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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생각들 -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18가지 통념
오승현 지음 / 낮은산 / 2015년 11월
평점 :

#1. 우리가 살고 있는 이상한 나라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가 뭔가 상당히 매우 많이 억수로 이상하다는 것은 대충 감으로 다들 느끼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해요. 당장 이 책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좋은 내용에 상식적이고 꼭 읽고 정리해봐야만 할 훌륭한 책이 거의 안 팔립니다.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모르죠. 반대로 쓰뤠기 같지만 뭔가 그럴듯한 책은 엄청나게 팔려나가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생각들"이라는 책은 매우 훌륭한 책입니다.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인데다가 심지어 얇고 쉬워... 이 시대에 대중적으로 좋은 책의 요건을 거의 다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저자가 생판 처음 듣는 분이고, 출판사는 영세해 보이는 데다가 찾아가 보니 영 돈이라고는 안될 만한 책들만 내고 있는 형편이어서 마케팅도 대대적으로 안되는 상황이기는 합니다. 이렇게 꼭 팔리고 읽혀야 할 책이 사장되는 현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현실이 아닐까 합니다. 제 블로그를 종종 들러주시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테지만 과연 이 책이 출간되어서 서점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이 몇이나 될까 싶습니다.
#2. 이상한 나라에서 바른 생각을 한다는 것
뭔가 이렇게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을 쓴다는 말은 고만큼 이 책의 내용에 공감을 했다는 뜻을 갭니다. 도대체 어머님이 누구신지, 어떻게 키우셨길래 저자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정리하고 책까지 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상을 관조하고 통찰하고 심지어 간단히 정리까지 하는 내공은 여느 대학자보다 낫다고 생각됩니다.
책을 읽어보면 저자의 태도가 어느 정도 느껴집니다. 이 애티튜드라는 게 그 사람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품격을 갖추기가 어려워요. 오승현 님에게는 불필요한 클레세? 후까시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무척 잔잔한 호수 같은 느낌입니다. 근데 뭔가 졸라 깊어.. 이런 느낌이죠. 개인적으로 책을 읽다가 가장 눈살을 찌푸리는 지점이 '후까시'가 느껴질 때입니다. 대중적으로나 한 분야에서 유명한 전문가가 책을 쓸 때 이런 게 나오잖아요. "지금부터 내가 책을 쓴다 홍홍홍~~~, 니네들은 모르지만 홍홍홍~~~, 이런 거 읽어도 잘 모르겠지? 홍홍홍~~~ 돈츄 노 와라세이~~" 이런 느낌을 받으면 조용히 욕을 하곤 합니다. '머리에 든 건 많은데 애티튜드는 거지 군..' 이런 생각이 자연히 드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 이 양반은 리스펙트 할만합니다.
#3. 혼란한 세상, 바른 생각
그래서 바른 생각이 도대체 뭐냐 이거죠? 그건 이 책을 읽어보세요. 바른 생각인지 이상한 생각인지 금방 느끼실 겁니다. 더 좋은 점은 단순히 저자의 생각만 담겨 있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충분히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와 사례가 등장해요. 슬픈 일이지만 주로 유럽 쪽 선진 복지국가의 사례가 많이 등장하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GDP 같은 숫자로 나라가 발전했다고 우기는 그런 말장난 말고, 냉정하게 우리나라와 선진 복지국가들의 차이가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사람이 가장 쉽게 수긍하는 방법은 더 나은 것을 직접 제시해주는 것이잖아요.
이 책에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18가지 통념에 대한 반론과 대안이 주요 내용입니다. 개개인의 욕망을 자극하는 거지 같은 통념 말입니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마치 태곳적부터 그래왔다고 심하게 착각하고 살아가는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만 통하는 통념이죠. 이 책에서도 예를 들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남존여비, 여성의 수절 뭐 이딴 게 대단하고 견고한 사회적 통념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후손이 지금 우리의 사회적 통념을 접하면 콧방귀를 뀌게 되겠지요.
대충 18가지를 나열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만히 챕터를 살펴보면 상당히 치밀하게 단계적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가장 작은 단위인 개개인의 삶에서 가지는 이상한 통념으로부터 출발해서 산업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으로 확장되면서 국가 단위의 자본주의 한계로 외연을 넓혀나가거든요. 그리고 말미에는 비판과 함께 대안을 제시하는 단계까지 나아갑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수준의 개선된 대안 말입니다. 유럽 국가들에서는 부분적이지만 매우 활성화되어 있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등을 소개해주고 있어요. 우리나라에 집중해서는 복지국가로 가는 길이 마치 내걸 빼앗아서 나눠주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주고 정치 참여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고 말해줍니다.
지그문트 바우만 옹이 설명한 바와 같이 이러니저러니 아무리 떠들어봐야 이미 자기 가치관이 성립된 꼰대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다음 세대들을 제대로 교육하는 것만이 세상이 나아지는 유일한 방법이죠. 꼰대가 모여서 무슨 교육을 해서 다음 세대가 바뀌겠나 싶지만 말입니다. 요즘 유치원생,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돌아댕기면서 친구끼리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경악 그 자체입니다. 그 아이들의 생각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다 부모들의 머리에서 나온 거겠죠. 초등학교 저 학년생이 "남자는 돈만 많으면 된다."라는 말을 한다는 게 이거 놀랄 일 아닙니까? 현명한 거라고 생각하신다면 당신의 머리도 똥으로 가득 찼군요.
굳이 오버한다면 이 책의 저자도 바우만 옹과 동급입니다. 왜냐면 이 책을 성인 대상으로 쓰지 않고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는 구어체로 쓰고 있거든요. 어차피 어른 꼰대들은 이 책을 안 읽을뿐더러 읽어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자조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한편으로는 유일한 희망은 자라나는, 아직은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들에게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는 도움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저자의 판단이 돋보입니다. 물론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을지는 더욱 미지수지만요.
애고 어른이고 할 거 없이 드럽게 짧고 간단하고 쉽게 쓰인 이 책은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읽어볼까? 하고 미루면 안 읽는 거 당신도 나도 잘 아니까 그냥 바로 읽어봐요. 너무 안 팔려서 절판되기 전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