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는 벽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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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는 벽

조정래 소설

해냄

<아리랑>, <태백산맥>등의 대하소설로 널리 알려진 조정래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선택한 이 책에는

비둘기
우리들의 흔적
진화론
한, 그 그늘의 자리
마술의 손
외면하는 벽
미운 오리 새끼
두 개의 얼굴

8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다. 독서력이 미약한 나로서는 영화 <태백산맥>만 보았을 뿐, 대하소설 <태백산맥>이나 <아리랑>을 감히 읽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 단편집은 용기를 내어 시작했다.
1977년부터 1979년까지 조정래 작가가 문예지에 발표한 8개 작품을 수록한 것으로, 1999년 <조정래 문학전집>(전9권)의 여섯 번째 책인 『마술의 손(1978년)』으로 출간되어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작품집의 개정판이다.

지금부터 삼십 년이 넘는 시간 전에 쓰여진 단편이라 그런지, 공감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 시대 배경이나 상황이 내가 분명 겪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비둘기

그 중에서 가장 첫 번째 실린 단편은 사상범으로 붙들려서, 해도 들지 않는 암벽 감옥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자의 절망을 다룬 「비둘기(1977)」이다. 솔직히 사상범이라는 설명도 나오지 않고, 또 왜 감옥에 끌려 왔는지, 가족은 어떻게 된 것인지, 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인지 자세할 설명이 없어서, 잘 이해가 안되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고야 비로소 파악을 할 수 있었다. 내게는 제일 어려운 작품이었다.

우리들의 흔적

직장 동료인 미스 김의 자살을 통해 자본주의가 빚어낸 소통 단절의 상황을 조명하는「우리들의 흔적(1977)」을 읽었다. 조용히, 외롭게 살다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직장 동료 김명자의 급작스런 죽음을 통해,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이 얼마나 무심하게, 그리고 의미없는 관계들 속에서 살아가는 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여덟 편의 단편들 중에서 가장 납득이 가는 내용이었다.

진화론

소매치기 생활과 소년원 체험 등등 부모와 함께하지 못하는 어린 소년이 겪을 수 있는 온갖 고통을 겪는 동호의 이야기인 「진화론(1977)」은 작은 분노를 일으킨다. 왜 이렇게 끝없이 불운이 닥치고 결국 종말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

삼륜차에 쌀을 실어다 파는 쌀가게를 하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아버지는 라면상자를 머리에 이고 장사를 하던 어머니가 도망가 버린 후 그만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두 여동생를 책임져야하는 가장이 되어버린 동호. 그의 연속되는 불운은 점차 그를 더욱더 시궁창 속으로 쳐 넣는 격이 되고... 결국 살인까지 이르러...

한, 그 그늘의 자리

같은 고아원의 원생이었으나 입양된 덕에 착실하게 성장해 의사가 된 태섭과 유부남의 아이를 밴 채 아무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경희를 대조적으로 그리고 있는 「한, 그 그늘의 자리(1977년)」안타까움과 아픔 그런 감정들이 교차되게 한다.

마술의 손

책 썸네일 70년대 소도시에 전기가 들어오고, TV와 가전 제품이 보급되면서 일어나는 작은 소동을 그렸다. 그저 웃어 넘길 수 만 없는 그들에게는 심각하고 힘겨운 소동인데... 어린 시절에 TV를 처음 접하던 사건들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음을 짓게 한다.

미운 오리 새끼

이 땅에서 태어났음에도 한 번도 인간 대접을 받아보지 못한 혼혈아들의 고민과 갈등을 다룬 <미운 오리 새끼(1978년)> 이다. 지금도 여전히 흑인에 대한 편견이 있지만, 70년 대에는 더 심했을 터이고, 혼혈인에 대한 뿌리 깊은 멸시와 천대. 그 중에서도 백인과의 혼혈보다도 더 낮은 대우를 받아야 했던 흑인과의 혼혈인들... 그들이 겪는 말 못할 고충을 뼈 아프게 그려내고 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먹고 살길이 막막해 매춘에 뛰어드는 젊은 청춘을 보면서, 납득하기 보다는 말도 안된다는 분노를 먼저 할 것이다. 나조차도 그들을 100% 이해할 수는 없으니...

두 개의 얼굴

자본주의와 국가 권력의 유착 관계를 어느 시골 마을에서의 귀신 소동에 빗대 비꼬고 있는 감칠맛 나는 「두 개의 얼굴(1979년)」까지 이어진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제목 '두 개의 얼굴' 때문인지, 초반부터 '이장'이 그 귀신 소동의 장본이리라 추측하면서도, 왜 귀신 소동을 일으킨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내 분명 70년대에 십대였는데, 70년대 후반을 그린 이 글들을 읽으며 왜 이리 까마득한 옛 일로 느껴지는 것인지... 아마도 지금 2012년에서 거꾸로 세어간 시절이 훨씬 더 긴 탓이리라~

2012.5.20. 조정래와 만나는 두뽀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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