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월담
누쿠이 도쿠로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1. 신월(新月), 초승달 그리고 이야기...

 

누쿠이 도쿠로의 장편소설 신월담...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시인과 촌장"의 [새벽]이라는 곡이 계속 머리에 멤돌았습니다.

 

<새벽>

 

당신의 눈썹처럼 여윈 초생달

숲 사이로 지고

높은벽 밑둥아리에 붙어서

밤세워 울고난 새벽

 

높은벽... 높은벽... 높은벽...

높은벽... 높은벽...

높은벽 아래 밤새 울고난 새벽

 

 

  사랑이란 감정은 참으로 신묘(神妙)한 것인가 봅니다. 늘 한사람의 인생에 붙어서 불같이 살아갈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벽 밑둥아리에 붙어서 밤세워 울게도 만들기도 합니다. 사랑없는 인생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평한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의 감정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주는 원천입니다. 때로는 사랑의 대상이 사람이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특정 이성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희노애락을 겪게 되지요. 사랑의 모양새는 누구도 함부로 정의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함부로 말 할 수 있는 경우는 나의 일이 아닌 타인의 일일때 뿐인거 같습니다. 사랑이 바로 나의 이야기일때 전혀 다른 문제가 됩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모양새이면 좋으련만 사랑이란 정해진 형태로 다가오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세상사람들이 불륜이라고 부르는 모양이 될 때도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개인의 도덕성과 책임감이 발휘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믿지만 정해진 사회의 시선과 규칙을 모조리 압도할 만한 사랑이 찾아올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당사자의 결정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요? 이 모든 시작과 행복과 고통, 결말은 오롯이 당사자의 몫입니다.

 

  신월담의 주인공 고토 가즈코는 바로 기노우치 도루라는 남자를 만나 인생의 회전목마가 시작됩니다. 한없이 납짝 엎드려 웅크리고만 있던 그녀의 삶이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게 되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녀의 모든 사고와 행동과 판단의 기반은 기노우치 도루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사랑인 기노우치 도루라는 남자는 다정다감하고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데다 능력도 출중한 사람이지만 그의 애정관은 한 여자로서 가즈코를 행복하게 해 줄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끊없이 고통을 겪는 가즈코의 인생은 참으로 기구하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 상황 때문에 그녀는 움츠려 있던 태도를 서서히 버리고 인생이 바뀌는 도전을 하게 됩니다. 너무나 괴롭고 힘든 사랑일지라도 그로 인해 그녀의 인생이 변해가는 모습은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 

 

 

 

#2. 신월(月)담, 신월(越)담...

 

         "달이 없는 새로운 달. 신월의 밤을 홀로 걷기 시작했다. 외롭지 않았다. 이 길은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p557

 

  사쿠라 레이카라는 작가의 가면을 쓰고 있는 가즈코가 신월을 보았을때 외롭지 않았다고 고백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후로도 그녀의 외로움은 끝없이 계속되기만 합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라 외롭지 않다고 했던 다짐이 무색하기만 할 뿐입니다. 그녀의 인생이 신월에서 만월로 점점 채워져 가는 과정을 즐겁게 보았다고 하고 싶지만 저에게는 그저 그녀가 자신 앞에 놓여 있는 높이를 알 수 없는 높은 담에 막혀 허덕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저 담을 넘으려는 월(越)담의 끝없는 노력으로의 일환으로 비춰졌다는 뜻입니다.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담의 정체는 복합적입니다. 불륜이라고 할 만한 그녀의 사랑에 대한 사회의 저항이 담이 되기도 하고, 그녀 스스로 가지고 있던 끝을 알수 없는 자책과 웅크림의 태도가 담이 되기도 합니다. 결정적으로 그녀가 의지하고 사랑하는 존재인 기노우치는 드높기만 한 담입니다. 그녀는 끝없이 기노우치의 애정을 갈구하고 그의 인정을 받을 만한 존재가 되어 그를, 그의 사랑을 차지하고 싶습니다. 차지하는 것이 두려울 만큼 그녀에게 큰 존재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결국 기노우치라는 높은 담을 넘지 못하고 말지만 이 이야기의 말미에 그녀가 기노우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저 넘고 싶어하는 담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기노우치라는 존재가 그녀의 인생의 비바람과 햇볕을 막아주는 담이 되어줍니다. 또한, 세상의 공격과 비난과 오해에도 쓰러지지 않도록 기댈 수 있는 담이 되어줍니다. 다른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는 담이 되기도 합니다. 담은 그저 뛰어 넘는 용도만은 아닌 것입니다.

 

 

 

#3. 사쿠라 레이카, 소설가로 성장해가는 모습...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가슴 졸이면서 지켜본 부분은 사쿠라 레이카라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장해가는 가즈코의 모습이었습니다. 소설 속에 드러난 소설을 쓰게 된 동기, 초보작가의 고뇌와 마음가짐이 흥미로웠습니다. 작풍이 바뀌는 과정과 작품을 써가는 태도는 물론 인정받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아주 즐거웠습니다. 저에게 이 소설은 소설가의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었습니다. 그녀의 사랑 이야기는 꽤나 흥미롭고 특별한 것이었지만 제 관심사에서 한걸음 비켜나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전.. 여자가 아니니까요.. 라고 하기엔 남녀간의 차이 문제는 아니긴 하지만 말입니다.  

 

  제가 책을 열심히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한 7~8개월 전인거 같습니다. 그전까지도 책을 읽기는 했지만 소설을 읽었던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자기계발서나 심리학관련 서적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러다 소설을 읽게 되고 뜬금없이 소설가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멋질까? 뭐 이런 희한한 로망이 생겨버렸습니다. 이과를 나와 전자공학을 전공한 제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 극적인 변화의 가운데에 아내가 있습니다. 저에게 아내는 기노우치와 비슷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소설을 쓰는 즐거운 꿈은 초승달되어 만월할지 그믐달이 되어 사라질지 모르겠지만 그저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한없이 즐거운 일임은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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