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무늬 상자 특서 청소년문학 27
김선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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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야, 사실은 말이야. 이 집에 살던 열일곱 살 난 딸이 죽었단다.”

아토피 때문에 고생하는 딸을 위한다며 덜컥 산골 은사리 폐가를 사버린 엄마의 말이다. 그리고는 어린 시절 살던 집을 떠올리며 정성껏 폐가를 수리해 나간다. 벼리는 그간 엄마가 준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집의 복원 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하기로 한다. 흙더미 속에 잠들어 있던 붉은 상자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했다.

 

상자 속에는 강여울이라고 쓰인 다이어리와 함께 묻혀 버린 학교 폭력의 전말이 담겨 있었다. 악의적인 낙서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헛소문들과 결국 여울이가 세상에 안녕을 고하게 만든 주변의 따가운 시선들까지. 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는 학교에서 자랑스럽게 여기는 선배이자 지금 한창 떠오르고 있는 연예인 고현이다.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인터넷 영상 속에서 고현은 자신이 저지른 폭력을 아련한 첫사랑으로 포장해 유명세에 이용하고 있다.

 

벼리는 여울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세나에게 다가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세나는 조금 얼뜬 태규를 놀잇감으로 삼은 학교 친구들에 맞서 용기를 냈지만 되려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그늘 속에 혼자였던 옆자리를 든든하게 채워주고 상자의 비밀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준다. 더 나아가 고현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블로그 포스팅을 게시하며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책임을 묻는다. 벼리의 용기에 응답하듯 마음 한편에 불편을 안고 침묵하던 목격자들이 하나, 둘 동참하기 시작한다.

 

시간을 파는 상점으로 청소년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김선영 작가가 이번에는 용기에 관한 이야기로 찾아왔다. 소설을 쓰면서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했다는 작가는 타인을 위해 한발 앞으로 내디딜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말한다. 침묵은 가해자에게는 동조로, 피해자에게는 절망으로 읽힌다. 무섭고 힘들겠지만 대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주변을 돌아보자. 어디선가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내 안의 용기를 꺼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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