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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의 총구다 - 남자현 평전
이상국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조선의 총구다
일제의 심장을 겨눈 독립투사 '만주의 여호'
빈섬 이상국 지음
세창미디어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중학생 딸아이가 남자현이 누구냐고 묻는다. 독립운동가라고 답해줬더니, 전혀 모르겠는데? 라며 의아해한다. 독립운동을 한 여성이 많지 않은데, 어찌 전혀 생소한 인물을 두고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느냐는 듯한 얼굴이다. 그래! 그래서 내가 이제 읽어보려 하는 거란다.
어렵게 찾아본 <발굴 한국현대사 인물>편에는 주시경, 신채호, 정약용, 고판례, 정종명, 남자현의 순으로 34인의 인물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었다.

남자현(南慈賢, 1872~1933)은 1891년 19살의 어린 나이에 열 살이나 위인 의성김씨 전서공후 매은공의 12대손인 김영주(1862~1896)와 혼인한다. 그러나 영양 땅에서 일어난 의병 김도현에 합류하여 의병 활동을 하던 김영주는 5년 후에 남자현에게 유복자만을 남겨둔 채 의병전투에서 사망하고 만다. 이 때 남자현의 나이는 24세. 이후로 23년 간을 '보통 여인'으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병 수발을 들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친정에 돌아와 친정 식솔을 건사하며 살아간다.
1919년 47세가 된 남자현은 독립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안동사람 이상룡(1858~1932)과 김동삼1878~1937)을 통해서 아들 김성삼을 데리고 만주로 진출한다.
만주에서 남자현이 행한 주된 일은 교육사업이었다. 1921년 액목, 화전, 반석에 20개가 넘는 여성 교육기관을 만들고 북만주 12곳에 교회를 세우기도 한다.
1926년 4월 남자현은 길림에서 박청산, 이청수, 김문거와 함께 일본총독 사이토 마코토(1858~1936, 일본의 군국주의자. 조선총독 취임 시 식민지 통치방법을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로 전환했다. 그러나 헌병을 경찰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을 뿐 병력을 증가했고 많은 지식인을 변절시켰으며 위장된 자치론을 이용해 독립운동 방향에 혼선을 빚게 했다.)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기도 하고, 1927년 안창호,김동삼, 오동진, 고할신 등이 검거된 길림 사건에 뛰어들어 '안창호를 구한 숨은 공로자'로 꼽히고, 1931년 만보산 사건과 김동삼 구출작전을 펼치기도 하고, 1932년 국제연맹 조사단인 리턴조사단에 단지한 손가락을 보내 일본의 만행을 알리려고 하였으나 실패한다. 1933년 하얼빈에서 일본 전권대사 무등을 암살하려다 붙잡혀 투옥되고, 봄과 여름을 보낸 후 사망하고 만다.
단지한 사건으로 여자 안중근으로 불리는 남자현은 1962년 독립유공자 건국공로훈장 복장을 수여받는다.
이 책의 저자는 시인으로 남자현의 생애를 그린 『암살의 새벽』 ,『목없는 남편에게, 1896년 7월』 ,『단지』 ,『하얼빈 사진관』 등의 시를 같이 소개하고 있으며, 남편을 잃은 24세의 남자현과 고향을 떠나 만주로 향하는 47세의 남자현, 죽음을 앞둔 61세의 남자현과의 가상 인터뷰를 실어 남자현과의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부록Ⅰ에는 친손자 김시련, 친정 손자인 남재각(오빠 남극차의 외아들 남훈오의 외아들)과의 인터뷰와 남자현의 아들 김성삼의 회고담을 싣고 있다.
또한 부록Ⅱ에는 '조선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과 '이등박문의 양딸이 된 흑치마' 배정자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느니, 참고하여 볼 일이다.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던 점은 여성 독립운동가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관순 이외에는 전혀 알려진 인물이 없는데, 역사 속에서 사라진 이유가 무었일까?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는 여성이 남자에게 묻혀서, 조용히 내조하는 역할에 충실하기를 바라는 뭍 남성들의 이기심 때문은 아닐까? 싶다. 참고로 나는 페미니즘에 사로잡힌 여성해방론자는 아님을 밝혀두고 싶다.
2012.6.1. 독립운동을 펼친 여성들에 대해 공부해 본
두뽀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