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강도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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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끝까지 걱정을 하게 만드는 작품구조...

 

   피니스 아프리카에의 87분서 시리즈는 [조각 맞추기] 이후 최근 출간된 [노상강도]로 두번째 만났습니다. 첫번째 만났던 조각 맞추기가 훌륭하기는 했지만 고전이라 그런지 뭔가 다 읽고나서 밋밋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앞으로 이 시리즈를 계속 읽어야하나 약간은 망설이게 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권만 읽어보고 판단하기도 애매하고, 재미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다가 모름지기 시리즈라면 꼭 순서대로 읽어야한다는 것이 제 나름의 지론인지라 시리즈 첫작품은 아니지만 두번째 작품이라는 [노상강도]를 읽을 명분은 충분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작품을 읽어보고 모으기만 할지, 계속 읽을지가 결정하고 싶었습니다.

 

   읽어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가독성도 좋고, 내용전개도 훌륭했습니다. 마치 고전 스탠다드를 만나는 느낌이랄까... 굉장히 정석적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중반정도까지 읽다보니 슬슬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니 이렇게 느리게 내용이 진행되어서야 사건은 언제 마무리하고 범인은 언제 잡고 범죄 원인과 방법을 어떻게 설명할 거란 말이지?'하는 걱정이 절로 들더란 말입니다. 이야기 전체에서 발단만 절반 정도 차지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거 이래서 제대로 마무리하고 끝나기나 할 것인가?'가 계속 걱정되었습니다. 심지어 종반으로 달려가는 시점에 뜬금 없는 연애이야기가 챕터를 떡하니 차지하다니 말입니다. 그냥 재밌게 읽으면 되는데 왜 제가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도 웃기지만 책을 읽을 때는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중반부 약간의 암시 후에 어느덧 책장은 몇장 안남았는데 이야기는 정리될 줄 모르고 흘러가다 단번에 결과를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이 작품은 마지막에 결론이 집약되어 읽는 이에게 의외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마지막 반전을 위해 뜬금없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고 전혀 어색함이나 이상한 없이 잘 마무리한 것이 이 작품의 백미였습니다. 역시 글은 시작이 흥미롭고 마무리가 명쾌해야 읽는 사람에게 깔끔하게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2. 역지사지는 딴나라 이야기가 되는 인간의 이기적인 태도

 

   [노상강도]는 크게 두가지 사건이 뒤섞여 흘러갑니다. 늘 그렇듯이 사건은 인간이 만들어 냅니다. 보통은 범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형편과 환경 때문이기도 해서 흔한 표현으로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면 안되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마련인데, [노상강도]에 등장하는 범인들은 딱히 그런 측은함이 없습니다. 여자들만 골라 두들겨 패가며 지갑의 푼돈을 뜯어내는 노상강도는 먹고 살려고 "돈 때문"이라고 항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기엔 그 정도 벌이를 대체할 수단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성을 살해한 범인 역시 사랑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그 어긋난 사랑을 하게 된 것도, 그 사랑하는 사람을 살해하는 짓거리를 한 이유도 말도 안되게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어처구니 없는 이기적인 태도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살다보면 말도 안되게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군상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습니다. 진정한 퓨어 이기심인 경우도 있고 손해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결과물로 나타나는 이기적인 혹은 방어적인 태도도 있겠습니다만, 여튼 모든 사고와 행동의 근본 원인이 '나'에 국한된 인간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정치판에도 넘쳐나고 재력을 쥐고 있는 인간들에게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태도입니다. 이런 발상에서 기인한 행동양식은 인간세상을 혼탁하게 합니다. 또한 이런 이기적인 인간들의 행동의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됩니다. 이렇게 피해를 경험한 사람들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피해의식이 생기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배려하는 행동을 줄이게 됩니다. 결국 사소하고 단순한 이기적인 태도가 모여 약자에 대한 배려가 사라지고, 나만 아니면 되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집단 의식을 형성하게 되는 출발점이 됩니다.

 

   오래전에 쓰여진 고전 장르소설에서 등장하는 이기적인 인간에 분노하고 좌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시나 이런 인간의 단점이 한치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니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작품의 저자 에드 맥베인은 단순 흥미위주가 아니라 '인간군상들의 문제를 통찰력 있게 잘 고찰하고 묘사했다'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3. 87분서 시리즈의 매력에 빠져든다.

 

   87분서 시리즈는 여타 시리즈와 달리 역시나 집단 플레이가 특징입니다. 특출한 에이스가 없는 대신 각기 상황에 맞게 돌아가며 활약을 합니다. 구성원 모두가 주인공입니다. 한때 우리나라 예능에서 유행하던 집단 MC체제랑 비슷한 듯 합니다. 한두 명의 명 MC가 모든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의 MC들이 주어진 타이밍에 한두 마디씩 각자의 역할을 하며 프로그램 속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메이저 리그에서 한 횟을 그은 "머니볼"이론 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런데 집단 MC 체제의 단점이 있는데 이야기나 진행이 산만해 지는 점, 그리고 서로 팀웍이 안좋으면 흔한말로 오디오를 씹을 수 있다는 점 등 입니다.

 

   [노상강도]에는 왜소한 형사와 순찰순경을 전면에 내세우기는 하지만 전체로 보면 조직이 움직이고 그 속에 담당이 정해지고 바뀌는 구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가 이 시리즈를 50편까지 진행되도록 해주는 힘이었을거라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스타 플레이어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이야기가 산만해 질 수도 있는데 막상 읽다보면 가독성이 뛰어나고 쉬운 전개이기 때문에 이런 위험을 상쇄해 줍니다.

 

   저는 역시나 한사람이 집단의 모든 결과물을 상징적으로 독식하는 구조를 매우 꺼리는데, 그런 관점에서 이 시리즈는 아주 공평합니다. 시리즈 전체를 보면 87분서의 형사가 주인공이 아니라 87분서 자체, 더 크게는 경찰조직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 각자 최선을 다해 사건을 해결하려는 각 형사들의 노력이 빛납니다. 에드 맥베인의 디테일이 훌륭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87분서에 속한 여러 경찰 캐릭터들이 각각 개성이 강하고 매력적입니다.

 

 

 

#4. 문학적 표현인가, 과한 표현인가 긴가민가봉가....

 

   에드 맥베인은 작품 속 곳곳에 문학적 표현을 깨알같이 하고 있습니다. 특히 계절적인 묘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저는 잘 모르는 부분이지만 좋은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문장력을 많이 이야기 하는데 에드 맥베인도 그부분을 의식해서인지 그런 표현들이 많습니다. 마치 문장력을 의식한 듯한 표현들 말입니다. 그런데 초반 몇몇 문장에서는 상당히 어색하고 의아한 표현들이 자연스러운 읽기를 방해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너는 거대한 흰 부처처럼 증기를 빨아들이며 앉아 있었고, 윌리스는 땀을 흘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클리퍼드라고?" 도너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깊고 음침하게 울렸다. 마치 죽음이 그의 조용한 파트너인 양". p44

 

   이런 표현이 좀 뭐랄까? 뜬금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으응?'하게 만드는 사족같은 표현이랄까... 원문 표현이 어떤지 몰라도 번역문 자체만 보면 뭔가 과도하다는 느낌입니다. 굳이 안해도 될 표현이거나 지나친 첨언이랄까?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죠.

 

"도너가 어깨를 으쓱했다. 증기탕은 점점 더워지는 것 같았다. 증기는 악마가 숨겨 둔 무기처럼 피어올랐다."p46

 

   이런 표현들 말이죠. '으응? 악마가 숨겨 둔 무기가 뭐지?' 이런 느낌이었어요. 이런 표현을 대하면 '캬~~~' 이래야 하는데 '뭐래?' 이런 느낌이 들어버리면 책읽는 재미가 반감되는 것이죠. 참, 이건 뭐 저의 문학적 소양이 바닥이다보니 이해를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문화나 시대적 차이일 수도 있겠습니다. 여튼 저는 조금 불편한 문장들이 있었어요. 이 것 역시 걱정이 되었는데 희한하게도 초반 이후에는 이런 불편한 문장을 전혀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게 또 묘하더군요.

 

   여튼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 2번째 작품인 [노상강도]를 읽으니 시리즈 첫 작품인 [경찰 혐오자들]이 무척 매우 아주 궁금해졌습니다. 아무래도 사서 읽어봐야할 것 같습니다. 역시 시리즈는 순서대로 읽어줘야 제맛입니다. 앞으로 87분서 시리즈는 놓치지 않고 읽게 될 것 같습니다. [노상강도]는 아주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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