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쇼라스 - 열정의 발레리노 이원국 자전에세이
이원국 지음 / 다니비앤비(다니B&B)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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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레리노 이원국 선생님
 
   이 책 [이쇼라스]는 국내 최고령 현역 발레리노이자 본인의 이름으로 발레단을 운영하고 있는 이원국 선생님의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처음에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이쇼라스가 뭐지? 하고 생소했던 기억이 납니다. 찾아보니 이쇼라스는 러시아어고 "다시 한번"이라는 뜻이군요. 엄청난 연습벌레인 이 양반이 아마도 다들 지쳐있을 때 힘내서 다시 연습하자고 격려할 때 "이쇼라스!!" 라고  외치는 단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이분을 처음 만난 건 2013년 겨울 호두까기 공연에서 였습니다. 아이가 발레 학원에 다니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로 점점 발레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발레단 단장님인 저자를 알게 되었죠. 처음부터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쓴 건 아닙니다. 사실 이 분에 대한 첫인상은 "쫄쫄이 타이즈를 입은 다리통 굵은 아저씨"였습니다.그러다가 서서히 선생님으로까지 변했네요. 이 분에 대한 저의 심경 변천사를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1. 2013년 겨울 동네 읍사무소 체육관 호두까기 인형  공연 첫만남에서
   1) 아.. 하얀 쫄쫄이 바지... 남사시럽다... 민망해...
   2) 뭔 땀을 저리 흘리시나... 나이도 많으신거 같은데 힘드시것네...
 
2. 2014년 겨울 동네 읍사무소 체육관 동물들의 사육제 공연에서
  1) 아.. 목소리가 왜... 나도 부산사람이지만 사투리를 아직도 못 고쳤다니...
  2) 목소리 연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손발이 오글거려요...

3. 2014년 겨울 노원문화예술회관 호두까기 인형 공연에서..
   (출연은 안하시고 양복입고 단장으로 인사만 하심)
  1) 양복 입으니까 좀 멋있구만...
  2) 제대로 된 공연장에서 제대로된 공연을 보니 멋진데.. 이 발레단 단장이면 꽤 멋진 사람인데...

4. 2014년 겨울 동네 읍사무소 호두까기 인형 공연에서...
  1) 또 쫄쫄이네... 작년보단 관리를 좀 하셨구만... 땀도 덜 흘리고...
  2) 이런 작은 공연에도 굳이 출연하는 걸 보니 정말 발레공연을 하고 싶어하고 무대를 사랑하는 가보다...

5. TV에도 출연했다는 소식을 듣고 KBS 여유만만 14년 12월 21일자 방송분을 보고
  1) 음... '생각'보다 '생각'이 바른 분인데...
  2) 대중들이 발레를 친숙하게 여기는데 노력을 무척 많이 하고 있네... 훌륭한데...

   이 과정을 거쳐서 "쫄바지 아저씨"에서 -> "이원국 선생님"이 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서는 진심으로 이 분을 존경하게 되었네요.

"이 영상을 보면 이분의 멋진 포즈를 느낄 수 있습니다"




#2. 진정성 가득한 자전에세이의 힘
 
   가끔 밝힌 적이 있지만 저는 자서전은 어릴적 이순신 장군 위인전 이후로 무척 경계하고 피하는 편입니다. 확실히 결과만 놓고 과정을 미화할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도 어쩌다 그리되었는데 마치 결과를 예측하고 계산된 행동인양 개뻥을 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책들을 읽다보면 상당히 짜증이 납니다. 게다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자신의 업적 자랑에서 시작해서 자뻑으로 끝나는 경우도 무척 많습니다. 대필작가를 썼다면 좀더 부드럽게 표현되기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자전에세이는 상당히 훌륭합니다. 문장이 유려하지는 않지만 진솔하고 진정성이 가득한 느낌입니다. 물론 제 느낌은 완전 속은 것일 수도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말보다 선택과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이 분의 삶의 궤적과 행보만 봐도 진정성 그 자체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년기를 심하게 방황하다가 20살에 뒤늦게 발레에 뛰어들었다는 사실도 매력적입니다. 마치 마흔을 넘어서 글을 쓰기 시작해서 대가가 된 마쓰모토 세이초옹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입니다. 발레를 시작한 이후로는 한눈팔지 않고 평생을 외길만 걸어왔다는 점이 정말 이분의 글에 묵직한 무게감을 실어 주고 감동을 줍니다.

   책의 구성도 좋습니다. 수준 낮은 자서전과 달리 자신의 어릴적 이야기, 꿈을 향해 달리는 과정, 그리고 성취와 영광의 순간이 드라마틱하게 잘 서술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발레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과 발레를 즐기는데 필요한 요소들, 발레 뿐 아니라 춤이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지식들까지 의외로 풍성하게 들어있습니다. 
 



#3. 한국 발레의 대중화에 온힘을 쏟다
 
   이원국 선생님을 보면서 결정적으로 훌륭하다고 느낀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대한민국 최고 발레단 수석단원으로 활약하고 세계 유명 발레단에서 객원으로 참여하면서 이미 이 분야에서 레전드가 된 분 아니겠습니까? 통상 어느 분야건 이정도 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꽉 다문 입이 쳐지면서 무게를 잡게 마련입니다. '내가 위치가 있지 이런거 하게 됐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 분은 그런게 전혀 없습니다. 그저 나이가 들어도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행복해 보입니다. 그렇기에 시골 장터라도 불러만 주면 단원들을 이끌고 달려가서 공연을 하는 것일 겁니다. 발레의 전통과 품격을 해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아도 개의치 않을 수 있는 것은 자기만의 사명감이 분명히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발레 문화의 대중화,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지 정말 알게되면 발레공연을 보면서 삶의 위로를  받고 희망을 얻는다는 것을 체험한 결과일 것입니다.

   이런 개념찬 생각들이 토대가 되고 비전이 되는데다가 행동하는 힘까지 갖추어 소극장에서 소수의 관객과 호흡하는 월요발레라던가, 팝핀 등 다른 분야와 협업을 시도하는 것, 드라마를 발레로 바꿔 공연하는 파격적인 시도, 심지어 트로트에 발레 안무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발레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 등등. 수많은 노력이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런 순수한 열정과 노력으로 한국 발레의 대중화와 발전을 위해 애쓰는 그 마음이 훌륭합니다.

   발레단을 이끌며 아직도 발레가 생소한 저같은 사람에게 발레를 봐 달라는 단장님은 지금도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분들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여러분, 무대 공연을 즐겨 주세요. 수백 년 내려온 전통의 춤, 발레가 여러분의 삶에 기품 있고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할 겁니다. 그 약속을 제가 하지요. 우울하고 거친 세상살이에 지친 당신의 인생을 춤추는 인생으로 만들어 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길 바랍니다."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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