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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지 않음, 형사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평점 :

#1. 챔피언, 그리고 강남스타일....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전세계적인 유명인이 되었을 때, 저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싸이 인생에 온 국민의 파이팅송 "챔피언"을 능가할 만한 히트송을 만들어 낼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자신의 대표작을 넘어서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재미있게도 싸이는 이런 대단한 일을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강남스타일"이라는 만리장성급 메가히트송의 벽에 다시 갇혀 버렸습니다. 벽을 넘은 줄 알았더니 더 높디높은 넘사벽이 버티고 있는 형국이더란 말이죠.
찬호께이형님의 "13.67"을 만났을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상당히 훌륭한데, 이 보다 더 좋은 작품을 써 낼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죠. 결과적으로 한스미디어에서 선보인 두번째 작품은 단순히 비교하기에는 조금 결이 다른 특징이 있기는 하지만 대표작의 벽을 넘어서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작품이었다는 생각입니다.
#2. 필력으로 커버하는 가독성, 잘 준비된 배경지식
초반부터 상당히 익숙한 설정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식상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저는 의외로 이런 류의 작품을 많이 읽은 편이 아니라 그럭저럭 다음 내용이 궁금해져서 계속 읽게 되었습니다. 이야기의 구성도 독자입장에서 상당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잘 짜여져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인데다가 상당히 치밀하게 서술하고 있어서 허점이 없다고나 할까요? 역시나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는 느낌이 옵니다.
이 작품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축은 전체의 스토리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심리학적 디테일입니다. 주로 "기억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이 있는데, 작품 전반에 매우 광범위하게 소개가 됩니다. 또한, 이 스토리 전체가 이 심리학적, 의학적 용어에 거의 지배되다시피 합니다.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좋던 싫던 이 기억장애니 해리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용어와 내용에 대한 강의를 계속 들어야만 합니다. 읽다보면 작가가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상당히 꼼꼼하게 이 부분을 공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3.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 작품이 저에게는 참 애매했던 이유는 결국 설정과 반전 때문입니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재미있기만 했던 것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는데 이를테면, 기억이 뒤엉켰다거나 혹은 한 사람안에 두사람의 기억이 공존한다거나 하는 식의 설정을 대하면 이런 생각이 드는거죠. '뭐 이런 식으로 설정해 놓으면 무슨 이야기를 써도 말이 안된다고 할 수 없도록 쉴드를 치는거 아닌가?'하는 생각이요.
"기억나지 않음, 형사"에서도 주인공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였기 때문에 이런저런 해프닝이 일어난 것이라고 계속 독자에게 강요를 해요. 그런 장면이 떠오르는겁니다. 작가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이죠. 이걸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억지스러움을 없애기 위해서 관련된 지식을 공부하고 그걸 계속 설명해요. '이런 현상이 생기면 그럴 수 있다니깐!!!' 하면서 말입니다.
이런 방식은 말미에 연속으로 등장하는 반전과 반전의 연속선상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한 정신학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하도록 해놓고 "그럴 수 있다니깐!!!"하고 강요를 하는 형국이예요. 이럴 때는 참으로 난감합니다. "그럴수도 있잖아?" 라고 물으면 어느누구도 "그건 절대로 아니야"라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모든 케이스를 다 확인한 것도 아니고 독자가 그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일 확률도 낮으니까 말입니다.
저는 체질적으로 지나친 반전이 취향에 안맞습니다. 이 작품은 반전이 대단한 작품중에서도 상당히 지나친 반전에 의존한 작품입니다. 그 반전을 그냥 '와~~ 대단한 반전이야~~'라며 넘어갈 수 있다면 이 작품은 무척 훌륭한 작품으로 기억되실 겁니다. 저처럼 '상식을 벗어난 설정을 강요하는군..'하고 느낀다면 실패한 반전입니다. 상당히 억지스러웠고 부자연스러웠어요. 역시나 좋은 이야기는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면서 독자가 어색한 느낌을 전혀 받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잘 생각해보면 이러저래 작가가 노력도 많이 했고 좋은 작품이라고 평해주고 싶은 마음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설정의 냄새가 많이나서 편치 않은 작품입니다.
좀 더 심하게 얘기하면 아무 얘기나 막 해놓고 마지막에 "사실은... 주인공이 정신병자야.. 그래서 그럴수 있다니깐?"이라고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거죠. 다만 작가의 필력과 노력으로 정신이 가출할 뻔한 사람들은 불러모아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아슬아슬 이어가고 있다보니 너그럽게 읽어주면 대박 재미진 작품으로, 저처럼 불편한 지점이 걸리면 어색하고 억지스러운 작품으로 받아들여지는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이죠. 솔직히 책 마지막에 전문가들의 평이나 해설을 보면 하나같이 찬양일색인데, 오히려 너무 그러니까 더 어색한 느낌입니다.
일단 제입장에서는 이번 작품은 실패... 다음 작품으로 "13.67"을 넘어설 메가히트를 달성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