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 1 - 경시청 특수범수사계(SIT)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1. '혼다 테쓰야'가 그리는 또다른 경시청의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혼다 테쓰야'의 작품은 강한 임팩트 때문인지 어떤 면에서는 다소 투박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누가 뭐래도 대단한 이야기꾼인것 같습니다. 이미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는 들었습니다만 일단은 특화된 작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국내에 소개된 책들이 그래서 더 그렇게 느껴지겠지요. 여튼 경찰 수사물에 있어서는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는 느낌입니다. 저도 일본의 경찰체계나 구조, 생리등등.. 뭐 이런걸 [스트로베리 나이트 시리즈]와 이 작품 [지우]를 통해서 어렴풋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조직내부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와 저에게는 특히나 재미있게 다가왔습니다.

 

    스트로베리 나이트 시리즈가 경시청 형사계 수사 1과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면  [지우]는 같은 경시청내의 특수범수사계(SIT)와 경비부 등의 조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미스터리 계열에서 늘 접하는 살인사건과 강력계 이야기와 약간은 결을 달리하는 특수범죄에 대해 다루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물론 유괴는 단골 소재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이 특수범수사계는 유괴사건이 발생하면 출동하는데 무작정 덤벼들고 붙잡고 패고 패대기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인질의 안전이 최우선이다보니 협상부터 합니다. 말로 하잔거죠. 이런 조건이다보니 1여주인공인 가도쿠라가 돋보이는 상황이 가능해집니다. (이 얘기는 다시 하도록 하고), 여튼 협상하든 두드려패든 상황이 종료되면 이후 수사는 다시 살인범수사계 쪽으로 넘어갑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있다보니 이 작품 [지우]에 이르러서는 경시청 이야기가 좀더 풍성해졌다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이야기가 더 재미지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죠(스트로베리 시리즈를 잘 안다고 가정하면 말입니다) 

 

   실제로 스트로베리 나이트에서 출연한 수사 1과 살인범수사 10계 이마이즈미 경감과 쿠사카 주임 등의 이름이 거론 될때는 필요 이상으로 무척이나 억수로 괜히 희한하게 반갑더군요. 거의 카메오 수준으로 스쳐지나가거나 이름만 언급되지만 모르는 사람 천지인 장소에서 잘 아는 사람 만난 듯한 그 기분을 알랑가 모르겠습니다. 책속에 들어가 인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더라니까요^^.  

 

   혼다 테츠야는 듣기로 서로 다른 작품을 시간순으로 정리해서 일부 등장인물들끼리의 크로스 되는 지점을 염두에 둔다고 합니다. 그의 팬은 여러 작품에서 연결점을 찾아내서 반가워하는 소소한 재미를 맛볼 수 있겠습니다. 이 작품도 물론 그렇구요^^  

 

 

#2. 이야기를 끌고가는 뼈대인 조직내의 미묘한 알력 다툼과 상반되는 두 여주인공의 대립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조직이 경직되고 수직구조 일수록 알력다툼이 대놓고 심합니다. 보다 수평적인 구조의 조직일수록 좀더 유연한 평가를 하는 경향이 높으니 각자 자기일에 충실하기 마련이지만 수직구조의 전통적인 조직일수록 다양한 방식의 알력다툼이 발생하게 됩니다. 거뭐, 사람 사는데야 어디든 '밥그릇 싸움'이 영원히 끝날 기미는 없어보입니다만... 여튼 이 소설 [지우]에서도 역시나 부서간 알력다툼에 의해 주인공들이 오락가락하는 일이 발생하고 조직을 지키기 위해 개인이 희생되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두 여주인공 가도쿠라와 이자키의 상반된 태도와 행보가 대비되어 교차진행됩니다. 이런 교차진행은 하루키 장편소설 등에서 아주 익숙한 진행이라 편안히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지우 1편]에서는 본격적으로 지우라는 인물이 드러나기 전에 두 여주인공 가도쿠라와 이자키의 극명한 차이와 행보를 통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에 대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혼다 테츠야가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느껴지는 지점입니다. 지나치게 전형적이고 극단적인 설정이라는 불편함이 약간은 맴돌지만 질문을 던지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또 이해할 만 합니다.

 

 "잘 들어. 경찰은 지면 안돼. 세상 사람들한테도, 범죄자한테도 지면 안 된다고. 넌 그런 의식이 너무 부족해. 꼬리 말고 도망치는 개 같은 근성이라고 할까. 뭐 그런 거에 찌들었다고! 넌 툭하면 울잖아. 그게 무슨 여우 짓이야?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다니, 나라면 꿈에도 생각 못 할 만큼 창피한 일이야." p138

 

   강인한 여성을 상징하는 이자키는 카도쿠라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전형적으로 호전적인 캐릭터입니다. 모든 것이 힘겨루기로 수렴되고 나머지 모든 일들은 귀찮고 시덥잖은 일이 되어 버립니다. 배려하다가 내가 죽는다는 투철한 생존본능, 승부욕으로 뭉친 화신입니다. 의외로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비슷한 유형을 만나는 일이 많습니다.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유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이자키라는 인물에 대한 저의 이미징과는 너무도 다른 배우가 연기한 일본 드라마를 보고 좀 깼습니다. 제가 상상했던 외모와 너무 달라서...

 

 음.... 크흠....

 

"난 경찰이 이기고 진다는 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중략) 범인한테 자백을 받아 낸 경우, 승패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그건 경찰의 승리로 보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자백한 범인이 패자인가 하면 나는 꼭 그렇지 않다고 봐. 범인은 범인대로 고통받으며 죄를 고하고 시인했잖아. (중략) 사람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는 게 싫기는 해도 창피한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렇게 해서라도 범인과 마음이 통한다면 나는 눈물을 참지 않을 거야." p139

 

      반면 가도쿠라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섬세하며 친절하고 말랑말랑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공명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듯 합니다. 가도쿠라는 대체로 저와 비슷한 유형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가도쿠라의 이야기 전개는 무난하게 납득이 된 반면 이자키의 내용 부분은 뭔가 답답하고 깝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답답한 여자같으니라고..'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더군요. 스트로베리 나이트의 레이코주임과 기질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범죄자의 심리에 쉽게 동화된다는 점은 매우 유사한 설정입니다. 그나저나 드라마 지우에서 가도쿠라역은 그럭저럭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정도라면 딱 무난하고 마음씨 좋은 아가씨 같거든요.

 

그리고 내용중에 가도쿠라가 호감을 갖게되는 아즈마 주임...

거뭐.. 그렇게 호감을 막 가질만한 얼굴은 아닙니다만... 물론 개취니까 상관할 일을 아니지만서도...

 

 

#3. 대단한 가독성과 충격적인 마무리, 다음편을 기약하는 강력한 존재감

 

   여튼 [지우 1편]은 두 여주인공이 함께 있던 특수범수사계에서 시작해서 두 여주인공의 이야기가 계속 교차되어 전개되는 방식으로 평행선을 긋다가 또 하나의 납치사건으로 만나게 됩니다. 이 와중에 두사람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 긴장감 넘치고 아주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두갈래로 진행되면서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던 이야기 구조에 작은 균열을 주면서 1편은 임팩트있게 마무리됩니다. 바로 범인 지우로 추정되는 자의 독백입니다. 아주 짧은 단문으로 속도감있게 묘사하는 마지막 부분은 상당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다음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도록 해줍니다. '요런거 보여줄게. 혹시 2편 샀니? 안샀어? 이래도 안살꺼야?' 뭐 이런 느낌의 마무리입니다. (돈도 많이 벌었을 양반이..)

 

   3권으로 구성된 이야기지만 1편 만으로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생각할꺼리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독성도 뛰어나고 재미도 있습니다. 경찰소설에 관심이있거나 읽어보고 싶으신 분에게는 어쩌면 스트로베리 나이트 시리즈보다 더 쉽게,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을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벌써 2권을 100페이지 넘게 읽었습니다. 생업이 없다면 하루만에 다 읽었을 작품입니다. 앞으로 혼다 테츠야의 작품은 무조건 믿고 선택해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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