 이르는 사회에까지 그 범위를 넓혀 주고 있습니다.


   권력을 향해서만 달려가며 치밀하게 이미지 마케팅을 하는 시장 후보가 있는가 하면, 아들의 성공을 위해 그 어떤 악한 일도 허용하고 오히려 권장하는 비틀린 모성애의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심지어 아들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헌납하는 엄청난 헌신을 보여주는데도 불구하고 읽는 독자는 섬득하기만 합니다. 이렇게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내 자식을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손해가 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부모를 우리는 흔히 만날 수 있다 보니 그저 재미로 바라보기가 어려운 탓입니다.


   재력과 권력을 갖춘 자 주변에 밥그릇을 위해 서식하는 부류들도 못지않게 문제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아들을 이용하는 권력자와 보호시설 관리자는 한통속입니다. 권력자의 이미지를 한껏 포장해주는 언론은 이러한 1%의 세상을 공고하게 하는 일등 공신들입니다. 언론의 타락은 현실에서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합니다.


   이 작품에서 이런 우리 사회의 병폐를 통쾌하게 밝힌다거나 대안을 제시한다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지만, 장르소설의 틀 안에서 이런 다양한 문제들을 잘 다루고 있고 독자로 하여금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이 사회파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저의 취향을 완전히 저격하고 말았습니다.



#3. 소설보다 더 지독한 현실이 주는 소설의 한계


   "악의"에서 드러나는 이런 사회파적 특징들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가지는 한계는 오히려 외부에 있습니다. 독자들이 이 작품의 내용을 신선하게 보기는커녕 오히려 편안하게 받아들일 지경이라는 점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 이미 우리 머릿속에는 "공공의 적"이라거나 "베테랑", 또는 "내부자들" 등의 영화가 떠오릅니다. 이미 이런 이야기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악하다"라고 여기기보다 "익숙하다"라고 여겨지는 것이죠.


   잘 쓰인 소설임에도 너무 익숙하다 보니 식상하게 느껴질 소지가 다분합니다. 왠지 읽어본 것만 같은 이야기로 여겨지면서 평가절하 될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현실이 너무 지독하다 보니 어지간히 독한 이야기도 흔한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것이죠.


   사회파 추리소설이 주로 그렇듯 애초에 범인을 까고 시작하는 부분도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누가 범인이건 여튼 긴장감 있게 조금도 흥미가 떨어지지 않고 후루룩 읽었습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애초에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종류의 이야기입니다. 관심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혹은 고발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무척 지루해질 수도 있겠지요. 저는 드럽게 재미졌습니다. 근래 이렇게 집중해서 빨리 읽은 책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입니다.

  

   공고한 사회구조 속에서 권력자의 속 사정이 어떠하건 그들만의 게이트는 법으로도 정의로도 구축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개인의 자격으로라도 징벌을 시도합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어떤 방법이 되었건 녹녹치 않습니다. 세상은 그런 식으로 너무도 오래 굴러 왔으니까 말입니다. 이제 와서 쉽사리 바뀔 리가 없지요. 특정인을 징벌한다고 한들 선수만 교체될 뿐입니다. 이런 답답함이 이 작품 속에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악의"를 읽을 때는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면 더욱 재미지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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