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한자력 - 1일 1페이지, 삶의 무기가 되는 인생 한자
신동욱 지음 / 포르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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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직도 한자 공부가 유효한 이유


   원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한자 문화권입니다. 우리 국어사전에 순수 우리말보다 한자어로 된 명사의 비율이 훨씬 높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들 중 영어를 위시한 외래어도 많지만 한자가 그대로 명사로 굳어진 말들이 60%에 육박하고 한자어와 고유어를 결합한 비율까지 합치면 80% 웃돈다고도 합니다. 갑자기 한자어 명사 운운하며 한자를 배워야 한다고 우기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언젠가부터 우리가 사용하는 글에서 한자를 배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자를 너무 많이 사용하던 풍토가 한글로 바뀐 것은 매우 바람직합니다만, 뭐든 극단적이어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한자를 배우고 공부하는데도 상당한 장점이 있습니다. 아내가 중, 고등학교 학생들의 국어과 공부를 가르치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는데 깜짝 놀랄 수준으로 학생들이 한자 조어로 된 생활 단어의 뜻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험기간이 되면 특정 문제를 못 풀겠다고 질문이 오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쓰인 단어의 뜻을 몰라서 알려달라는 카톡이 오는 것이 현실입니다. 문제를 이해 못 해 풀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한글에 한자 조어가 엄청 많으니 한자를 알면 어휘력이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휘력이 좋아지면 표현력이 올라가겠지요. 표현력이 올라가면 모르는 단어를 습득하는 능력과 함께 표현을 다듬기 위해 따지면서 사고력까지 좋아지게 됩니다. 뭐든 잘 되는 게 생기면 그에 따라 덩달아 좋아지는 것이 생기고 그 덩달이 때문에 또 다른 것이 좋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됩니다. 적어도 언어에 있어서는 한자를 아느냐 모르냐에 따라 그 과정이 선순환이냐 악순환이냐의 기로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이쯤 되면 한자를 배우는 데 있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에 이르게 되는데, 고전적으로 한자 학습지를 받아보거나 학원에 가거나 영상을 통해 배우거나 책을 사서 공부하거나 등등의 선택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학생이 아닌 경우는 매일 정해진 분량의 공부를 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럴 때 포르체 출판사의 [어른의 한자력] 같은 책이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어른의 한자력]은 단순한 한자 교재와 다른 교양서입니다. 그러니 부담 없이 독서하는 느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읽다 보면 자연히 한자 공부가 병행되는 책입니다. 한자의 유래와 여러 뜻은 물론 저자의 경험담이나 사색의 결과를 재미있게 들려주기 때문에 비단 한자 자체나 내포하는 의미뿐 아니라 인생 공부도 동시에 되는 좋은 책입니다. 활용 방법에 따라 간단한 학습지 정도로만 활용할 수도 있고, 챕터마다 질문도 있어 폭넓은 사고까지 할 수 있는 알찬 책입니다. 




2. 꿈보다 해몽, 해석력이 인생을 좌우하는 이유


   얼마 전 독서 모임을 통해 노자의 도덕경을 읽었습니다. 도덕경은 짧은 내용의 책인데 도덕경에 대해 다룬 책은 너무 많고, 해석서마다 같은 책 같은 문장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 다른 내용들이 적혀 있어 당황스러웠습니다. 한자어의 특성상 글자 하나하나의 뜻을 어떻게 보느냐, 앞뒤로 어떻게 붙이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문장이 되기도 하고 다른 뜻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해석자의 역량과 배경, 철학과 가치관에 따라 하나의 문장이 다양하게 해석되고 유통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러니 내가 아는 도덕경과 니가 아는 도덕경이 서로 사맛디 아니하여 서로 아는 척 홀빼이셔도 대화 자체가 안 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여러 사람이 도덕경의 가르침을 하늘과 같이 귀히 여기고 살아간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삶의 모습은 제각각 천차만별이 될 수도 있다니 이 어찌 황당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모든 참사는 한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한자를 모르면 누가 되었건 먼저 해석해 놓은 사람의 해석을 수동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 해석이 정확한지, 원본의 의미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별 뜻도 없는 짧은 문장에 수많은 버전의 의미 부여가 발생하고 여기에 휘둘리게 됩니다. 오랜 시간 많은 독자에 의해 필터가 되기는 하지만 어차피 원본을 정확히 해석하는 능력이 없다면 아쉽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어른의 한자력]에는 70개가 넘는 챕터가 있습니다. 직장과 사람들 사이에서 살며 겪는 다양한 순간들에 대해 흔히 만나게 되는 기본 단어 중심으로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이 에세이 형식의 설명글 자체가 진솔하고 공감 가는 글이어서 계속 읽어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필력 자체가 좋아서 한 챕터 한 챕터에 삶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그냥 끄덕이며 읽다 보면 잘 못 알고 있던 한자의 뜻과 용례에 대해 배우게 되고,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게 되며 적용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자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엿볼 수도 있어 배울 점이 많습니다. 


   저자가 한자를 어떤 태도로 대하고 삶의 지혜로 적용해 나가는지 읽고 있으면 정말 꿈보다 해몽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같은 한자를 그저 교과서적으로 배우고 익히는데 그치지 않고 실생활로 가져와 의미 부여를 하고 자신에게 맞도록 해석하는 과정이 너무 이상적입니다. 책 여기저기 너무 마크를 많이 해서 어디를 인용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글들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3. 성패를 쉽게 판단하지 말고 꾸준히 해야 하는 이유


   [어른의 한자력]은 애초에 책을 쓰고자 기획해 짜낸 글이 아닙니다. 읽다 보면 상당히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억지로 단시간에 뽑아낸 글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저자 역시 에필로그를 통해 한자를 다양한 시각으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깨달았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한자를 해석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고 매일 의미를 사색해 꽤 오랜 기간 동안 쓴 글이 쌓여 원고가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오랜 기간 공부를 해서 내공이 쌓인 저자가 짧은 시간 안에 글을 쏟아내는 것도 역시나 결과적으로 비슷하기는 하겠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결과물 만이 아니라 글을 하나하나 써온 과정일 것입니다. 애초에 이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완성된 책 한 권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출간이 될지도 모호한 상태였겠지요. 그러나 매일매일 의미 있는 일을 좋아서 스스로 하고 결과물을 하나하나 쌓아나갔던 축적의 시간이 분명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책은 자기 계발서처럼 꾸준히 공부를 하라거나, 노력을 쌓아가라는 조언을 쏟아내는 책이 아니지만 신기하게도 이 책 자체가 인생의 태도에 대한 조언이 됩니다. 작은 시도에서 출발해 주어진 시간을 자신만의 지적 자산으로 지어내 이룬 결과물인 것입니다. 저자에게 이 책이 기적 같은 일이었듯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비슷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 나와 당신이 무엇을 하든 꾸준히 결과를 염두에 두지만 결코 지치지 않고 한 챕터 한 챕터 써 나가는 일을 꾸준히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어른의 한자력]이라는 결과물을 읽어나가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이런 교훈들이 여러분의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한자를 전혀 몰라서 따로 공부하기가 부담스러운 분들이나 한자 자체가 불편해서 이 책의 제목만 읽어도 경기가 이는 분이 계시다면 절대로 이 책 [어른의 한자력]을 읽어야 될 분들입니다. 에세이 같은 본문만 읽어나가도 좋고, 챕터마다 등장하는 글자를 배우고 따라 써가며 읽으셔도 좋고, 뒤에 따라오는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할 수 있는 질문에 답을 해나가면서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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