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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나 - 소설로 만나는 낯선 여행
성석제 외 지음 / 바람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1. 짧고 신선한 이야기들의 모음, 단편집의 매력에 빠지다.
에..또.. 제가 기본적으로 단편집을 좋아합니다.
짧은 호흡으로 압축된 서사가 좋고, 간결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이 좋습니다.
상대적으로 장편소설에 비해 내용이 단순하고 심심할 수가 있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분들도 상당히 많으시지만 저는 마냥 좋습니다.
장편소설이 좋은 음식 한가지를 배불리 먹는 느낌이라면 단편집은 맛난 음식
여러가지를 조금씩 담아서 하나씩 하나씩 음미하며 먹는 느낌이라고 하겠습니다.
참, 소설외 옴니버스식 에세이 등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법 많이 읽어봤는데
대부분 책 한권이 완성도가 떨어지고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좀 중구난방으로 억지로
이어붙여놓은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2. 신선하고 분명한 컨셉이 빛나는 기획
[도시와 나]는 실력파 국내작가 7인이 참여한 단편소설집입니다.
그저 단편을 엮어놓은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일곱빛깔 이야기들이
세계여러 도시를 배경으로, 여행이라는 테마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집을 읽다보면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이 생각납니다.
유럽의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향토음식이라는 테마로 네가지 이야기를
엮어놓은 기획이 상당히 돋보였었거든요.
[도시와 나]도 거의 유사하게 좋은 기획으로 만들어진 단편집입니다.
기획과 컨셉이 확실하다보니 이야기가 전혀 다른 성격임에도
일관된 통일성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혀 다른 느낌의 이야기들을 연결해 읽어도
한권의 완결된 책으로써 이질감을 느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딱히 특정 수상집이 아닌이상 단편집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컨셉을 가지고 기획해줘야 한권의 책으로써 가치가 더 있는 것입니다
#3. 낯선 도시로의 여정이 가지는 가치
첫번째 이야기는 성석제의 [사냥꾼의 지도]입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좀 황당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소설인지 산문인지
편지글인지 헤깔리게 오묘했습니다. 남의 나라에서 지리도 모르면서
자전거로 장거리 여행을 하며 고생을 사서하는 좌충우돌 여행기쯤 되겠습니다.
슬프고 심각한 상황인데 묘하게 웃기는 성석제씨 특유의 매력이 그대로
살아있는 단편집입니다.
두번째는 백영옥의 [애인의 애인에게 들은 말]은 뉴욕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짝사랑하는 사람끼리 연적에서 공감으로 이어지는 미묘한
감정변화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습니다.
뭔가 익숙하다 했는데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읽는 느낌이 조금 났습니다.
세번째는 정미경의 [장마]입니다. 도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이야기는
딱히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상황에서 만난 두 남녀의 이야기입니다.
"지나온 삶에서, 우연히 다가온 따뜻하고 빛나는 시간들은
언제나 너무 짧았고, 그 뒤에 스미는 한기는 한층 견디기
어려웠다. 그랬다 해도, 지금 이순간의 따뜻함을 하찮게
여기고 싶지 않다" p.119
분위기도 너무 좋고 결말도 썩 마음에 들었던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네번째는 함정임의 [어떤 여름]입니다. 아, 이 이야기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설정의 이야기 중 한가지 였습니다. '열차안에서 만난
이국적인 여성과 호텔 투어 여행을 함께 한다.' 뭐 이런 설정인데
캐릭터도 독특하고 무척 좋고 재미있었습니다.
이 작품에 기술된 호텔들을 실제로 여행해 보고 싶은 충동이
엄청 일었던 작품입니다.
다섯번째는 최근 [밤의 여행자들]을 출간한 윤고은의 [콜롬버스의 뼈]입니다.
솔직히 제가 그다지 흥미가 가는 소재와 설정은 아니었습니다만
저도 세비야에서 뜨거운 한낮의 시에스타를 제대로 맛보고 싶었습니다.
여섯번째는 [파라다이스의 가격]의 저자 서진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입니다.
이 작품은 아주 짧은데 사실 딱히 집중이 안되었던 작품입니다.
마지막 일곱번째는 한은형의 [붉은 펠트 모자]입니다. 아프리카 튀니지의
튀니스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여느 비민주화 국가가 그러하듯
오랜 독재속에서 영웅으로 여겨지던 간부가 시민혁명 이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더욱 의미깊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이 소설집 [도시와 나]를 읽으면서 낯선 도시로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에 빠졌습니다.
낯선 도시로의 여행은 우리가 사는 삶이 "그닥" 정상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여정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크게 공감이 되는 좋은 작품집이었습니다.
디자인도 너무 좋고, 올해의 첫책을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기획으로 시리즈가 준비중이라는 소식에 다음 편도 너무 기대되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