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와 신도 - 신숙주, 외로운 보국(輔國)의 길
김용상 지음 / 나남출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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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와 신도

김용상 지음

나남

 

 신숙주, 그는 역사에서 변절자로 낙인 찍힌 문신인가? 신숙주에 대하여는 다음을 통하여 알아보면 되겠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5967  신숙주는 세조와 같은 해에 태어나, 세종시대에 집현전 학자로 등용되어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과 성종대에 사망함으로써, 6명의 왕을 섬기는 기구한(?) 운명을 살았다. 세종과 문종의 고명을 받은 다른 집현전 학자들이 사육신(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 등 여섯 사람)과 생육신(김시습(金時習)·원호(元昊)·이맹전(李孟專)·조려(趙旅)·성담수(成聘壽)·남효온(南孝溫))으로 단종을 지지할 때, 다른 선택을 했다는 이유로 변절자로 폄하되어 평가받았다고 하겠다.

세종대왕과 더불어 한글 창제에 공을 세운 문종이 왕위를 좀더 지켰으면 좋았을텐데, 운명이란 참으로 얄궃은 일이다. 어리고 유약한 단종이 왕위에 오른 후 신권이 크게 강화되고 이에 비해 왕권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양녕대군이나 수양대군등은 그저 묵과할 수 없었을 터, 세종의 아들들이 모두 뜻을 모으지 못한 것도 수양대군에게 불을 지펴준 격이 되었을 것이다.

이향 문종, (2)이유 수양대군, (3)이용 안평대군, (4)이구 임영대군, (5)이여 광평대군, (6)이유 금성대군, (7)이임 평원대군, (8)이염 영응대군이 있었고, 이 중에서 셋째인 안평대군과 여섯째인 금성대군이 단종 편에 섰다가 역모로 몰려 죽음에 이르고, 훗 날 임영대군의 아들 귀성군 이준과 광평대군의 아들 영순군 이부는 세조에 의해 관직에 등용되기도 한다. 세조는 이른바 종친을 곁에 두고 왕권강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를 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숙주와 한명회를 신임하였던 세조는 신숙주는 조아지사(爪牙之士)이며, 당나라 학자이자 명재상으로 꼽히는 위징이라 평하기도 하였다. 한명회는 '나의 장자방'이라, 양성지는 '나의 제갈공명'이라, 최항에겐 유웅(뛰어난 유학자)라, 구치관에겐 '나의 만리장성', 박원형에겐 '나의 급암(중국 전한의 명신)'이라고, 윤필상에겐 '나의 보배로운 신하'라며 곁에 두고 싶어했다.

그러나 세조 말기에 이르러서는 신숙주와 한명회의 권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어린 조카들을 등용하여, 세자인 예종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를 보면 세조가 그 아비 세종에는 못미치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찍 승하한 탓인지, 여러모로 문종은 세종과 가장 닮은 아들이었다고 하고, 안평대군의 학식이나 재주를 높이 사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역사는 원하는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듯, 세조는 권력을 쥐었을 지는 모르나, 생명은 마음대로 취하지 못하여, 첫 아들 의경세자 덕종도 원인모를 병으로 죽고, 둘째 아들 예종도 왕위에 오른 후 14개월만에 조카인 성종(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된다. 또한 세조 자신도 평생을 피부병으로 고생하다 향년 52세, 왕위에 오른 지 13년 3개월 만에 승하하고 만다. 인간적으로 조카를 폐위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고, 두 동생을 반역으로 몰아 제거하면서 얻은 왕의 자리를 기껏 13년 누리기 위함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계유정난, 을해선위, 병자옥사 등의 숱한 격변의 소용돌이는 결국 역사가 심판할 일이다.

2011.12.24.  아직 여독이 덜 풀린 두뽀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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