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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문학 150호 - 2013.겨울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1.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최근 발표되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드라이브 마이 카]를 읽었습니다. 온 집안을 도배하느라 짐도 엉망진창이고 어디 제대로 앉을 곳도 없는 상태에다가 뜨거운 햇볕으로 땀이 흐르는 상태로 이 작품을 읽었는데, 참으로 놀랍게도 이야기에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값인 탓도 있겠지만 뭔가 모를 흡입력이 늘 있습니다.
좋은 작품을 쓰는 훌륭한 작가는 늘 제목을 잘 짓는 것 같습니다. 초창기 장편 '노르웨이의 숲'이 그러했듯이 [드라이브 마이 카]도 비틀즈의 정규앨범 러버소울의 첫번째 곡이네요. 노르웨이의 숲이 두번째 트랙이었으니 이번엔 세번째 트랙 이름을 차용해야 될 듯 하지만 첫 곡의 제목을 따 왔습니다. 물론 가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듯 합니다만, 다만 이 작품의 내용 자체가 주인공 중년 배우 '가후쿠'가 차 사고를 낸 이후 운전사인 '미사키'를 고용하게 되면서 그녀와의 대화 가운데 전개되는 아내와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다 보니 제목과 책 내용은 잘 매치가 됩니다.
#2. 한결 같은 하루키 작품의 캐릭터들...
사실 하루키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비현실적인 경우도 많고 매우 다양합니다만 주인공에 한해서는 대체로 한결같은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사교성이 좋거나 대성한 인물은 거의 없습니다. 거의 내성적이고 고독하고 친구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고, 일반적인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정상의 범주에서 보면 항상 양 끝단 어디 즈음에 가 있는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하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그러합니다. 주인공 '가후쿠'는 성격파 배우이지만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딱히 친구가 없고 늘 혼자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자궁암으로 죽자 더욱 우울해집니다. '가후쿠'의 드라이버로 고용되는 '미사키'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운전 솜씨는 누구못지 않게 훌륭한 여성이지만 딱히 말이 없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역시나 전혀 사교적이지 못합니다. 작가 자체가 그런 성격이기도 하지만 늘 하루키는 이런 사교적이지 못한 주인공 캐릭터를 내세워 사교는 못하지만 사고는 많이 하는 인간의 특성을 드러냅니다. 이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덧칠합니다. 물론 그의 에세이에 훨씬 가볍고 흥미롭게 나타내기는 하지만 말이죠.
#3.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가는 것과 돌아오는 것
주인공 '가후쿠'의 아내는 미인이자 인기 많은 주연 배우였습니다. '가후쿠'는 그런 아내를 사랑했고 관계가 원할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내가 생전에 작품활동을 같이 한 남자들과 여러차례 관계를 맺은 이유를 궁금해합니다. 지나간 일이니 그냥 덮어둘 만도 한데 계속 생각하고 끝까지 알고 싶어 합니다.
"상상은 예리한 칼날처럼 시간을 들여 사정없이 그를 난도질했다. 아무것도 몰랐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낫다는 게 그의 기본적 사고방식이었고 살아가는 자세였다. 설령 어떤 격한 고통이 다가온다 해도 나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아는 것을 통해서만 인간은 강해질 수 있으므로." p21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내가 그녀를, 적어도 소중하게 여긴 일부를, 정말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야. 그녀가 죽고 없는 지금, 아마 그건 영원히 이해 못 한 채 끝나 버리고 말겠지. 깊은 바다에 빠진 작고 단단한 금고처럼.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죄어 드는 것만 같아." p37
남자 입장에서 이런 상황에 빠진 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괴로운 입장이 되는 일입니다. 어지간하면 용서할 수 없을테고 진작에 관계를 끝내거나 아내에게 따지고 들었겠지요. 그러나 주인공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가 아내를 사랑하는 방식이 그랬던가 봅니다. 관계에 금이 가는 것을 원치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저라면 일단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말았겠지만 하루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반적으로 전형적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례적인 행동을 통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이런 답답한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 아내와 관계를 맺었던 배우 '다카쓰기'와 친분을 가집니다. 그를 알아감으로써 아내가 매력을 느낀 부분이 무엇인지? 자기에게 부족한 부분이 어떤 부분이었는지 깨닫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납득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의외로 '다카쓰기'가 그냥 육체적인 관계만 맺은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카쓰기'로 부터 아내를 아는 것에 대해 이런 고백 아닌 고백을 듣습니다.
"아무리 깊이 서로를 이해하는 상대라 해도, 그토록 사랑하는 상대라고 해도, 결코 남의 마음을 그냥 고스란히 들여다 볼 수는 없을 겁니다. 그걸 바라다가는 오히려 더욱 고통스러워질 따름이겠지요. 그러나 진심으로 알고 싶다면, 그래서 노력만 한다면, 노력한 만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과 솔직한 자세로 화해하는 게 아닐까요. 정말로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스스로를 깊고 진솔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어요." p39
어떤 면에서는 배우라는 것은 참 좋은 직업입니다.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항상 타인의 삶으로 들어갔다가 때가 되면 자연히 걸어 나오게 되니까요. 주인공 '가후쿠'는 오늘도 무대에 올라 타인의 삶이 되었다가 극이 끝나면 현실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가 돌아온 현실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떠나기 이전과 무언가 조금은 달라져 있는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떠나고 또 늘 돌아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