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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식료품점
제임스 맥브라이드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8월
평점 :
미래지향의 신간 <하늘과 땅 식료품점>은 제임스 맥브라이드의 장편소설입니다. 시작부터 작가를 언급하는 것은 이 소설을 충분히 소화하기 위해서는 작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맥브라이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와 폴란드 출신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출신 자체가 흑인과 유대인의 혼혈이다 보니 미국에서는 가장 차별이 심한 집단의 교집합 즈음에 속해 있는 사람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유색인종들은 거의 대부분 정체성의 문제를 겪는 것 같습니다. 맥브라이드도 마찬가지로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의 구조적인 문제와 유색인들의 삶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메이징 브루클린>이 1960년대 뉴욕의 빈민가를 무대로 한 소설이라면 <하늘과 땅 식료품점>은 미국의 대공황 시대인 1930년대 펜실베이니아주 포츠 타운의 한 가상 마을 '치킨힐'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작과 유사하게 다양한 인종이 등장하고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시작해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 사회 전반의 문제까지 큰 틀에서 아우르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두 작품에서 보이는 맥브라이드의 시선과 태도는 거의 동일하게 느껴집니다.
한국 사회에도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 이주자의 지속 유입으로 다문화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인종차별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을 고려하면 이런 문제가 아예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적어도 우리가 함께 공감하고 이해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하늘과 땅 식료품점>은 오래전 미국 사회의 문제를 다룬 소설임에도 오늘날 우리 독자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일이 이 식료품 점을 중심으로 일어납니다. 소설 내 가장 극적인 사건 역시 하늘에 거주하는 백인 닥이 나타나면서 벌어집니다. "하늘과 땅 식료품점"은 서로 다른 배경과 문화와 환경 속에 살아가는 유색인종들이 어울리고 교류하며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는 허브입니다. 저자는 다양한 인종의 마을 사람들이 서로 돌보며 꾸역꾸역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입부에 이야기에 흥미를 더하기 위해 의문의 죽음에 대한 단초를 던지고 시작합니다.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더하면서 과거에 일어난 일을 파헤치는 과정에 의문을 풀어나가고자 하는 의도로 보입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 보면 도입부의 그 죽음을 까맣게 잊게 됩니다. 도입부 죽음의 의문에 대한 해결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누구도 도입부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결말부에 가서야 이 의문의 원인이 나오는데 제가 이미 그 도입부를 잊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의문의 사건을 배치했으면 중간중간 떡밥을 잘 뿌려서 긴장과 텐션을 유지하면서 결말부에 전말을 밝히면서 파괴력 있는 스토리가 완성되면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이게 뭐지? 그저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했고 대단한 의미는 없었다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허탈한 마음이 들게 됩니다. 이는 그다지 좋은 방식이 아닙니다. 소설적 장치로는 실패입니다. 워낙 도입부와 결말의 이 부분이 소설 내용에 미치는 영향이 없기 때문에 다행이지만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다행히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상당히 개성 있고 매력 있게 묘사됩니다. 각 캐릭터의 입장과 말과 행동이 다 납득이 가고 잘 이해됩니다. 그만큼 인물 설계가 상당히 좋습니다. 다만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해 이어지는 이야기가 그리 유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제 기억에 <어메이징 브루클린>에서는 이어지는 이야기들 간의 조직력이 더 쫀득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비슷한 스타일의 이야기라 상대적으로 신선한 느낌이 줄어서 아쉬운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읽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고, 생각할 것이 많았으며 나와 내 주위를 돌아보게 되는 소설이었습니다. 의미는 충분히 훌륭한 소설입니다. 잘 몰랐던 1930년대 미국 유색인종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미국 내 인종 갈등의 역사를 환기해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우리도 고민해야 할 문제가 펼쳐지고 있어 좋았던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