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토피아 - 엘리베이터 속의 아이
조영주 지음 / 요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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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토피아>는 조영주 작가의 신간 장편소설입니다. 작가의 취향과 대중의 취향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던 작가의 진폭이 최소화된 완성형 소설입니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심오한 주제 의식과 질문을 던지는 소설임에도 아무 생각 없이 정말 빠른 속도로 재미있게 읽기에 무리가 없습니다. 독자가 심각하게 보면 심각하게, 가볍게 보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기에 충분한 대중성 있는 소설입니다.


이번 작품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문장입니다. 유난히 간결하고 단순합니다. 긴 글을 읽는데 힘들어하는 독자들의 니드에 매우 부합하는 형태의 글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짧고 간결한 호흡으로 읽기 좋습니다. 


타임 루프 형식을 가져와 재미있는 소설을 써내려면 적어도 기존에 선보인 타임 루프 물의 전형적인 공식을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크로노토피아>속 타임 루프의 활용을 생각하면 작가가 이런 타임 루프 물의 기본 룰은 지키는 가운데 진부한 전형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흔적이 느껴집니다. 타임 루프와 멀티버스 개념은 지나치면 독자가 이해하기에 난해해질 수 있는데 적정성을 잘 지켰습니다.


<크로노토피아>는 후반부로 갈수록 삶이 무엇인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맞는 것인지, 이야기를 만들고 글로 남기는 행위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 방식이 상당히 세련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몇 가지 포인트가 되는 주제 질문이 스토리 진행과 캐릭터의 경험, 사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독자는 이런 형식을 통해 가르침이나 꼰대질로 느껴지지 않고 스스로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무시하고 넘어가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고민하고 답을 찾아낼 때 더욱 만족감이 넘치고 정신이 고양되는 법입니다. 좋은 소설을 읽는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데, 이 절차에 작가가 인위적으로 간섭하려 시도할 때 독자는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경우 독자는 책을 읽다가 집어던지게 되는 것입니다. <크로노토피아>는 나이 어린 주인공 소원을 등장시켜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소설 속 다양한 철학적 질문에 대해서도 약간의 모범 예시를 제시하는 수준에서 절제함으로써 독자들의 영역을 확보해 주고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소원은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반복한 임례와 함께 자신의 남다른 상황과 삶에 대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합니다. 그 과정에서 시지프스 신화, 파우스트, 이방인 등의 고전 소설을 레퍼런스 삼아 자신만의 이야기, 자기 소설을 쓰고 고쳐나갑니다. 이미 삶의 의미를 고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소설로 남겨둔 불멸의 고전들도 소원처럼 자신만의 경험의 변주를 담은 이야기를 남기는 과정에서 세상에 나온 것들입니다. 그 스토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공감을 얻고 감동을 주느냐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누구나 스토리를 창조하고 의미 부여를 해 나가는 존재들입니다.


작가가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차용한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고전적 삶의 의미를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각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인간의 경계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등의 문제는 누구나 항상 고민하고 각자 찾아나가야 할 인생의 큰 화두이자 테마입니다. <크로노토피아>는 부드럽고 먹기 좋은 껍질 속에 잘 응축된 속살이 돋보이는 소설입니다. 쉽게 재미있게 잘 읽히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소설을 만나보시려면 이 소설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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