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 만들어지고, 유행하고, 사라질 말들의 이야기
금정연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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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국룰이 된 세상! ‘손절하지 않고 버티면 좋은 날이 올까? 줄임말이나 신조어, 유행어가 일상을 점령한 지 오래다. 이 책은 이미 일상 언어로 자리 잡은 말들을 통해 왜 특정 시기에 그 단어가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쓰임이 우리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갈피를 심층적으로 풀어낸다.

 

말에는 분명 힘이 있다. 동시대의 초상을 적확하게 반영하며 살아남은 말들은 우리 사고에도 영향을 끼친다. 일례로 가성비가 유행한 후에는 소비자들은 전보다 더 꼼꼼하게 가격 대 성능을 따져보게 되었다. ‘많관부는 현대인의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단어다. 좋아요, 알람, 구독, 댓글이 곧 돈으로 이어지고 마케팅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는 인사말은 어쩌면 너무 당연할지 모른다.

 

신조어와 유행어의 등장 및 변화는 사회적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영국의 전설적 밴드 더후(The Who)가 노래한 <나는 플라스틱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는 바다를 건너 금수저흙수저를 낳았다. 부모의 재산에 따라 자식의 경제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21세기 수저계급론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 것이라는 비관을 키운다.

틀딱’, ‘맘충’, ‘노키즈존’, ‘한남등의 단어가 들불처럼 번진 이후의 우리 사회는 그 전과 같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말들이 쓰이기 전에는 갈등이 전혀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문제는 특정한 뜻을 은유하는 단어가 구체화 되며 그 속에 담겨있던 혐오와 차별이 수면 위로 올라왔고, 불화의 골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줄이고 비틀린 신조어와 유행어 그 자체보다는 말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그 단어들이 남기는 흔적을 꼼꼼하게 담아내려 했다. 널리 사용된다는 것은 그 단어가 의미하는 뜻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같다. 미래에 펼쳐 볼 사전을 그려본다. 지금의 불평등과 불안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보다 탄탄하고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 속에 개인의 삶이 존중받을 때 쓰이는 언어로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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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가 사라졌다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14
바바라 오코너 지음, 이신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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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하지 않은 이는 아마 없으리라. 망토를 두르기만 하면 슈퍼맨이 될 거란 믿음은 수많은 아이의 골절을 불러왔고, 해리 포터에 등장하는 마법 빗자루는 굿즈로 재탄생해 소장 욕구를 품게 했다.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결코 판타지에서 끝나지 않았다. 여기, 열기구를 타고 세상을 발아래 둔 세 사람이 있다.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 안짱다리에 사시인 월터는 하모니에 사는 심술궂은 아이들의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유일한 친구이자 세상의 전부였던 형을 떠나보내고 가슴에는 분노와 슬픔만 가득하다. 형이 애지중지하던 트럭을 얼룩 한 점, 지문 하나, 먼지 한 톨 없이 돌보는 것으로 아픔을 밀어낼 뿐이다. 그 앞에 남다른 외모에 주눅들 법도 하지만 매사 거침없고 당당한 포지가 옆집으로 이사 온다.

 

  포지의 제안으로 친구 사귀기 규칙을 함께하며 외로움을 조금씩 덜어내 가던 중 열기구 사고로 추락한 밴조 아저씨를 만난다. 어른이라는 기본값에서 한참을 벗어난 위트와 천진난만함을 장착한 그는 열기구 경주대회에 참가해 우승 상품을 거머쥘 계획이었다. 셋은 불시착한 열기구를 사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특히 목숨처럼 아끼는 형의 트럭을 직접 운전하는 장면은 읽는 이의 가슴을 졸이게 한다.

 

  만신창이가 된 열기구는 월터의 찢어진 마음 같다. 반짝반짝 잘 관리된 형의 트럭은 열기구 운반 과정에서 생채기가 났다. 어떻게든 열기구를 구출해 수리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아픈 마음을 매만지고 상처를 소독하는 과정과 몹시 닮았다. 드러내고 연고를 바르고 호호 입김까지 불어주어야 덧나지 않는다. 그토록 험난한 과정을 딛고 마침내 떠올라 하늘에서 마주한, 형이 보여주려 했던 세상과의 만남은 그래서 더 따뜻하다.

 

  부서진 가족, 외롭고 소외된 청소년이 등장하는 지극히 무거운 소재를 다루지만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작가의 필력은 흔들림이 없다. 아직 읽지 않았다면 전작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소원을 이루는 완벽한 방법을 함께 펼쳐보는 건 어떨까. 방학은 길다.

"무슨 말인고 하니 너희가 문제라 일컫는 것들은 그저 그루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지."
"그러니 돌아가자 이거야."(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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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 -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57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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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2학년 유리는 입양아다. 양모와는 겨우 3년간 함께 살았을 뿐 여덟 살 이후론 본 적이 없다. 양모가 할아버지에게 어린 유리를 맡겨두고 집을 떠났기 때문이다. 조손 가정에다 입양아라는 사실까지, 집안 사정을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되면 알 수 없는 수치심과 원망, 배신감 같은 감정이 일렁거렸다.

 

  할아버지와는 감정과 생활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부담도 지우고 싶지 않다. 늘 처지에 맞는 선에서 미래를 계획하고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을 터득하며 살아왔던 유리가 선택한 답안은 4년 전액 장학금, 기숙사, 취업 전망이 밝은 대학이다. 앞으로 2, 제 앞가림만 하면 되는 일상에 별안간 지진이 인다.

 

  갑작스러운 양모의 사망 사고에 이어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느닷없이 11살짜리 동생 연우를 떠맡게 된다. 게다가 어린 연우의 몸에는 엄마가 남긴 학대 흔적이 빼곡하고 고인의 사망과 관련해 소년보호재판이 예정되어 있다. 유일한 어른인 할아버지는 항암 투병 중이다. 관심과 보호가 필요한 나이 열여덟, 혼자 감당하기엔 벅찬 일들이 닥치지만 언제나 그랬듯 유리는 피하지 않고 묵묵히 수습해 나간다.

 

  섣불리 간섭하거나 충고하지 않고 필요한 순간 곁을 내어주는 고향숙 선생님, 한결같이 옆을 지켜주는 친구 미희와 주봉, 그리고 비슷한 아픔을 지녔지만 당당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세윤까지. 버틸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이들의 마음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버거운 현실 앞에 굴하지 않는 유리를 품 안 가득 끌어 안아주고 싶어진다.

 

  실제 입양 가정의 어머니를 인터뷰하며 시작되었다는 이 작품은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유리의 복잡한 사정과 쉽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지나친 연민 없이 촘촘하고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어 몰입감을 더해준다. 그래서인지 삶 앞에 용기 낸 청소년들이 더는 상처받지 않도록, 이들의 마음에 새살이 돋을 수 있도록 축복의 응원을 보내게 된다. 저마다의 상처를 이겨내고 훌훌 털어내는 순간이 오기를.

어차피 피해갈 수 없다면 마주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더 나빠질 일 따위는 없을 것 같았다. 기껏해야 내 존재가 조금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정도일테고 그 정도라면 어렵잖게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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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모둠의 용의자들 VivaVivo (비바비보) 49
하유지 지음 / 뜨인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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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것도 없고 예쁜 구석도 없는 최은율, 베프가 없어서 밥도 혼자 먹는 최은율. 책 속 주인공이 스스로에게 내리는 가혹한 평가이다. 자존감 제로에 친구를 사귀기도 힘든데 누군가가 익명 단톡방에서 나를 저격한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주인공을 찾아온다.

새별중 1학년 은율이는 단짝 친구의 전학으로 외로운 2학기를 맞았다. 같이 다닐 친구가 없어 가뜩이나 우울한 어느 날 밤, 전교생이 모여 있는 익명 단톡방에 알람음이 울리기 시작한다. ‘내년에 같은 반 되기 싫은 사람?’, ‘난 최은율.’, ‘왜냐하면…’. 점 셋만 남기고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방을 나가 버린 범인! 툭 던져진 메시지 옆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고 대화방이 폭파되는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단톡방의 개설자 홍샘의 조언대로 은율은 사건을 직면하기로 마음먹고 자신을 저격한 범인을 찾아 나선다. 같은 반 엘라의 제보로 용의자는 3모둠의 다섯 명으로 좁혀졌다. 한 명씩 차례차례 용의자를 탐문하던 중 뜻하지 않게 친구들이 가진 고민과 아픔을 마주하게 된다.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님 때문에 힘든 다희,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언니와의 비교로 죽음을 생각하는 소미, 사랑하는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야 하는 민준…. 은율이는 잠시 자신의 일을 제쳐두고 위기 상황에 놓인 친구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쓴다.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은 주변 사람과 그 속의 자신을 찬찬히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되짚어본 기억 속에서 은율이는 마침내 친구에게 상처를 준 순간을 찾아낸다. 잘못을 사과하고 화해를 청하는 용기도 예쁘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을 만한 무거운 사건으로 시작되지만 그 과정을 헤쳐나가는 길은 시종일관 유쾌하다.

“이 소설을 읽은 여러분이 자기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되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에게 필요한 베프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나의 내면에 더 집중해 보자.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힘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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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민을 위한 없는 나라 지리 이야기 - 2022 세종도서,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전국지리교사모임 추천도서
서태동 외 지음 / 롤러코스터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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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그가 어디서 태어나 자랐는지에 관한 정보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한 국가에 대해 논할 때도 마찬가지다. 자리 잡은 땅의 특성과 그로부터 파생된 문화의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다른 나라를 알아가는 방편으로 그 나라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 관심을 가지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의 관점은 조금 다르다. ‘있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에 대해 주목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공항이 없는 나라 모나코는 국경의 끝과 끝을 연결해도 3,500m가 채 되지 않아 활주로를 갖출 수가 없다. 출입하려면 프랑스 니스를 거쳐 육로를 통하거나 요트, 헬리콥터를 이용해야 한다. 이런 약점을 관광 포인트로 활용한 모나코는 요트 위에서 느끼는 멋진 해안 경관, 카지노, 포뮬러 1 등 문화자본을 통해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터키, 이란,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 끼여 번갈아 지배당한 경험이 있는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아기 이름을 마음대로 지을 수 없다. 이 나라는 굴욕의 역사를 지우기 위해 러시아식 이름을 제한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겪어야 했던 창씨개명을 생각하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처사다.

강은 없지만 물 자원 기술을 확보해 농산물 수출까지 가능하게 만든 사우디아라비아, 연중 고온다습하여 쾌적한 환경이 아니지만 쇼핑의 천국인 싱가포르 등. 우리가 알던 상식 외의 사실들이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또 왜 아이슬란드에서는 열차를 탈 수 없는지, 중국은 왜 현금이 없는 나라를 표방하는지처럼 나름의 없는 까닭이 담긴 속 사정을 대면할 수 있다. 

‘없다’는 것은 얼핏 불리한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없어도 잘 사는 나라들을 따라가다 보면 없음이 결핍이 아님을 알게 해 준다. 세계지도나 지구본을 짚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덤이다. 이 책과 함께라면 단순히 수도 이름 외우기를 넘어서는 지리적 상상력과 통찰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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