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짓는 사람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1. 르포르타주 소설이라..

르포르타주 [reportage] : 보고기사(報告記事) 또는 기록문학

어원은 보고(report)이며 ;르포'로 줄여 쓰기도 하는데, 어떤 사회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가 아니라 보고자(reporter)가 자신의 식견을 배경으로 하여 심층취재하고, 대상의 사이드 뉴스나 에피소드를 포함시켜 종합적인 기사를 완성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니까 제가 이해하기로는 르포르타주라하면 다양한 취재에 의해 단편성이 아닌 종합적인 관점으로 만들어내는 종합적인 보고기사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소설이라는 장르는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문학양식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가장 의문스러웠던 점은 '르포르타주 소설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걸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 등장하는 기본적인 스토리인 책을 놓을 곳이 없어서 아내와 아이를 살해한 혐의가 있는 니토 도시미란 인물은 실존 인물인건지 논픽션에 도전했다는 소설속 화자의 멘트조차도 허구인건지가 궁금했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소설의 범주라면 전체가 다 허구라도 상관은 없는 것이니까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르포르타주 소설인 것인지 르포르타주 형식을 차용한 소설인 것인지가 궁금하더라는 것입니다. 누쿠이 도쿠로의 [미소짓는 사람]은 그렇게 읽어나갔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책이 르포르타주 소설인지 형식만 차용한 소설인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흥미롭게 읽었고, 읽는 과정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고, 읽고나서도 묵직한 무언가가 남는 임팩트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그거면 충분했습니다.
 

#2. 인간의 유형 나누기 

 

뜬금없는 고백을 하자면 저는 꽤나 오래전부터 인간의 유형을 나누고 분류하고 이해하는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너무 단순한 분류인 혈액형은 사실 큰 관심이 없었고 주로 성격유형검사인 MBTI, 보다 근본적인 인간의 기질을 이해하기 적당한 애니어그램, 주로 조직내의 행동양식을 분류하는 DISC, 역시 조직내에서의 리더십 스타일을 분류하는 칼라리더쉽 등등에 나름 세심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런 관심과 연관되어 심리한 관련 책도 상당히 많이 사고 읽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최근에는 좀 많아졌지만  방문자수가 100~200명 이하고 기껏 6개월 정도 활동한 제 블로그의 누적 방문자수가 29만명에 달하는 것도 사실 과거에 위에 나열한 성격유형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을 포스팅 해놓았을 때 방문자들 때문입니다. 나름 계기가 있어 몽땅 삭제했지만 말입니다. 재밌게도 그 당시에 저에게 전화해서 성격유형 검사를 받고 싶다고 하신 분들이 생각보다 꽤 많았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개인적인 흥미로 정리만 할 뿐 전문가가 아니라는 답을 드려야했었고요. 사람들이 생각보다 이런 것에 관심이 많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유형나누기는 단순한 것으로부터 인간의 근본적인 기질과 유형을 파악하는 것까지 다양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받아들이게 하는 유용한 툴이 됩니다. 제가 느낀 가장 큰 장점은 나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작업 중에 본인을 이해하고 타인과 비교하지 않음으로해서 행복한 인생의 기본 전제인 "자존"이 높아지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타인에 대해 너그러울 수 있다는 부차적인 장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잘못된 접근은 큰 위험을 수반하는데, 대표적인 폐해가 바로 타인을 이런 툴의 유형에 임의로 집어넣으려 한다는 점입니다. 하늘아래 똑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주 넓게 봤을때 좀더 비슷한 기질과 패턴을 가진 사람이 있을 뿐이지요. 그런데 이런 것들을 단편적으로 배우게 되면 '아, 저사람은 A유형이니까 저렇게 행동하는 걸꺼야. 틀림없어" 하고 단정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도 큰 폐해가 있습니다. '아, 난 원래 이런 유형이니까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야'하고 스스로를 방치하게 됩니다. 인격이나 가치관이 좀더 성숙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지요.

 

이 책 [미소짓는 사람]은 바로 이지점에 대해 고민거리를 던져줍니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아니라 고민거리만 던져줍니다. 이 소설의 훌륭한 점은 던지기만 한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을 짜증스러워할 독자들이 많을 거라는 점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결론지어 주어야 독자입장에서는 편안합니다. 이 책에서 지적한 대로 불안감이 다소 해소된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이 책에서 각자의 시선과 편견으로 타인을 단정짓는 것이  문제라고 던져놓고서 어떻게 화자가 이에 대한 결론을 딱 내려버리겠습니까? 스스로 그건 문제야 라고 하면서 그런 행동을 하는 바보같은 상황이 되지 않겠습니까?

 

 

#3.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는 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근본적인 불안감 


어제만 난독증(dyslexia)이란 용어를 두번이나 만났습니다. 한번은 제가, 다른 한번은 블로그 이웃 벨아미님에게서 말입니다. 문자 그대로의 뜻은 철자를 인지하지 못하는 증세를 말하는 것이지만 블로그상에서는 가벼운 의미로 덧글을 잘못 읽어 엉뚱한 답글을 다는 것 정도를 난독증이라고 우스개소리로 표현합니다. 특정한 글에 대해 잘못이해하고 엉뚱한 답을 다는 것은 많은 글을 대하는 블로그 상에선 단순 실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내가 보고싶은데로 보고 판단하고 마음 편해하는 한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이 예측불가일때 매우 불안해집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각자의 안전에 위협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문가의 입을 빌어 딱부러지는 해석과 결론을 얻으면 더 이상 불안해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도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결론은 상당한 왜곡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제가 판단받고 왜곡되어지는 대상이 된다면 끔직할 거 같습니다. 사실 성격상 '그러거나 말거나'하겠지만 특히 인격적으로 실체를 만나기 힘든 온라인 상에서의 이런 현상은 도를 넘어선지 오래입니다. [미소짓는 사람]을 통해 한번쯤은 깊이 고민해볼 문제입니다. 어쨌거나 저는 저의 정신건강을 위해 앞으로도 여전히 타인을 규정짓고 판단하는 짓을 지속할 예정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