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러티
콜린 후버 지음, 민지현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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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밌다.


콜린 후버의 신간 "베러티"는 여러 가지 면에서 굉장한 소설입니다. 근래 이렇게 재미있게 읽은 책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 "읽는 재미"라고 한다면 미덕이 덕지덕지 붙은 소설입니다. 다른 수식어가 불필요한 최고의 장르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독한 맛이라 자극적이고 지속적인 긴장감을 원하시는 독자들에게는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소설의 "재미"라는 요소는 독자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가독성 있는 빠른 전개를 가장 중요시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캐릭터의 심리묘사를 최고로 치기도 합니다. 때로는 플롯이 참신하거나 기승전결이 확실한 것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죠. 장르소설에서는 짜릿한 반전을 최고로 여기는 분들도 많습니다. 소설 '베러티'는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골고루 다 만족시키고 있습니다.


콜린 후버의 이력을 생각하면 이 작가의 기본 베이스는 "로맨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서인지 자극적이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스릴러적 스토리의 바탕에 로맨스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스릴러 특유의 끝을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긴장감이 계속 고조되는 구성에 로맨스가 탄탄하게 가미되다 보니 매우 이상적인 소설이 탄생했습니다. 그러므로 인물 간의 애정 관계에 주목하면 전체적인 사안을 잘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을 독한 맛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소설의 시작부터 자극적인 사고가 발생하고 등장인물이 죽어나가는 장면들이 묘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첫 장면이라 얼떨결에 넘어갔지만 생각해 보면 꽤나 인상을 찌푸릴만한 잔혹한 사고입니다. 시작부터 피가 튀고 흥건한 것이 이후 벌어질 사건을 암시하는 듯한 방향 키로 작용합니다. 이 장면에서 이 소설이 얼마나 독하게 진행될지 예측을 했어야 합니다.


물론 잔혹한 장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소설의 중반 이후로는 상당히 수위가 높은 애정행각을 묘사하는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이런 부분도 순한 맛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는 약간 힘든 요소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인간관계의 깊은 내면을 표현하기에 좋은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거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니요?'라고 생각했다가도 말미의 대 반전을 접하고 나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납득할 만한 사연이 있으니 그 또한 소설의 재미를 더하는 큰 요소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 플롯이 훌륭하다.

이 소설은 배경이나 인물, 사건 전개 등이 매우 완성도가 높습니다. 어느 하나 나무랄 것이 없습니다. 처음 계약이 진행되는 사무실 장면에서부터 주인공 '로웬'의 집, 주요 무대인 '베러티'의 집 등이 이어지면서 일관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저택 내 공간에서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주인공 '로웬'의 입장에서, '베러티'의 입장에서, 남편 '제레미'의 입장에서 볼 때가 다 다르면서도 묘하게 이어져 있어 입체적입니다. 여기에 전신 마비의 '베러티'를 돌보기 위해 집으로 오는 간호사도 뭔가 있는 뉘앙스를 풍기고 남은 아이의 시선이나 행동도 남다르기 때문에 어느 하나 그냥저냥 넘어갈 수 없는 긴장감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스토리 자체가 흥미로운 요소가 많습니다. 베스트셀러 시리즈 소설을 쓰고 있는 인기 작가 '베러티'가 사고를 당하면서 남편 '제레미'는 무명의 소설가 '로웬'에게 공동 집필을 의뢰합니다. 사실상 무명의 소설가인 주인공이 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혼자 써야 하는 상황입니다. 주인공은 금전적인 문제 때문이라도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습니다. 또한 계약 전에 이미 의뢰인인 '제레미'와 섬씽이 있었고 더욱 거절하기 어려운 장치로 작용합니다.


기존 작가의 소설을 이어써야 한다는 설정은 자연스럽게 기존 작가인 '베러티'의 자료를 보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가도록 강제합니다. 크게 성공한 작가라는 설정이므로 다양한 사건을 풀어내기 좋은 대저택으로 설정해도 자연스럽습니다. 첫 만남부터 묘한 기류를 보인 주인공 '로웬'과 남편 '제레미', 뭔가 비밀을 감춘 듯한 '베러티' 사이의 긴장감 넘치는 하루하루가 이 소설의 재미를 더합니다.


이어지는 스토리 어디에도 부자연스럽거나 억지스러운 부분 없이 물 흐르듯 흘러갑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흐름임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을 하나하나 접하는 독자는 지속적인 불안과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상황에 처합니다. 그렇다고 읽기가 싫거나 싫증이 나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오히려 계속 증폭됩니다.


주인공 '로웬'의 심리가 불안정하고 몇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독자에게 의문을 더하게 하면서 더 집중해서 읽게 합니다. '베러티'의 존재 자체도 궁금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어느 시점을 지나면 등장인물 누구도 일방적인 신뢰를 주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독자의 불안과 긴장감을 지속하기에 더없이 좋은 지점인데, 여기에 저자의 탁월한 문장과 묘사가 더 해지니 정신 차리기 어렵습니다.


어느 정도 삶을 살아보고 이런 소설을 접하게 되니 각 등장인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소설 같다기보다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고, 어디서 건 상황은 차이가 있을지라도 일어날 만한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마냥 응원하기도 어렵고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다 보니 독자로써 입장이 난처해지는 지점도 있습니다. 서스펜스를 놓칠 수 없는 이야기가 이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따지고 보면 등장인물 그 누구도 악의를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아이러니까지 믹스되면 전체적인 플롯과 구조가 얼마나 훌륭한지 감탄하게 됩니다.




3. 진실은 어디에 있나?

근래 들어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공포영화를 꼽으라면 나홍진 감독의 '곡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영화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유는 영화 내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기분 나쁜 긴장감과 영화가 끝나도 명확하게 알 수 없는 해석의 여지 때문일 것입니다.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달라지는 해석으로 인해 관객들이 장외에서 설전이 벌어지기도 하고, 수많은 리뷰와 해석 글이 대립하기도 하면서 논란을 지속했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최광희 영화 평론가는 '곡성' 이후로 국내 호러 영화에서 눈에 띄는 작품이 없다고 평하면서 영화를 관람한 후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 소설 "베러티"는 매우 훌륭한 소설입니다. 소설가 '베러티'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 주인공 '로웬'의 시선에서 하나 둘 밝혀지며 전말을 드러내게 됩니다만 '로웬'의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것이 차츰 밝혀지며 독자들에게 혼란을 줍니다. 사건을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키인 '베러티'의 자서전을 근거로 모든 상황을 해석한 이야기가 일단락되고 나서, 독자들은 놀라운 대반전을 접하게 되는데, 이쯤 되면 도대체 뭐가 소설 속 진실인지 점점 더 혼란스럽습니다.


장르 소설의 미덕 중 하나는 결말 부분에서 그동안 쌓아왔던 떡밥을 완벽하게 회수하며 "범인은 바로 너야!!"라고 깔끔하게 똑떨어지는 마무리로 독자의 속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는 것입니다. 물론 찜찜하게 가슴 시린 사회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회파 소설도 있겠습니다만, 대체로 많은 소설은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며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베러티'는 장르적 문법을 파괴하는 작품입니다. 끝이 나도 끝이 난 것 같지 않은 찜찜함과 혼란감을 그대로 유지하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나름 명확한 해석을 하게 되었지만, 그 해석 또한 다른 독자와 전혀 다를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에 책을 다 읽고 나도 또 생각나고 생각나는 소설입니다. 수많은 독자가 감상을 달고, 리뷰를 쓰게 만드는 힘이 있는 스토리입니다. 이런 스토리의 힘으로 인해 입소문을 타고 아마존 차트를 역주행해 350만 부 신화를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잘 짜인 스릴러 소설을 원하시는 독자님들이나 인간의 깊숙한 내면의 솔직한 욕구와 애정 문제에 직면해 보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무척 흥미롭고 만족스럽게 읽으실 수 있는 정말 탁월하고 좋은 소설입니다. 특별히 바쁘신 일이 없으신 분들이라면 꼭 시간을 내서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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