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무사 이성계 -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
서권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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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무사 이성계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

서권 장편소설

다산책방

책을 다 읽고 나서 맨 뒤편의 발문을 보니 제목이 남자소설,『시골무사 이성계』 나와 있다. 먼저 알았더라면 서평단을 신청하지 않았을까? 글쎄... 전주 이씨 집안의 왕족과 살면서, 두 딸아이에게 너희의 선조 이성계에 대해 수없이 이야기하면서도, 사실 이성계의 실체를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치적인 야망이 크고 대권에 욕심이 많은 인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서권작가의 소설처럼, 힘없는 변방의 늙은 호족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깊게 들었다. 기울어가는 고려를 지키기 위해 몸 바쳐 전장에서 이리저리 뛰면서도 그 노고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중년의 전사. 그러면서도 유달리 인덕이 좋았던 모양이다. 주변에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무리가 늘 끊이지 않고 따르고 있으니...이성계와 정도전을 선의 편에 놓고보니, 정몽주와 변안열을 자연스레 악의 편으로 놀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역사에서 정몽주는 절개를 지킨 충신으로 알려져있는 만큼, 정몽주를 떨어뜨리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을테고, 결국 변안열이 기고만장한 문신으로 그릴 수 밖에 없었으리라.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황산대첩은 다음을 통해 좀 더 자세하게 살펴 볼 수 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1017

고려 왕조는 918년부터 1392까지, 태조 왕건(王建) 부터 마지막 공양왕(恭讓王)까지 34대 475년간 존속되었으니. 황산대첩이 일어난 1380년은 32대 우왕이 재임하던 때이다.

참고로 고려 왕조 계보를 살펴보면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182

1376년 최영장군의 홍산전투, 1380년 최무선의 진포싸움에 이어 왜구가 지리산 근처의 인월역에 주둔하면서 북상을 공약하자, 조정에서는 지리산과 해주 방면에서 왜구 토벌에 용맹을 떨친 이성계를 양광(楊廣)·전라·경상 삼도도순찰사(三道都巡察使)에 임명하고, 변안열(邊安烈)을 체찰사(體察使)에, 우인열(禹仁烈)·이원계(李元桂)·박임종(朴林宗)·도길부(都吉敷)·홍인계(洪仁桂)·임성미(林成味) 등을 원수로 삼아 이성계를 도와 왜구대토벌작전에 나서게 하였다.

이성계의 황산대첩은 최영의 홍산대첩(鴻山大捷)과 함께 왜구 토벌의 일대 전기를 마련한 것이었다. 그 뒤부터 왜구의 세력은 약화되고, 고려의 왜구대책은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이 사건으로 이성계는 자신감과 실력을 다진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영과 정몽주등은 이성계를 외곽으로 돌리며 그 세력을 견제하려 하였으나, 실제로는 이성계가 갖추고 있는 군사력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어쩌면,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우는 나라 고려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에는 너무 오랜 동안 원나라에의해 유린당하고, 고려 왕조는 이제 더이상 왕권을 유지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작가 서권은 여고 국어 교사 생활과 역사 소설을 집필하는 이중 생활을 힘겹게 진행하다가 이 소설을 탈고하고 홀연 사망하고 말았다는 책표지의 설명을 읽고 가슴이 아득해짐을 느낀다.

남자 소설이라는 표현대로, 전쟁 장면이 많이 등장하고, 전혀 알 수 없는 무기들이 등장하고, 또한 전투신이 계속되기에 다소 힘겨운 부분이 있었다. 또한 이 작가는 왜구라는 표현도 안쓰고, 등장인물에 대한 별다른 사족없이 글을 쓰고 있어서 하나하나의 인물 파악은 힘들었지만, 책이 두꺼운 반면, 진도는 잘 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이성계에 대해 나의 견해가 남다른 탓이 아닐까싶다.

잔인하기 그지없는 왜구. 또 한번 그들에 대한 호감도를 재확인하고... 정말 싫다!

2012.4.17. 이성계의 다른 면모를 확인한 두뽀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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