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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밀매인 ㅣ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5년 4월
평점 :

#1. 경찰소설이라면 87분서처럼...
에드 맥베인(본명 에반 헌터)의 87분서 시리즈는 그야말로 경찰소설의 효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에드 맥베인이라는 필명으로 87분서 시리즈만 57편이나 썼다고 하니 이 시리즈가 얼마나 방대한지(경찰서 이야기를 쓸 스토리가 그렇게 다양하게 나온다는 것 자체가 신기함) 볼 때마다 놀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유명한 시리즈인데 국내에 기껏 몇 작품만 소개된 데다가 그나마도 피니스아프리카에 출간작들 외에는 대부분 절판이니 이 또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87분서 시리즈를 처음 접한 작품이 [조각맞추기] 였는데, 내용이 흥미롭기는 했지만 약간은 심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고, 그 다음 읽었던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 [노상강도] 역시 뭔가 무척 흡입력있게 끌고가는 힘이 부족한거 아닌가 싶어 이 시리즈 자체에 대해 의아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와 동시에 국내에 그다지 소개가 안 된 이유도 국내독자가 열광할 만한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이지 않겠나 싶었었죠.
반면 시리즈 세번째 작품인 [마약 밀매인]은 이 시리즈에 대한 저의 의구심을 한번에 날려버릴 만큼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원래 에드 맥베인은 지금도 신선한 발상이지만 특정 주인공을 시리즈에 계속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87분서라는 경찰서 자체를 주인공으로 집단 주인공 체제를 고안했는데, 저는 이 발상자체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이 시리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중 하나이구요. 대충 경찰서에 강력반 형사가 몇명인지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대여섯명 이상은 있을텐데 이상하게도 첫작품 [경찰혐오자]의 히어로 '스티브 카렐라'형사를 세번째 작품인 [마약 밀매인]에 재등장 시킵니다. 뭔가 두번째 작품 이후로 강한 임팩가 필요했었는지도 모르지만 돌려막기 치고는 순서가 너무 빠릅니다. (야구에서 포스트시즌에 위기상황에서나 4,5선발 로테이션을 무시하고 1선발이 3~4일만에 다시 등판 할 일이 있을까 말까한데 말이죠.)
#2. 작품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회상과 인간군상
제가 유독 반응을 보이는 부분이 작품속에 등장하는 사회상이라든가 인간에 대한 내면적 갈등묘사 같은 것들인데 이 작품은 이 부분에 대한 훌륭한 접근이 돋보입니다. 사실 어느 소설에나 "인간"에 대한 고찰은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이상하게 미스터리나 추리소설 분야에서 이런 시도가 담겨있는 작품을 더 좋아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마약 밀매인]에는 제목처럼 당연히 마약문제에 대해 자세히 묘사되고 있는데, 사회 전반에 다양하게 깊이 침투해있는 마약 문제는 읽다보면 한숨이 절로 납니다. 특히 청소년들의 마약 문제는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또한 미국내 이민자 사회의 문제도 잘 드러나는데 이 작품에는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의 삶의 어려움을 전면에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경찰신분인 번스 경위의 아들이 마약을 하게 되면서 사건의 한가운데 놓이고 부자가 모두 위기에 처하는 설정을 통해 공과 사의 선택에 기로에 놓인 한 남자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죄책감 아래 억누르기 힘든 혐오감을 느끼며 아들의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딛기 시작했다. 아들은 마약쟁이였다. (중략) 번스는 그때, 자신이 아들에게 자기 돈만큼 남의 재산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자신이 잘못 처신한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벌이라는 명목으로 아들에 대한 애정까지 격리했던 게 아닐까? (중략) 세월이 흐르면서 그간 얼마나 많은 사소한 사건들이 쌓여 온 걸까? 그 자체로서는 하찮은 일들이지만 그것들이 축적되어 길러진 힘이 공모하여 아이를 마약중독에 빠뜨린 걸까?" p147
87분서 경찰들을 지위하는 번스 경위는 아들이 마약중독자인 것에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살인자일 수도 있다는 것과 아직까지는 그 사실을 자신과 은밀히 전화해온 사람만 알고 있다는 사실에 갈등을 계속합니다. 공직자로써 늘 해오던 데로 아들을 일단 살인혐의자로 냉정하게 대해야할지, 하나뿐인 혈육에 대한 정으로 일단 감싸주고 숨겨야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중년남성의 고뇌를 잘 표현해주고 있어 무척 공감이 갔습니다.
사실 누구나 쉽게 공과사를 구분할 것을 이야기하지만 그 주인공이 나와 내 아이 혹은 내 가족이 될 경우, 자신이 그 상황에 직접 막닥들일 경우 아무도 함부러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정말 쉽게 예상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고 내 아이입니다. 잘난 정의감과 도덕심에 내 아이를 감옥에 쳐넣는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말입니다. 그런데 참 다행하게도 드라마처럼 우리의 번스 경위는 부하 카렐라 형사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참으로 이상적이게도 최상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결국 아이와의 관계도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게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잘 굴러가는데도 불구하고 작위적으로 보이기보다는 다행스럽게 여겨집니다. 이 지점에서 이 작품이 짜임새 있게 잘 쓰여졌다는 인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믿고 보는 87분서 시리즈
사실 [노상강도]를 읽었을 때만해도 일단 애정하는 피니스아프리카에 출판사에서 지속적으로 이 시리즈를 출간할 계획이 있어서 책 장정도 디자인도 마음에 드니 일단 계속 사재끼기는 하겠지만 다 읽겠나?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충동적으로 꺼내들었던 [마약 밀매인]의 재미에 푹 빠져서 앞으로 87부서 시리즈는 다 읽어보도록 해야겠습니다.
뭔가 상당히 훌륭한 작품을 두고 그 매력을 못 느꼈다가 이제야 알게 된 느낌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받아가지고 나름 읽어볼 의사가 확실해졌습니다. 아직 몇작품 안읽었고 출간도 몇권 안되었지만 앞으로도 스티브 카렐라 형사 이야기를 자주 접했으면 좋겠습니다. 스포가 될까봐 자세히 말은 못하겠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형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