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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의 기억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등 뒤의 기억
에쿠니 가오리 지음
소담출판사
섬세한 필치로 국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온 작가 에쿠니 가오리가 이번엔 독특한 추리 형식의 장편소설을 들고 나왔다. 일단은 미스터리 느낌이 난다는 그 추리 형식에 마음이 쏠렸고, 기존에 읽었던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에서 풍겨나는 잔잔한 향을 풍기는 이야기들이 다시 떠올랐다. 에쿠니 가오리는 보통 사랑과 기다림,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애틋하고 서정적인 목소리로 들려주는 작가라는 평이 어울린다는 일본 3대 여류작가로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다. 이번 소설 역시 그녀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소설적 구도는 기존 작품들과는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저 일반 독자인 나로서는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재주는 없지만, 나 나름대로 읽어보고, 내 그릇 안에서 느껴보려한다.
일본에서 발간된 원서와 국내판은 살짝 다른 듯 하다. 다른 미스터리 소설들은 전혀 다른 느낌의 표지로 발간하고 하는데, 이렇게 비슷한 분위기를 표지를 내는 것도 색다른 느낌이다.
<등 뒤의 기억>에서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 훨씬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과, 그 다양한 인물들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첫 장을 읽을 때는 이 인물, 저 인물의 각기 다른 사연이 등장하기에 조금 낯설고 당혹스럽기도 했다. 해변에 간 마사나오의 부인이 히나코의 여동생인가? 하다가 이름이 다른 것을 깨닫고, 이 들의 연관성을 캐내는데 골몰하기도 하고, 실버 아파트에 살고 있는 다른 인물들과의 인연일까? 하고 의문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등장 인물들 간의 개연성을 하나하나 발견할 수 있는 묘미가 있다. 어쩌면 이들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문제의 고비토인지도 모르겠다. 고비토(こびと)는 소인이라는 뜻으로 전설·동화에 나오는 상상의 인물을 말한다. 히나코, 마루코, 나쓰키와 아메코까지 이들은 고비토의 존재를 보았고, 또한 믿고 있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실버 아파트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오십이 훌쩍 넘은 히나코가 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그녀는 무척이나 정적이고 조용한 성품이고, 정신적인 트라우마도 겪은바 있는 히나코의 집은 너무나도 적막하고 조용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히나코는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독신녀일 뿐이지만, 그녀의 생활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히나코는 혼자가 아니다. 항상 히나코의 곁에는 돌아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자리에 언제나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나눌 수 있는 가공의 여동생, 아메코가 있다. 젊은 시절 유부남과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고, 돌연 사라져 버린 여동생은 캐나다에서 히나코의 또다른 모습인 고지마 선생으로 조용하고 은근하게 살고 있다. 실제로는 만나지 못하고 있지만, 조바심을 내지도 않고, 만나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지도 않는다. 당연하게도 어디선가 잘 살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또한, 히나코의 집을 종종 찾아오는 이웃 남자 단노 류지에 의해서 히나코가 외면하고 덮어 버리고 싶어 하는 과거의 비밀들이 자꾸만 들춰져서 하나씩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보이지 않는 실로 이어진 여덟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진실의 조각들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는데, 책 뒤표지에 쓰여진 글을 읽고 도대체 그 여덟 사람이 누구인지 캐내는 일에 돌입하게 되었다.
자~ 그렇다면, 문제의 여덟 사람은 과연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그 퍼즐이 완성되는 순간 독자들은 히나코의 가슴 먹먹한 고독과, 옛 추억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오롯이 마주하게 된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어머니와 여동생 아메코, 큰아들 마사나오와 에리코, 모야와 작은 아들 마코토와 전 남편, 마코토의 여친 아미가 아닐까 싶다.
2014.9.29.(월)
두뽀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