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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도시 ㅣ SG컬렉션 1
정명섭 지음 / Storehouse / 2020년 11월
평점 :

1. 분단국가 속 오월동주, 개성공단 살인사건...
정명섭 작가의 신간 장편소설 [제3도시]는 현재는 폐쇄된 개성공단이 재개되었다는 가정하에 일어나는 일을 그린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입니다. 원래 교보문고 스토리 업을 통해 2017년 e Book으로 만 발표되었던 책이 스토어 하우스 출판사를 통해 SG 컬렉션 첫 번째 책으로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최근 개성공단 폐쇄 전 집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르소설에서 직접적으로 남, 북한의 문제를 다루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즐겁게 읽는 행위라는 기본 목적을 이루기 어려운 예민한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장강명 작가가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라는 장편 소설을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의 경우는 이미 통일이 된 이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배경으로 하드코어 한 액션 미스터리를 썼다면, 정명섭 작가의 [제3도시]는 분단 상황 속에서도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오월동주 하는 공간인 개성공단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평화적 경제 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이기는 하지만 막상 내용을 들여다보면 매우 특수하고 복합적인 공간입니다. 그 속에서는 블랙박스나 CCTV를 설치할 수도 없고, 그 흔한 휴대폰도 소지할 수 없습니다. 장르소설의 입장에서 본다면 완벽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명섭 작가 같은 분이 이런 호재를 그냥 넘길 리가 없습니다. 이런 특수한 공간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면 아무래도 현대적인 방식의 사건 해결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고, 미스터리적 요소는 한층 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제3도시]는 개성공단의 특수성을 소설적 재미로 극대화한 훌륭한 장르소설입니다.
2. 긴장과 일상의 묘한 경계점에 선 개성공단 사람들...
정명섭 작가는 수많은 소설을 쓰면서 독특한 설정을 자주 사용해왔습니다. [제3도시]의 경우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만한 소재와 설정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개성공단에 직접 들어가 본 사람이 극히 드문 만큼 대다수의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호기심을 가지기도 하고,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궁금증이 풀리기도 합니다.
개성공단에 함께 일하는 남과 북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남한 측은 인건비를 비롯한 다양한 부분의 혜택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사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북한측은 체제의 폐쇄성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달러를 벌어들이고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됩니다. 내부적으로도 다르지만 외부적으로도 존재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세력들이 꽤나 많기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경우 내부적 사정과 상관없이 폐쇄될 위험이 상존합니다.
이런 살얼음판 같은 공간인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 공장, 그 속에 발생하는 자재와 제품의 불법 유출 의혹, 이를 해결하기 위한 주인공의 방북과 거의 동시에 갑작스러운 남한 측 인물이 살해당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남한 방식으로 사고조사나 처리를 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북한 역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내에 주인공은 이 사건을 해결해야 하고 뜻하지 않게 북한과 공조하기도 하면서 감춰진 이면의 진실을 파헤치게 됩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생소한 공간과 환경이기 때문에 이런 특수성에 대한 설명이 장르소설의 생명인 스피디한 진행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이런 위험요소를 능숙하게 피해 가며 설명할 부분을 꼼꼼히 다 하면서도 가독성 넘치게 잘 처리해내고 있습니다. 남, 북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다양한 문제와 긴장감 효과적으로 잘 풀어내기만 하면 무조건 재미있는 소설이 될 수 있는 좋은 지점이라고 생각했는데, 근래 읽은 어떤 소설보다 가독성이 좋고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3. 매력적인 캐릭터가 빛나는 탐정소설
아무리 배경이 독특하고 좋아도 그 속에 살아움직이는 캐릭터가 없으면 그저 그런 심심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잭 리처를 연상시키는 배경을 지닌 헌병 수사관 출신 탐정 강민규는 헌병 수사관 시절의 경험을 잘 활용해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갑니다. 잭 리처 같은 파괴적이고 강렬한 액션신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오로지 머리와 경험으로만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혹시라도 강민규가 등장하는 다른 작품이 발표된다면 꼭 몸의 대화를 진하게 하는 모습도 보고 싶어집니다.
강민규의 카운터 파트너 역할은 북한 호위총국 소좌 오재민이 맡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위를 효과적으로 잘 이용하며 실질적인 뒤처리를 맡으며 카리스마를 뽐냅니다. 이 두 사람이 상호 경계와 협력을 오가며 사건을 풀어나갑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바탕으로 상상도 못했던 결말의 대 반전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건이 전개됨에 따라 정체를 숨기거나 이해관계가 얽힌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생명력 있는 이들 캐릭터의 움직임을 통해 독자는 미스터리한 사건의 발생과 결말을 납득하게 됩니다. 캐릭터 각자의 이해가 얽힌 행동과 대화를 통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는 방식이 자못 흥미진진합니다.
정명섭 작가는 이번 소설을 통해 장르적 재미를 선사함은 물론 분단 현실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그 어떤 당면적 선언이나 교훈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독자로 하여금 남북의 문제와 민족문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만약 개성공단에서 사건이 발생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대화하고 발전적으로 해결할 것인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제3도시]는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살린 훌륭한 장르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이 잘 안 읽히거나 독서 무기력증에 빠진 분이 계시다면 [제3도시]로 소설 읽기의 재미를 다시 한번 느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