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쓰카 에이지 - 순문학의 죽음, 오타쿠,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오쓰카 에이지.선정우 지음 / 북바이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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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담집을 통해 발견하는 서브컬쳐문학의 위상변화

 

   계속 언급하지만 오쓰카 에이지는 일본의 특정시대를 지칭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만큼 제가 일본 역사나 문화에 대해 무지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상태로 일본 미스터리나 문학작품을 접하다보면 자연히 단순 작품 외적인 배경에 대해 궁금증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이 책이 눈에 띄였습니다. "순문학의 죽음"이라는 표현도 강렬하지만 "오타쿠" 이런건 제가 또 즉각 반응하는 마이너뽕필이다보니 '오~~~' 하며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만화 스토리 작가이자 다방면에 걸쳐 비평을 하는 서브컬쳐 평론가 오쓰카 에이지가 행사차 국내에 들어왔을 때 그의 에이전시 대표 선정우님이 평소 생각해오던 주제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일종의 대담집입니다. 읽고보니 대담집이라면 이래야지 싶을 만큼 좋은 내용인데, 대담자가 서로 평소에 이 분야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해왔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짧은 대담동안 서브컬쳐문화 전반에 대한 핵심을 잘 끄집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2. 순문학의 죽음과 문화의 대변혁기

 

   이 책에서 언급하는 여러 주제중에 작금의 현실에 가장 크게 부각되는 것은 역시나 "순문학의 죽음"이라는 부분인데 신경숙작가의 표절논란으로 불거진 국내 문단계의 병폐, 이런 부분과 밀접한 관련이 되는 주제라 관심깊게 보게 되었습니다. 오쓰카 에이지의 평에 따르면 일본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순문학이 대 위기였고, 사실상 순문학이 사회적으로 하던 역할이 거의 끝난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일본에서 치열하게 있었던 "순문학 논쟁"에 대한 저자의 질문에 오쓰카 에이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결국 문학은 높은 사회적 평가를 통해 살아남은 겁니다. 이는 출판사가 만화 잡지의 높은 매출에 얹혀가는 형태로 문예 잡지를 유지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아니면 국가의 지원에 얹혀서 살아남았다고 보아야겠죠. 그것이 현재 일본 문학의 상황입니다. 질문하신 순문학 논쟁은 이미 내구연한이 끝난 문학을 그렇게까지 해서 연명시킬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가름하는 준엄한 문제였던 겁니다." p40

 

   이러한 오쓰카 에이지의 지적은 국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만화나 라이트노벨의 판매에 뭍어가는 방식으로 순문학 문예지를 겨우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고, 국내에서는 문학동네나 창비, 세계문학 등 문예계간지의 경우 고유의 내용으로 구매를 유도하기 보다는 정기구독시 주는 선물이나 혜택으로 겨우 독자를 확보하는 처지입니다.우린 또 사은품에 약하디 약하니까 말입니다. 이뿐 아니라 다양한 악재가 겹쳐 순문학은 출판산업의 고사와 함께 동반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소위 등단을 통해 데뷔하는 순문학 소설가가 소설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는 그야말로 손가락으로 꼽아야할 정도인 이 시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웹상에서 장르와 로맨스 류를 연재하면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독자가 정해진 사이트를 통해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고 특정작품의 일부분만 읽고 마음에 들면 추가 비용을 들여 연재를 계속 읽는 형식으로 소비하는 이런 웹 소설들은 소비재를 직접 선택하고 평가하는 방식으로 변화된 환경탓입니다. 출판사와 작가가 키를 쥐고 있던 시대에서 독자가 모든 결정과 판단을 하는 주체가 되는 환경 변화에 따른 것인데, 이는 소설같은 출판 뿐만 아니라 방송, 드라마,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주류가 쇠퇴하고 서브컬쳐가 주류가 되는 문화의 대 변혁기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3. 서브컬쳐화의 이해, 그리고 수용자의 윤리성

 

   문학작품이나 영화, 애니메이션이 국경을 넘어오면서 역사로부터의 단절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브컬쳐화 된다는 지적은 상당히 공감이 갑니다. 그렇기에 지브리 스튜디오의 몇몇 작품들처럼 일본 내에서는 좌익으로 평가받는 애니메이션 내용이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일본의 국군주의적 내용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질적인 현상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입니다. 오쓰카 에이지는 문화상품의 제작자라면 이 부분에 대해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 대담에서 가장 이색적이고도 특징적인 주장은 수용자의 윤리성을 강조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특정 작품을 비평함에 있어 작가 또는 제작자의 객관성과 사회성에 대해서 엄격한 잣대로 평가를 하거나 강도높게 비판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수용자의 태도에 대해 지적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소비자는 왕이니 진리니 하면서 치켜세운 결과일 수도 있겠고, 독자를 평가했다가 온라인 전사들에게 폭격을 당할 수도 있겠으나 어쨌거나 사실상 생산자의 태도를 결정하는 많은 부분이 수용자의 태도이기는 합니다.

 

   그러니까 출판사는 독자가 좋아하고 많이 사려하는 책을 만들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게 아니면 독자가 좋아하도록 어떻게든 만들어야하고 말입니다. 저자는 일본의 예를 들어 수용자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 당시(쇼와시대 초기) 일본의 영화법을 통해 강제 상영되었던 것은 소위 '문화영화'라는 다큐멘터리나 교육 영화뿐이었습니다. 전쟁을 예찬하는 영화는 법률에 의해 강제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전쟁 예찬 영화를 (굳이 강제하지 않더라도) 관객들이 보러 갔거든요. 당연히 관객이 오니까 영화사는 기쁘게 그런 영화를 만들었던 것이죠. 최근 10여 년간 전쟁을 긍정하는 일본 영화가 꽤 만들어졌는데요. 그것도 히트하니까 만들어지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관객의 윤리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P93 

   독자들이 출판사나 작가의 윤리성을 일부분 강제할 수 있​기 때문에 독자들이 윤리적이어야만 작가나 출판사가 출판물 제작에 신경을 쓴다는 것입니다.

​   오쓰카 에이지씨가 지적하는 부분중에 오타쿠 들의 태도변화도 눈여겨 볼만 합니다. 과거 오타쿠들은 기존의 문화상품의 질서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는 적극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미국의 SF, 판타지, 히어로물 오타쿠 들을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SF를 적극 비평하기도 하고, 매니아층을 집결하기 위한 잡지를 제작하기도 하고, 정기모임을 개최해서 작가를 초대하는 등, 비주쥬 문학이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런 노력들이 오늘날의 장르시장을 개척하기도하고 확대하기도 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죠. 그런데 오늘날의 오타쿠들은 다양한 시장의 선택적 수용자 정도수준에서 만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와 같은 적극적 크리에이터까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죠. 서브컬쳐의 다양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분은 문화의 창의적 변화와 발전에 한계로 작용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착안점을 제공하는 내용들로 구성된 이 짧은 책은 상당히 알차게 중요한 맥락들을 집어주고 있어 그저 호로록 읽어나가는 것 만으로도 오토매틱 스캔 시스템으로다가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해주고 정리하는데 도움을 많이 주고 있습니다.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책임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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