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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부터 지적이고 우아하게 - 품위 있는 삶을 위하여
신미경 지음 / 포르체 / 2022년 10월
평점 :
1. 네가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야?
며칠 전 동네에서 오랜만에 친구들과 호프집에서 맥주 한 잔과 함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만남을 주최했던 친구는 소규모 회사에서 시작해 300여 명 이상의 직원을 둔 기업의 핵심 간부 직원으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스타트업에 몸담으면서 개인적인 일도 함께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금전적으로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다 보니 직장 생활에 전전긍긍하지는 않지만 대표부터 구성원 모두 본인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과 함께 있다 보니 자유분방한 회사 문화에 익숙하지도 않고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기에 애매한 포지션에 있어 고민이 많다고 합니다.
40대 중반이 고민할 만한 회사 생활과 인생의 방향에 대해 여러모로 의견을 나누다가 이 친구가 갑자기 저에게 "너는 언제 가장 행복하고 기대되냐?"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순간 뇌가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가 일상 중에 정말 행복하다고 느끼는 일이 있었던가?' 쉽사리 대답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최근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면 아내와 함께 한강변을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아닐까 싶어서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계속 머릿속에서 '내가 정말 행복한 순간이 있었던가?'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많지 않고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유형이라면 인간관계가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40대 중반이 되면 가족이나 직장 생활이 아닌 이상 대부분 취미를 함께 하는 동호회 분들과의 관계 정도가 다 일 테고, 열정적으로 에너지를 쏟을 만한 일을 만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형국이면 내 인생에 대한 고민이 점점 깊어집니다.
포르체의 신간 [마흔부터 지적이고 우아하게]는 이런 고민을 가진 분들이 읽기에 딱 적당한 신미경 저자의 일상 에세이입니다. 일상 에세이지만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이 책은 더 나은 일상을 위한 저자의 치열한 탐구와 실천 철학이 돋보입니다. 저자의 글을 통해 느껴지는 삶의 품위와 매력이 범상치 않습니다. 읽다 보면 내 삶에 적용해 보고 돌아보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는 책입니다.
2. 무엇이 인간의 삶을 품위 있게 해 주는가?
마흔의 중반을 지나고 있는 저에게 [마흔부터 지적이고 우아하게]라는 제목은 무척 흥미를 끌면서도 부담스럽습니다. 한없이 가볍고 아이 같은 삶을 살고 싶은 저에게 저자가 던지는 주제의식이 뜨끔하게 다가옵니다. '마흔이 넘으면 지적이고 우아해져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한편으로는 지적이고 우아한 삶을 살게 되면 정말 멋지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의 가훈이 "품위 있게 살자"였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됩니다.
[마흔부터 지적이고 우아하게]는 저자의 다양한 취미의 영역과 취미 활동을 대하는 디테일을 통해 일상에 스며드는 순간순간을 지적이고 우아하게 만드는 비법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취미뿐 아니라 독서와 공부를 통해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떤 상황이나 장소에서 적절한 행동을 하고, 대화할 때 고상하고 품위 있는 행동을 하게 됨으로써 우아함을 습득한다고 합니다.
독서나 공부도 우리의 우아함 지수를 높여주는 매우 좋은 방법이지만 저자는 특히 우리를 우아하게 만들어 주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취미'라고 주장합니다. 다양한 취미 생활을 통해 교양인이 되겠다는 강력한 집념이야말로 우리를 품격 덩어리로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책을 통해 만나는 저자의 취미 활동은 강력한 덕질에 가까운 치열함이 절절하게 드러납니다. 이게 과연 취미를 즐기는 인간의 모습인가 싶을 정도로 하나를 '취미'라는 카테고리에 넣으면 불도저처럼 직진해 '취미'를 일처럼 후벼파는 독한 모습을 보입니다. 뭐든 대충대충 하는 저로서는 혀를 내두르다 못해 혓바닥이 뽑힐 지경입니다.
이 우아함의 영역은 '나이 듦'이라는 관점에서도 상당히 매우 굉장히 엄청 심하게 필요한 부분입니다. 어린 시절 교양 없고 매너 없는 어른들을 얼마나 혐오하고 욕해 왔던가를 생각하면 40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 지금 저의 행동을 떠올리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일정 수준의 교양 정도는 갖추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판단 기준이라는 것은 모두 다른 것이다 보니 두려움에 자기검열을 하게 됩니다.
마흔을 넘어서면 체력도 떨어지고 열정도 사그라들게 되는 지점이 옵니다. 백세 인생에서 마흔 즈음은 한창 더 달려야 할 때이지만 호르몬 변화도 일어나고 신체적인 하향 변화를 감안할 때 마음을 단디 잡아먹지 않고서는 스르르 널브러지기 쉬운 시기인 것입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마음 챙김이 아니겠습니까? 저자는 다양한 탐구를 통해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히 마음을 챙길 뿐 아니라 자기만의 취향이 살아있는 삶을 살기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3. 스페셜 한 제네럴리스트가 될 수는 없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로써 헷갈리는 부분은 저자의 기질입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정말 지독하게 한 우물을 파들어가는 스페셜리스트의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취미 영역에서 스페셜리스트가 전문가에 비해 얼마나 스페셜할까를 생각하면 한계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취미'라는 영역에서 단순히 즐기는 수준을 넘어서면 상대적으로 스페셜 한 위치에 올라가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덕후가 괜히 생긴 게 아닙니다. 어떤 영역에서는 덕후가 전문가를 아득하게 넘어서는 일도 종종 일어납니다.
저자에게 독서는 기본 중에 기본일 것입니다. 저자는 책이나 글을 '집요하게' 읽는 훈련을 합니다. 회사원으로서 바보 같기 싫어 숫자를 공부하고 엑셀을 다룹니다. 금융 문맹이 되기 싫어 새벽 4시에 일어나 미국 주식을 살펴보고 경제뉴스를 챙겨봅니다. 영어 공부를 위해 매일 아침 네이버 영어 회화를 듣고 말하며 퀴즈를 풀고 점심시간에는 모닝 브루 뉴스레터를 받아보며 자투리 시간에 네이버 단어장을 복기하고 퀴즈도 풉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칼럼 하나를 한 달 내에 필사하고 해석하고 읽습니다. 고미술과 시를 읽기 위해 문자에 익숙해지려 매일 5분 한자로 한자 공부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적 자극을 위해 여기저기 많은 곳을 다닙니다. 관심 있는 모든 기관이나 단체의 소셜미디어를 구독하고, 뉴스레터를 받아 보며 강연과 세미나 정보를 챙기고 공연과 전시도 수시로 살펴봅니다. 요리나 차 수업 등 원 데이 클래스가 있는지 확인하고 문화 행사가 없는지도 늘 찾아봅니다. "도시가 부여하는 지적 기회를 최대한 누리고 살기를, 정신적인 풍요로 가득 찰 배움을 기대하며 살아가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거의 사기 캐릭터입니다. 하루가 48시간을 넘어 모자라는 시간은 "시간과 정신의 방"에서 보내다가 나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분은 사실 외계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본인이 책 속에 설명한 여러 취미 활동과 배움, 독서와 문화생활 등을 다 하려면 몸이 서너 개 이상으로 분신 사바가 되어야 될 거 같습니다. 어쩌면 인공지능 클론을 여러 개 활용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냥 쉬는 날에도 아내와 음식 하고 청소하고 고양이 돌보고 아이들 챙기고 중간중간에 잠시 드러눕고 유튜브 좀 보고하다 보면 '엇, 하루가 다 갔네..' 이런 정도의 패턴입니다. 언제 영어 공부에 숫자 공부, 독서에 미국 주식 공부에 한자 공부와 뉴스레터 읽기와 전시 공연 보고 원 데이 클래스에 가며 강연이나 세미나에 참석한다는 말입니까?
저자는 본인이 언급한 분야 하나하나에 진심이고 누구보다 열심입니다. 그러면서 어디 가도 꿀리지 않을 정도의 교양 수준을 확보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야가 엄청 미친 듯이 드럽게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페셜하면서도 제너럴 한 스페셜 제너럴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이 책 어디에도 스스로 자랑하는 듯한 뉘앙스는 눈곱만큼도 없지만 독자로써 읽다 보면 뭔가 지는 듯하면서 부러움이 이는 것입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지만 부럽습니다. 아마 자랑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저자가 지적이고 우아한 품격을 갖추고 있는 인간이고 그렇기에 그의 글 또한 우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단 마흔 즈음에 와 있는 분이 아니더라도 이 미치도록 열심히 살면서도 평안해 보이는 다중적 태도를 가지고 남들보다 특별한 스페셜 제너럴리스트의 모습을 완성해가고 있는 저자의 글을 읽으신다면 우아하고 품격 있는 삶에 이르는 길이 훤히 보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힌트는 분명 얻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마흔부터 지적이고 우아하게]를 편안한 마음으로 일독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아이고 배 아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