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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공자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소설 공자
최인호 지음
열림원
언감생심, 공자를 읽게 될 줄이야 ^^
책을 많이 읽는다는 청소년기를 교과서정도로 끝낸 책과 거리가 먼 학생이었고, 문학작품을 백과사전으로 뗀 잔머리-엉터리 수준이었기 때문에, 공자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천재적인 작가 최인호님 덕분에 소설 공자로 이렇게 만나게 되니,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소설 공자의 첫 번째 장인 【첫 번째 출국-공자와 안자】에서는 기원전 571년 소공 25년인 공자 나이 35세에 고향인 노나라를 빠져 나와 제나라로 망명을 떠난다. 첫 번째 망명지로 제나라를 선택한 이유는 노나라의 임금인 소공이 도망쳐 제나라로 망명을 하였고, 제나라를 다스리는 경공과 안영을 공자가 공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주의적 정치가인 안영은 이상주의적 사상가인 공자를 뛰어난 사상가로는 인정하고 있지만, 정치가로서는 크게 신뢰하지 않고 있었고, 공자를 몽상가라고 생각에 자신의 주군인 경공과의 만남을 차단하고 제나라를 찾은 지 6개월 후에야 첫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또한 제나라의 실권자인 진씨를 비롯한 권력자들이 모두 공자를 맹렬하게 비난하였고, 따라서 공자는 1년 정도 머무르다가 제나라를 떠난다.
제나라로의 첫 번째 출국을 다녀온 공자는 BC50년에 이르러 9년 만에 다시 남궁경숙(공자보다 나이가 많은 권신이었을 것으로 추정)과 주나라를 향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인류사상 가장 극적이고 가장 신비스러운 여행이라고 일컬어 신과 신이 만나기 위해 벌인 '신들의 여행'이라고 칭할 수 있겠다. 공자와 더불어 중국이 낳은 최고의 사상가이고 공자보다 오히려 광범위하게 중국의 민간신앙을 움직여 사상적 기초를 닦은 수수께끼의 인물인 도교의 창시자인 <도덕경>의 노자를 만나기 위해 떠난다.
공자의 유가사상은 도가사상을 '현실도피'라고 비난하고 있으며, 도가사상은 유가사상을 '지나친 세속주의'라고 비판한다.
유가사상이 중국 북방(황하유역)의 기질을 대표한 사상이라면 도가사상은 중국의 남방(장강유역)의 기질을 대표한 사상이라고 분석한다.
노자를 만난 공자는 노자로부터 '제발 예를 빙자한 그 교만과 그리고 뭣도 없으면서도 잘난 체하는 병과 헛된 집념을 버리라'는 충고를 듣는다. 이로써 노자와 공자의 만남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주지 못하고 상대방에 대한 이견만을 확인한 후 짧게 끝이나고 만다.
3장에서 서술한 황금시대는 기원전 501년(공자의 나이 51세)부터 기원전 497년(공자의나이 55세)에 이르는 5년간의 시간이다. 출신이 미흡했던 공자는 젊은 시절 별로 신통치 못한 관직생활에 머물렀고, 51세가 되어서야 '중도재'라는 벼슬로 등용된다. 이는 중도를 다스리는 직책으로 시장이나 도지사에 해당되며, 55세에 이르러 '대사구' 라는 벼슬에 등용된다. 대사구는 나라의 재상을 겸하는 최고의 벼슬로 중도재와 대사구가 되어 관직생활을 하던 이 13년간을 황금시대라고 칭한 것이다.
공자가 노나라의 대사구가 되어 나라가 융성해지자, 제나라의 경공 밑에서 정치를 하는 대부 여서는 미인계를 써서 노나라의 정공과 공자를 이간질 시키려는 계략을 세우고, 이 미인계에 계환자가 홀딱 넘어가 공자 몰래 정공을 데리고 가 구경시키게 되고, 이에 계환자와 정공은 하루 종일 춤과 노래를 구경하는 데 정신이 팔려 정사를 등한시하기에 이른다.
55세에 대사구의 재상직을 버리고 그 이상을 정치적으로 실현할 나라와 임금을 찾아 56세에 국외로 여행길에 오른다. 다시 노나라로 돌아온 것은 기원전 484년으로 공자의 나이 68세, 13년 동안 열국을 주유하게 된다.
세 번째의 출국은 기원전 496년,공자의 나이 56세, 노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찾아간다.
『사기』에는 공자가 70여 나라를 유세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서너 개의 나라를 반복해서 순회하였으며, 일부의 나라는 머무르는 일이 없이 그저 지나간 것 같다.
세 번째 출국지로 위나라를 선택한 이유는 비록 영공이 무능하지만, 외교에 능숙한 중숙어가 있고 종묘의 일에 밝은 축타가 있으며, 군사가 뛰어난 왕손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영공에게 실망하여 기원전 495년에 다시 정나라를 거쳐 진나라를 찾지만, 진나라의 상황이 혼란스러워 거백옥의 초청을 받고 다시 위나라로 돌아온다. 그러나 영공은 점차적으로 공자에 대한 마음이 사그라들고, 철저하게 무시당한 공자는 다시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간다. 이때가 기원전 492년 공자의 나이 60세 때였다.
네 번째 출국이라고 칭하는 공자의 순회 후반기를 이름이다. 기원전 490년 공자의 나이 62세 때 섭나라를 찾아가는 일이다. 후반기 7년은 더욱 초라하고 고달픈 가시밭길의 여정. 찾아간 나라들도 채나라, 섭나라와 같은 소국일 뿐이고 독립된 나라라고도 할 수 없는 강대국들의 속국일 뿐이다. 진나라에서 3년 간을 머물던 공자는 채나라 제후인 소후의 초청으로 채나라를 찾아가지만, 소후는 신하들에게 암살당하는 정변이 일어나 공자는 섭나라로 피신을 간다. 하지만, 섭나라를 다스리는 섭공과도 잘 맞지 않고, 제자들과도 불화를 겪던 공자는 다시 섭나라를 떠나 채나라로 돌아오게 된다. 공자와 제자들 간의 갈등은 주유열국의 후반기 내내 계속된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초나라의 소왕이 죽자,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 공자는 그래도 초나라를 포기할 수 없었고, 63세가 된 공자는 다시 위나라를 찾는다. 제자들도 각자 뿔뿔이 자구책을 마련하여 염구는 노나라에 초빙되어 가고, 자공은 노나라 사신으로, 자로는 위나라 읍재로 등용되고 공자는 위나라에서 6년간이나 머무른 후, 13년 만에 고국 노나라로 귀거래사 한다.
공자천주(孔子穿珠)란 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뜻으로,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원전 484년에 마침내 68세의 나이에 노나라로 돌아온 공자는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제자들과 구슬을 꿰는 마음으로 학문에 정진한다. 정치적 이상을 통해 국가를 바로잡으려는 외부적 노력보다 학문적 사상을 개발하여 내적 자아를 완성하려는 노력이 훨씬 더 값어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나라는 정공이 죽고 애공이 왕위에 올랐으며 권신이던 계환자가 죽고 그의 서자인 계강자가 권력을 쥐고 있었다.
주군인 공회로 인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제자 자로, 애공을 돕는 염유, 중궁, 제여, 자공, 오나라 사람으로 읍재로 등용된 자유 등과 토론하며 학문한다.
공자는 "덕행에는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 있고, 언어에는 재아와 자공이 있고, 경사에는 염유와 계로가 있고, 문학에는 자유와 자하가 있다." 하여 이들을 '공문십철'이라 칭하였다.
공자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던 탓에 공자의 행적을 공부하는데 급급하였다면, 다음에 이 책을 다시 읽을 때는 고사성어를 찾아 정리하는 재미로 읽는 것도 상당한 재미를 알게 해줄 것 같다.
2012.7.22. 소설을 통해서 공자를 만나게 된
두뽀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