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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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내듯, 도려내듯 써 내려간 작가의 마음이 담담한 문체에 절절하게 담겨있다.
안중근을. 시대의 역사를, 지금의 역사를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지 처절하고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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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무늬 상자 특서 청소년문학 27
김선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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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야, 사실은 말이야. 이 집에 살던 열일곱 살 난 딸이 죽었단다.”

아토피 때문에 고생하는 딸을 위한다며 덜컥 산골 은사리 폐가를 사버린 엄마의 말이다. 그리고는 어린 시절 살던 집을 떠올리며 정성껏 폐가를 수리해 나간다. 벼리는 그간 엄마가 준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집의 복원 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하기로 한다. 흙더미 속에 잠들어 있던 붉은 상자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했다.

 

상자 속에는 강여울이라고 쓰인 다이어리와 함께 묻혀 버린 학교 폭력의 전말이 담겨 있었다. 악의적인 낙서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헛소문들과 결국 여울이가 세상에 안녕을 고하게 만든 주변의 따가운 시선들까지. 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는 학교에서 자랑스럽게 여기는 선배이자 지금 한창 떠오르고 있는 연예인 고현이다.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인터넷 영상 속에서 고현은 자신이 저지른 폭력을 아련한 첫사랑으로 포장해 유명세에 이용하고 있다.

 

벼리는 여울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세나에게 다가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세나는 조금 얼뜬 태규를 놀잇감으로 삼은 학교 친구들에 맞서 용기를 냈지만 되려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그늘 속에 혼자였던 옆자리를 든든하게 채워주고 상자의 비밀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준다. 더 나아가 고현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블로그 포스팅을 게시하며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책임을 묻는다. 벼리의 용기에 응답하듯 마음 한편에 불편을 안고 침묵하던 목격자들이 하나, 둘 동참하기 시작한다.

 

시간을 파는 상점으로 청소년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김선영 작가가 이번에는 용기에 관한 이야기로 찾아왔다. 소설을 쓰면서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했다는 작가는 타인을 위해 한발 앞으로 내디딜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말한다. 침묵은 가해자에게는 동조로, 피해자에게는 절망으로 읽힌다. 무섭고 힘들겠지만 대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주변을 돌아보자. 어디선가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내 안의 용기를 꺼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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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폭력이라 부르는 것들 - 교과서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폭력 이야기 온 세상이 교과서 시리즈 6
전국도덕교사모임 지음 / 해냄에듀(단행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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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자, 전 프로 배구 선수 등 학폭 가해자에 대한 폭로가 사회면에 오르내리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미투 운동이 일어나는 곳 또한 방위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남모르는 상처를 삭이던 폭력의 피해자들은 이제야 우리 사회 곳곳에서 하나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형의 폭력에 대한 의식 수준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 천부적 인권을 타고났다는 것, 세상에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다.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한 사과 없이 멀쩡히 활동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여론은 이미 자리 잡았다. 아동 학대를 일삼는 자격 없는 보호자의 뉴스는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구조적·문화적 폭력은 조용한 억압으로 작동하고 있다. 사회구조 안에 내재된 폭력은 인식하기조차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부모라는 이유로 자녀의 미래를 결정하고 진로를 강요하는 것 또한 가정 내 위계에 의한 폭력이라 볼 수 있다. 최소한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일터와 주거 환경,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 노인들의 디지털 소외, 언론에 의해 조장되고 심화된 남녀 갈등 모두 구조적 폭력에 속한다.

 

책은 가정, 학교,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눈에 보이는 폭력뿐만 아니라 상식, 고정관념을 넘나들며 은밀하게 발생하는 형체 없는 폭력을 낱낱이 파헤친다. 첫머리를 열어주는 만화와 더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하는 마침 단락은 주제를 무겁지 않게 전달해 낸다. <기생충>, <, 다니엘 블레이크> 등 영화 소개를 곁들여 한층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폭력은 그 자체로 불편함과 고통을 주기에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 가해자에게 정당한 형량을 부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피해자들의 찢긴 마음과 회복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 먼저다. 사회가 연대하고 방관하지 않을 때 어떤 종류의 불의와 폭력에도 맞설 수 있는 평화 백신이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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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만난 새
이치니치 잇슈 지음, 전선영 옮김, 박진영 감수 / 도서출판 가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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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지 않고 집 주변을 둘러보기만 해도 만날 수 있는 야생동물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새들이다. 대체 누가 이렇게 지저귀는지, 방금 내 옆을 날아간 새는 어떤 종인지, 궁금증을 가지는 순간 의미 있는 새 관찰이 시작된다.

 

가을 산책길에 요란하게 지저귀는 새는 때까치이다. 작고 귀여운 외모와 다르게 곤충, 도마뱀, 개구리를 주식으로 하는 소형 맹금류로 먹이를 잡으면 나뭇가지에 꼬치를 꿰어놓는 습성이 있다. 이른 아침 쓰레기봉투를 몰래 뒤지고 있는 새는 고기 비계와 감자칩을 찾고 있는 큰부리까마귀일 것이다. 겨울날 공원 연못에서는 먹이를 잡느라 엉덩이를 치켜들고 물구나무 선 고방오리를, 숲에서는 동백꽃을 꽉 붙잡고서 꿀 먹기에 열중한 동박새를 만나보자.

 

언뜻 평화로워 보이는 한때에도 새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다. 어미 박새는 까치나 까마귀가 둥지에 다가오면 찌까찌까소리를 내서 새끼들이 둥지에 들어가도록 유도하고, 구렁이 같은 뱀이 나타나면 - -” 울어서 도망치게 한다. 야생의 추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 전체를 하나의 털 뭉치로 만들어 고단하게 잠을 청하는 새도 있고, 기후조건이나 먹이 사정이 나빠지면 다른 종과의 연대로 생명을 이어나가는 새들도 있다.

 

저자는 너무 친근하다 보니 오히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동네 새들의 흥미로운 점들을 알려주고 있다. 섬세하고 귀여운 일러스트로 먹이 활동, 구애 행동, 둥지 짓기, 육아를 소개하고 있어 부담 없이 읽힌다. 또 버드 스트라이크 예방법, 다친 새를 안전하게 구조하는 요령 등도 부록으로 함께 실어 가까이 사는 새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특별한 노력은 필요 없다. 약간의 지식과 그것보다는 많은 관심, 그리고 적당한 매너를 갖추고 새 관찰을 시작해 보자. 그렇다면 우리 옆의 날개 달린 이웃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덤으로 그들을 따라다니다 보면 운동 부족에서 탈출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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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 만들어지고, 유행하고, 사라질 말들의 이야기
금정연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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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국룰이 된 세상! ‘손절하지 않고 버티면 좋은 날이 올까? 줄임말이나 신조어, 유행어가 일상을 점령한 지 오래다. 이 책은 이미 일상 언어로 자리 잡은 말들을 통해 왜 특정 시기에 그 단어가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쓰임이 우리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갈피를 심층적으로 풀어낸다.

 

말에는 분명 힘이 있다. 동시대의 초상을 적확하게 반영하며 살아남은 말들은 우리 사고에도 영향을 끼친다. 일례로 가성비가 유행한 후에는 소비자들은 전보다 더 꼼꼼하게 가격 대 성능을 따져보게 되었다. ‘많관부는 현대인의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단어다. 좋아요, 알람, 구독, 댓글이 곧 돈으로 이어지고 마케팅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는 인사말은 어쩌면 너무 당연할지 모른다.

 

신조어와 유행어의 등장 및 변화는 사회적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영국의 전설적 밴드 더후(The Who)가 노래한 <나는 플라스틱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는 바다를 건너 금수저흙수저를 낳았다. 부모의 재산에 따라 자식의 경제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21세기 수저계급론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 것이라는 비관을 키운다.

틀딱’, ‘맘충’, ‘노키즈존’, ‘한남등의 단어가 들불처럼 번진 이후의 우리 사회는 그 전과 같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말들이 쓰이기 전에는 갈등이 전혀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문제는 특정한 뜻을 은유하는 단어가 구체화 되며 그 속에 담겨있던 혐오와 차별이 수면 위로 올라왔고, 불화의 골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줄이고 비틀린 신조어와 유행어 그 자체보다는 말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그 단어들이 남기는 흔적을 꼼꼼하게 담아내려 했다. 널리 사용된다는 것은 그 단어가 의미하는 뜻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같다. 미래에 펼쳐 볼 사전을 그려본다. 지금의 불평등과 불안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보다 탄탄하고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 속에 개인의 삶이 존중받을 때 쓰이는 언어로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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