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훌 -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57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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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2학년 유리는 입양아다. 양모와는 겨우 3년간 함께 살았을 뿐 여덟 살 이후론 본 적이 없다. 양모가 할아버지에게 어린 유리를 맡겨두고 집을 떠났기 때문이다. 조손 가정에다 입양아라는 사실까지, 집안 사정을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되면 알 수 없는 수치심과 원망, 배신감 같은 감정이 일렁거렸다.

 

  할아버지와는 감정과 생활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부담도 지우고 싶지 않다. 늘 처지에 맞는 선에서 미래를 계획하고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을 터득하며 살아왔던 유리가 선택한 답안은 4년 전액 장학금, 기숙사, 취업 전망이 밝은 대학이다. 앞으로 2, 제 앞가림만 하면 되는 일상에 별안간 지진이 인다.

 

  갑작스러운 양모의 사망 사고에 이어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느닷없이 11살짜리 동생 연우를 떠맡게 된다. 게다가 어린 연우의 몸에는 엄마가 남긴 학대 흔적이 빼곡하고 고인의 사망과 관련해 소년보호재판이 예정되어 있다. 유일한 어른인 할아버지는 항암 투병 중이다. 관심과 보호가 필요한 나이 열여덟, 혼자 감당하기엔 벅찬 일들이 닥치지만 언제나 그랬듯 유리는 피하지 않고 묵묵히 수습해 나간다.

 

  섣불리 간섭하거나 충고하지 않고 필요한 순간 곁을 내어주는 고향숙 선생님, 한결같이 옆을 지켜주는 친구 미희와 주봉, 그리고 비슷한 아픔을 지녔지만 당당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세윤까지. 버틸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이들의 마음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버거운 현실 앞에 굴하지 않는 유리를 품 안 가득 끌어 안아주고 싶어진다.

 

  실제 입양 가정의 어머니를 인터뷰하며 시작되었다는 이 작품은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유리의 복잡한 사정과 쉽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지나친 연민 없이 촘촘하고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어 몰입감을 더해준다. 그래서인지 삶 앞에 용기 낸 청소년들이 더는 상처받지 않도록, 이들의 마음에 새살이 돋을 수 있도록 축복의 응원을 보내게 된다. 저마다의 상처를 이겨내고 훌훌 털어내는 순간이 오기를.

어차피 피해갈 수 없다면 마주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더 나빠질 일 따위는 없을 것 같았다. 기껏해야 내 존재가 조금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정도일테고 그 정도라면 어렵잖게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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