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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리뷰 - 당신이 생각하지 못한
김리뷰 지음, 김옥현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6월
평점 :

#1. 세상의 모든 리뷰에는 무슨 리뷰가 있나?
아무래도 책블로거라면 늘 리뷰를 쓰는게 생활화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의 모든 리뷰]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생각없이 집어든 이 책에는 놀랍도록 마구잡이 주제로 리뷰라는게 적혀있었고, 그야말로 지 맘대로 써놨더군요.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뭘 리뷰해 놓았느냐 하면, 특정 상품에 대한 리뷰는 전혀없고 되지도 않게 "지구", "지구온난화", "황사" 뭐 이따위의 우주적 차원의 일반명사를 리뷰하기도 하고 "화장실 수도꼭지"니 "설거지", "갑질". "오지랖" 뭐 이런 리뷰가 될 것 같지도 않은 주제를 리뷰해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을 왜 리뷰했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게 됩니다. 책을 주욱 읽으면서 보니 결국은 어떤 주제를 리뷰하더라도 아주 재미지게 써 있기는 하지만 저자인 "김리뷰"씨가 생각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하나의 독특한 방식으로 사용했을 뿐이었습니다. 수많은 각종 현상, 명사, 물품, 음식 등을 테마로 잡고 있지만 결국은 저자의 과거, 삶, 신체적 특징, 에피소드, 가치관, 사회관, 인생관 들이 약간은 두서없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것이죠. 어쩌면 뭔가 정리가 안된 듯한 저자의 엉뚱하면서도 발칙한 발상과 주장들이 독특한 재미로 다가오는 책인 것입니다.
#2. 그래서 이 책은 왜 쓴거냐?
저자는 상당히 솔직합니다. 노골적이라고 해야하나? 사람이 너무 노골적이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고 급기야는 피하게 되는데, 상당히 노골적이기는 하지만 이 책 내용만 놓고보면 딱히 얄밉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수위조절을 참 잘하고 있는 것이죠. 엉뚱하고 발랄한 재미를 한참 주다가 잊을 만하면 한번씩 저자의 진의를 내놓습니다. 내 책 좀 사달라고 말이죠.ㅋㅋㅋ 웃긴 이야기입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은 내 책을 사라는 것이다. 내 책은 자기개발서도 아니고 인생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책이지만 적어도 잔망스러운 재미는 있지 않은가 (중략) 개꿀잼까지는 아니더라도 피식잼 정도는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자기개발서나 인물학의 시대는 갔다. 이제는 내 책이다. 그러니까 내 책을 사라." p.215
자기 책을 사달라는 글을 다른 매체나 홈페이지나 SNS나 방송, 라디오 등등에 해야지요. 아니면 온라인 서점에 인터뷰를 하던가 말입니다. 자기 책에 자기책을 사달라고 계속 써놓으면 뭐합니까? 이미 책을 산 사람만 이 책을 읽을텐데 말입니다. 설령 빌려서 읽었다한들 이 책이 무슨 대단한 소장가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읽은 책을 굳이 다시 사서 소장할 가능성도 별로 없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저자의 이런 멘트들이 지극히 진담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웃음을 자아내는 장치 정도로만 쓰인다는 것이 확연한데 참으로 성실하게도 책 전반에 걸쳐 자기책을 사달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이 책에 대해서는 황당하고 피식하는 재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읽어보면 의외로 나름 깊이도 있고, 고민의 흔적이 많이 보이는 글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아직 젊은 저자의 식견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저자도 그 부분에 대해서 쿨하게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다양한 주장들이 옳다 그르다 따지고 싶은 마음보다는 어떤 글에서는 '정말 독특하고 기발한 생각이다'라고 감탄하는 부분도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 줍니다. 여기다 저자의 주장처럼 가끔 껄껄 웃을 만큼 유쾌한 웃음을 자극하는 어떤 지점이 있습니다. 결코 병맛스럽지 않고 꽤나 괜찮은 에세이라고 해 줄 법한 글들이라 읽고나서도 나름 고민할 만한 내용도 있고,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도 많이 있습니다.
#3. 일베 김리뷰는 무슨 짓을 한것이냐?
사실 재미로 이책을 샀다가 저자의 과거 경력 때문에 이 책을 패스하겠다는 반응을 접하고 책 읽기를 한동안 망설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 저한테 무슨 불편을 끼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성의를 다해 비판하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이라고 생각하다보니 수위가 어떤지 찾아보는 것 자체가 내키지 않았습니다. 일단 책을 읽어보고 판단하자는 생각이 먼저였으니 말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외로 균형잡힌 시각이 돋보이는 글들이 많습니다. 의식적인 노력이든 저자의 평소 생각이든 어쨌거나 책은 저자의 손을 떠난 물성을 지닌 존재이므로 책의 내용만으로 판단하건데 저자의 시각에는 크게 문제가 없어보입니다. 그렇다면 뭐가 이렇게 문제가 되었을까? 궁금하던 차에 저자에게도 그 사건이 큰 흉터였기 때문인지 책의 여기저기서 반성하는 목소리로 그 사건을 언급하고 있어서 자세히는 몰라도 대충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전직 악플러(악성 댓글을 쓰는 사람)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을 해오다 보니 온라인상에서 많은 경험을 했고, 거기에 내 뒤틀리고 왜곡된 가치관이 이입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됐던 것 같다.(중략)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든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든가, 한 번 한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든가. 이것들은 특히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전에 했던 나쁜 말들로 인해서 많이 혼났다. 직장에서도 부득불 나오게 됐고, 내가 생각 없이 던진 말들이 내게 고스란히, 혹은 몇 배로 돌아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p.325~6
"솔직히 까놓고 애기하자면 초창기 시절부터 나 역시 꽤 오랫동안 일베를 했던 유저였고, 나도 모르는 사이 극단적인 사이트의 성향에 물들어가면서 부끄럽고 후회할 만한 언행을 많이 했었다. 결국 그거 때문에 부득불 회사에서 나오게 되기도 했고, 지금이야 완전히 사이트에서 손을 뗀 상태이지만, 아직도 내가 예전에 했던 생각과 인터넷에서 했던 말들을 곱씹어보면 깊은 후회와 반성을 하게 된다."p370
이렇게 책의 전반에 지난 일베에서의 언행에 대한 반성과 후회의 감정을 많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뭐 제가 책 한권 읽으면서 저자의 진의가 맞네 아니네, 의도가 어떠네 하는 생각은 하기조차 싫습니다. 제 관심도 아니고 말이죠. 굳이 이런 내용을 길게 쓰는건 저자의 과거에 행적이 어쨌거나 말거나 일단 이 책 자체는 재미있고 읽을만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무언가 과오가 있는 사람에 대해서 한없이 냉정하고 엄한 경향이 있습니다. 약점 잡힌자를 용서치 않는 단호함 같은것 말입니다. 저는 그런 태도가 꽤나 폭력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두둔할 필요도 없지만 책 한권 읽으면서 갑자기 정의의 사도가 되어서 "너를 용서치 않겠다!"라고 정의를 불태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 책 재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