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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신 - 죽음도 불사했던 강직한 선비들
고제건 지음 / 리드잇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직신
直臣
죽음도 불사했던 강직한 선비들
고제건 지음
리드잇
이 책에서는 왕의 부름을 거부하고, 때로는 목숨을 건 직언도 서슴지 않았던 직신들을 소개하고 있다. 절대 권력자를 향한 목숨을 건 직언과 충언을 아끼지 않았던 직신들의 이야기이다. 중국 전한시대 유향의 설화집인 <설원>에는 바른 신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군주에게 선정을 베풀도록 하는 '성신(聖臣)', 옳은 길을 가도록 보필하는 '양신(良臣)', 어진 사람을 적극 추천하는 '충신(忠臣)', 일을 잘 처리해 군주를 편안하게 하는 '지신(智臣)', 원칙을 존중하고 검소한 '정신(貞臣)', 잘못을 거침없이 지적하는 '직신(直臣)'을 들고 있다.
1장 직언(直言), 선비 목숨을 걸다
“왕이시여! 훌륭한 정치를 하소서” - 율곡 이이(1536~1584)는 선조에게 상소를 올린 조선 최고의 신동이자 뛰어난 철학자, 정치가였고, 끊임없이 상소 정치를 펼쳤다.
“임금으로서 원칙을 세우십시오” - 남명 조식(1501~1572)은 명종에게 그 어머니인 문정왕후를 과부라고 지칭하며, 문정왕후의 정권을 비난하는 상소를 올림으로 조정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조광조의 죽음으로 정치와 벼슬에 회의를 느끼고 평생을 처사로 살았다.
“조정에 붕당이 도사리고 있어 도저히 벼슬할 수 없습니다” - 내암 정인홍(1535~1623)은 선조의 부름을 사직소로 고사하다, 1608년 세자인 광해군을 폐하고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던 유영경을 탄핵하고 나섰다가 오히려 역습을 당한다. 광해군이 등극하여 고위직을 내렸으나 더 이상 정치판에 발을 들이지 않으려 했으나, 인목대비 폐모론을 반대한 일이 사실과 다르게 변질되어 인조반정 후에 역적으로 몰려 능지처참형을 받고 300년 간을 간신으로 낙인찍혔다.
“제발, 성학(聖學)으로 정치의 근본을 삼고, 도덕과 학술로 인심을 밝히십시오” - 퇴계 이황(1501~1570)은 지독한 노력형 스타일로 저자는 데카르트의 철학과 통하는 면이 있다고 한다. 선조에게 '군주의 바른 몸가짐'을 충고하는 상소문 '무진육조소'를 올린 신하이다.
2장 직신(直臣), 강직하고 올곧은 신하
“세도를 만회하는 일은 나의 책임이다. 이제 죽을 자리에 왔다” - 사암 박순(1523~1589)은 '송나라 인물에 당나라의 시풍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으며 스스로 선배에게 벼슬을 양보한 조선의 큰 선비이며, 임금도 인정한 조선의 직신이다. 삼당시인이라는 손곡 이달, 고죽 최경창, 옥봉 백광훈의 스승이다.
“백성이 있는 뒤에야 임금이 있는 것” - 성호 이익(1681~1763)은 '사농합일'을 주장한 실학자로, 지독한 메모광으로 꼽힌다. 이렇게 기록해 둔 것을 그의 제자 안정복이 정리한 백과사전격인 책이 바로 <성호사설>인 것. <성호사설>을 통해 당시 조선 사상계를 비판하고 과거에 뜻을 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학문을 배우는 즐거움에 빠져 지냈다.
“나를 알아줄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생후8개월에 글을 깨치고, 세 살에 시를 짓고, 다섯 살에 세종대왕 앞에서 시를 쏟아내 '오세문장'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러나 계유정난을 통해 왕위를 찬탈한 세조의 이야기를 듣고, 방랑의 길을 떠난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스스로 생육신이 된 셈이다.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와 <산거백영>등의 저서를 남겼다.
“나의 소망은 모든 사람들이 양반이 되는 것” - 다산 정약용(1762~1836)은 평생 쓴 책이 500권이 넘고, 시는 2,460편이나 된다. 저서가 많은 만큼 다양한 호를 사용했고, 18년간을 유배생활을 하며, 학자로서의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고, 자신을 갈고닦고, 백성을 편안히 한다는 '수기치인'의 자세로 살았다. 조선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안을 담은 <경세유표>, 형옥에 관한 법정서인 <흠흠심서>, 지방 장관이 지켜야 할 준칙을 서술한 <목민심서>가 그의 대표작이다.
“군주가 실정을 하면 백성이 군주를 바꿀 수도 있다” - 고운 최치원(857~951(?))은 12세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18세에당나라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28세에 신라로 돌아왔으나, 신라는 헌강왕, 정강왕, 진성여왕으로 무너져내리는 형국으로 성골과 진골만이 지배계급을 형성한 사회에서 최치원은 끝없는 견제를 받는다. 결국, 진성여왕이 효공왕에게 양위하자, 최치원은 가야산으로 입산하고 만다.
3장 직설(直說), 조선을 조롱하다
“서자에게도 벼슬길을 열어주소서” -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정조에게 반기를 든 '문체반정'의 당사자로 글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는 활동으로 여겼고, 사회에 대한 불만을 글로써 풀었다. 소설 형식의 <허생전>을 포함한 중국 여행기인 <열하일기>를 통해 저항한다. 우리나라 고전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언어의 마술사라고 평가한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법을 지키시게. 나는 나 나름대로의 세상을 살다가겠네” - 교산 허균(1569~1618)은 동인의 영수인 초당 허엽의 아들이고, 허성과 허봉, 허난설헌의 아우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의 저자이다. 7명의 서자들이 거사를 도모한 '칠서의 역모사건'과 계축옥사로 발전돼 허균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며,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다 간 시대의 이단아이자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로 평가된다.
“곡(哭)하지 마라! 누방에 사는 신세로서 그 죽음을 애석히 여길 것 없다” - 백호 임제(1549~1589)는 불의한 세상에 울분을 토한 허균에 버금가는 풍운아로 속리산 은둔거사인, 대곡 성운(1497~1579)의 제자이다. 당시 사림파의 문인들과는 달리 주체의식을 가진 문인이 바로 백호 임제이다.
선비, 조선 사회를 조롱하다 - 어우당 유몽인(1559~1623)은 조선 최고의 이야기꾼이고 제기 발랄한 글쟁이로 시대를 앞서간 이단아로 불리운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은 조선 사회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자 반항이라 하겠다. 저자는 신경림 시인의 <시인을 찾아서>의 조선판이라고 평가한다.
이로써, 저자 고제건은 열세 분의 직신을 거론했다. 이들이 선조대에 몰려있는 것은 선조와 광해군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신하들의 상소가 중요한 격변기였던 모양이다. 조선사를 통틀어, 학자로써 널리 알려진 인물도 있지만, 시대 상황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이들도 있는 듯하다. 현대에 이르러 이들 직신들의 모습에 주목해야할 필요가 절실하다. 우리에게도 이렇듯 진정코 나라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올바른 의견을 제시할 인물이 필요한 것이다.
2012.1.31. 역사와 정치에 한발 다가서는
두뽀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