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비 - 금오신화 을집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9
조영주 지음 / 폴앤니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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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를 바탕으로 한 메타 픽션 로맨스의 매력


추리소설가로 유명한 조영주 작가의 신간 <비와 비 - 금오신화 을집>은 조선 성종 시대를 배경으로 한 메타 픽션 로맨스입니다. 혹자는 조영주 작가가 역사물에 로맨스를 썼다고 하면 의아해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조영주 작가는 과거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상상력을 더한 소설에 이미 능숙해 있는 작가입니다. 저자의 초창기 소설 <홍즈가 보낸 편지> 같은 작품은 역사를 바탕으로 인문학적 통찰은 물론 미스터리적 상상력을 가미한 훌륭한 소설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역사소설이 독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이미 일어나 알고 있는 사실을 기반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독자들이 생각지 못했던 독특한 상상력과 설정이 자리 잡으면 익숙하지만 생소하고 예상 가능하지만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작가들이 시도하는 역사 소설이 항상 성공적인 반응을 불러오는 것은 아닙니다. 익숙함과 낯섬 사이, 그 적정 비율을 찾는데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스토리가 너무 진부하거나 과하면 독자들의 외면을 받기 십상입니다. 익숙한 장르가 위험한 이유는 독자들이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조영주 작가의 <비와 비>는 역사의 토대와 픽션의 황금비율이 거의 완벽하게 지켜진 소설입니다.


좀 더 세심하게 따지면 픽션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좀 높아 독자입장에서 헤깔리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작가의 유려한 필력에 추리소설적 기법이 활용되면서 단점보다는 장점이 극대화되는 방식으로 구현되었습니다. 저자가 로맨스에 강한 이유는 캐릭터의 대화는 물론 내면 묘사가 워낙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자의 장점에 철저한 사료조사와 검증을 거쳐 훌륭한 메타 픽션 역사 로맨스가 탄생한 것입니다.




2. 역사 속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한 소설


<비와 비>는 역사속 인물 박비와 허구의 인물 이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한순간을 잘 캐치해 스토리 진행이 생동감 넘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의 매력은 중심인물인 "이비"의 캐릭터 자체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매력도는 사실 소설의 재미와 큰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이비'는 당시 사회의 법도나 풍속에 부합되지 않는 인물입니다. 통통 튀는 매력의 밝고 예쁜 그녀는 사회적 억압에 구애받지 않는 인물입니다. 유교적 예절이 엄중하던 그 당시에 머리를 풀어 헤치고 흰색 속옷만 입고 버선발로 말을 타고 달려나가는 그녀의 모습은 소설의 초반부터 독자에게 해방감을 줌과 동시에 무슨 일이건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감을 동시에 부여합니다. 독자에게 이런 감정을 줄 수 있다면 일단 소설 속으로 붙잡아두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저자가 소설을 창작할 때에는 역사적 사실과 픽션 사이의 고증에 조심스럽게 접근을 했을 거라 짐작됩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그보다 시원하게 막 나가는 주인공 '이비'의 매력만으로도 소설을 하드캐리 하는 면이 있어 역사 소설임에도 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비'라는 캐릭터 자체가 지극히 소설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있었을 법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마음 편히 소설을 읽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야기가 전개 됨에 따라 '이비'는 점점 더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하기보다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스스로 '나'를 찾아나가는 전형적인 성장소설형 모습입니다. 이런 주체적 인물의 모습과 태도는 시대를 초월해 어디에 내놔도 좋을 특징적인 모습입니다. 여기에 추리소설적 반전이라는 흥미로운 기법이 더해지면 소설 전체를 통해 '이비'라는 인물이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렇기에 더욱 캐릭터에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어느 것에도 '나'의 진정한 의미는 없었다. 이비는 유랑극단을 위해, 엄마를 위해, 조부를 위해 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하늘로 날아오르며 깨달았다. 나는 그저, 태어났다. 단지 이렇듯 웃고, 재주넘고, 하늘을 보고, 또 사랑하는 이를 보기 위해 태어났다. 사람이 사는 이유는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때문에 이비는 행복했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 어느 때보다 멋지게 공중을 돌 수 있었다.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한없이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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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흥미로운 장치가 많은 웰메이드 소설



이 소설을 단순히 역사 로맨스 소설이라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느낌이 많습니다. 소설의 진행 중 다양한 한시가 소개되고 있고 내용 전개에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챕터의 소제목으로도 활용되고 있어 통상 한시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요소가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시. 알. 못'이지만 문맥에 어울리는 한시가 요소요소에 잘 활용되어 있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 작품은 2015년도에 <몽유 도원기>라는 제목으로 예스24 전자북으로 출간되었던 작품입니다. 역사 로맨스에 큰 흥미가 없던 때라 제대로 안 읽어봐서 <비와 비>와 완전히 같은 내용인지는 모르겠으나(물론 읽었다 한들 지금까지 디테일하게 기억할리도 없지만) 인물과 설정, 스토리 등이 동일한 것 같습니다. 당시와 크게 달라진 부분은 친절하게 주석이 달려있다는 점입니다. 역사적인 상식이 부족한 저에게 주석의 존재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소설을 읽으시면서 주석을 활용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다양한 작품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점도 이 소설의 큰 장점이자 특징입니다. 몽유도원도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단순히 그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삼절이라 하여 발문, 찬시, 그림의 세 가지가 어우러져 있다는 점을 알게 된 것 자체가 큰 기쁨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단순 상식으로만 알고 있던 금오신화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기고 원문을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도 긍정적 효과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시대가 다른 소설을 읽다 보면 항상 느끼지만 복식이나 물건 등의 명칭이 생소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명칭들도 생소한 것들이 꽤나 있었습니다. 검색 엔진으로 찾아서 공부하면서 읽었는데 이 과정이 재미있었습니다. 때로는 '늘 보던 건데 이런 이름이었다니?' 하며 신기해하기도 하고, '완전 처음 듣는 이름인데?'하며 의아해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럴 때마다 우리 역사 속 전통에 대해 어지간히도 무지하다는 것을 반성하게 됩니다.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서로 닮은 인물들이 등장하거나 다른 인물로 착각해서 발생하는 일들이 소설 전반에 종종 등장합니다. 사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로 국한하면 반칙과도 같은 설정이기는 한데, 누가 봐도 주 장르는 로맨스인 만큼 흥미요소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좀 의문인 것은 생김새는 정말 비슷할 수도 있으나 목소리나 어투는 조금만 달라도 눈치채기 마련인데 그 부분이 현실적이지는 않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편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다 보니 이 한편으로 끝내기엔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와 비의 한 인물 박비의 경우는 무술의 달인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로맨스 소설이다 보니 이비를 구하는 상황 외에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메인 캐릭터는 이비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박비가 실존 인물이기는 하지만, 박비의 관점에서 활약하는 활극 소설이 추가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미스터리가 가미된 매력적인 역사 소설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신선하면서도 흥미롭게 읽으시기 좋습니다. 장르소설의 미덕인 익숙함과 역간의 신선함이 잘 발휘된 웰 메이드 소설입니다.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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