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순 - 2014년 제3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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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미"와 "재미" 그 어딘가쯤...

 

   어쩌다보니 드라마 시나리오에 대해 어깨너머로 줏어듣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드라마의 경우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즐겨보는 장르입니다. 그러니 내용이나 표현이 너무 어려우면 안됩니다. 초등학교 5학년 정도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목표를 잡고 쓰는 것이 일반적인 모양입니다. 어려운 작품은... 망합니다. 내용이 심오하고 깊이있어 너무 좋았던 드라마 라고하면 저는 "마왕"이 생각납니다. 심리묘사도 주제의식도 매우 탁월했고, 전체 서사의 진행도 치밀했던 기억이 납니다. 엄태웅, 신민아, 주지훈이 열연했던 명품 드라마 "마왕"의 시청률은 평균 7.4%였습니다. 지금도 드라마 작가 지망생들이 분석하는 잘 된 작품인데 말입니다.

 

   편혜영작가님의 이상문학상 대상작 [몬순]을 필두로 8편의 쟁쟁한 단편이 실린  [몬순(2014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대하는 저의 심경은 복잡했습니다. 아, 물론 한편 한편이 무척이나 훌륭한 작품이고 흥미롭기는 했습니다만, 역시나 이상문학상이라는 무게감 때문인지 작품들의 구조적 완결성이나 작품이 나타내려 했던 "의미"에 집중한 선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수상작을 선정해야할 심사위원들이라면 아무래도 이 분야에 잘나가고 명망있는 분들일테니 심사평까지 실리는 심사를 그저 '재미있어서'라며 선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요. 그러니 각 작품들의 '기술적인 완성도'와 그 '의미가 얼마나 선명한지'를 철저하게 따져 주셨을겁니다. 그러나 그저 아무 생각없이 소소한 기대감으로 수상작을 읽어나가는 저같은 독자 입장에서는 각 작품들이 무엇을 중의하고 있는지, 어떤 주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는지 공부하듯이 파악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런관점에서 좁히기 어려운 작품을 대하는 태도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전문가는 "의미"를 중시하고 독자는 "재미"를 중시합니다. 우리가 흔히 전문가 집단이라고 볼 수 있는 선임 작가들, 교수님들, 평론가들이 발표된 작품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일반 독자, 대중이 작품을 대하는 시선의 온도차는 필연적으로 독서 저변화를 방해하는 큰 요소로 작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순수문학은 왠지 그들만의 리그를 갖춰놓고 허접한 일반 독자의 접근을 제한한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게 됩니다.

 

   이번 [몬순((2014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느낌입니다. "의미"와 "재미"의 사이를 표류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의미" 쪽으로 추가 꽤나 기울여져 있는 것이 아닐까?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2. 그래도 빛나는 국내 작가들의 힘, 어둡고 무거움은 그들과 함께 한다.

 

   이리 투덜거리는 와중에도 우리 작가들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전체 수상작을 놓고 봐도 눈에 띄게 특출한 작품을 꼽기가 어려운 점은 분명히 있습니다만 그렇기에 한 작품 한 작품 읽어나갈 때 어느 작품 하나 소홀히 대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독서량이 터무니 없이 적은 제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 참 아이러니이기도 하고 숲을 보는 시각이 없어 편협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대하다 보면 늘 한결같이 지나치게 어둡고, 무겁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뭐가 그리 늘 슬프고, 상실하고, 구구절절 사연이 많고 서글픈지 말입니다. 지지리 궁상이 너무 많습니다. "이상"한 캐릭터와 사건도 너무나 많습니다. 일상적이기 보다는 뭔가 늘 독특하고 지나치게 불운합니다.

 

   이런 국내 작가의 작품들을 대하다 보면 '왜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은 대체로 읽는 사람의 마음을 갑갑해지고 가라앉게 만드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자연히 듭니다. 그러다 동시에 상대적으로 훨씬 가볍게 터치하고 담담하게 써나가는 일본 여류작가들이 함께 떠오른 것입니다. 국내 작품이 주로 어둡고, 처참한 상황에 놓이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는 것은 그저 작가들의 자유로운 선택인가요? 아니면 그런 작품이 선호되어 상을 받게 되니 맞춤으로 쓰는 것인가요? 뭔가 맞는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잘라 말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두움과 무거움은 늘 우리와 함께 합니다.

 

 

 

#3. 개취가 물씬 반영된 좋았던, 나빴던 작품들...

 

   늘 그렇듯 개인의 취향은 중요합니다.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표제작이자 대상 수상작 [몬순]은 다 좋았지만 마무리가 아쉬웠습니다. 제목은 아주 잘 지어진 느낌입니다. 제목 선정도 실력인 모양입니다. [몬순]이라는 제목 하나만으로도 이 작품의 주제를 자연히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옥의 티는 이 작품 내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많은 정보들이 작품 주위에 이미 흘러넘치고 있었습니다. [몬순]을 읽기도 전에 왜 [몬순]인지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알 수 있는 루트가 너무 많았습니다.  신선하고 흥미롭게 읽는데 방해요소가 꽤나 많았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혜영작가님의 능력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작품이었습니다.

 

   유독 마음에 들거나 흥미롭거나 뇌리에 남는 작품은 [몬순], [프레디의 사생아], [나선의 방향] 이었습니다. 윤고은 작가님의 [프레디의 사생아]는 제가 너무 좋아하는 프레디 머큐리의 생가가 소재라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나선의 방향]은 사실 별 기대없이 읽었는데 읽으면서 완전 몰입했습니다. 전체 작품 중에 다 읽고 나서 가장 마음에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유독 그저그렇다는 느낌이 든 작품은 [법앞에서], [기린이 아닌 모든 것들의 이야기] 정도를 들 수 있겠습니다. 김숨 작가는 이전에도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셨던 작가인데다가 기존 수상작 [국수]가 평이 워낙 좋았던지라 기대를 너무 했던 모양입니다. [법앞에서]는 저랑 좀 안 맞는 스타일이어서 실망이 꽤나 컸습니다. 사실은 이 작품을 읽은 후에 앞에서 언급한 "의미"와 "재미"사이의 미묘한 입장차이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기린이 아닌 모든 것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아, 내가 주인공이 나에게 말하듯이 쓰는 형식의 글을 싫어하는구나!'하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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