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 백성과 더불어 바로 서는 나라 웅진 생각쟁이 인물 14
박석무 지음 / 웅진씽크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백성들과 함께한 실학자 정약용

글 김아리 / 그림 고광삼
웅진다책
 
다산 정약용선생님께서 책속 인터뷰를 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은우기자입니다.  먼저 실학자 정약용선생님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정약용선생님께서는 (학문이 실제 생활에 쓰자고 주장한 실학학자들:) 실학자십니다.  정약용 박사님, 안녕하세요?
정약용 : 어험, 안녕하십니까?  나는 다산 정약용입니다.
정말로 반갑습니다!  그런데 박사님이 참 대단한 것이, 10세일 때 1771년에 시집이 [삼미자집]을 펴내셨다고 책에 기록되어 있답니다.  저도 10세인데 정약용 박사님은 참 대단하시군요!
정약용 : 어험,  천지부당한 과찬입니다.  저는 22세 때 성균관 박사가 되었고, 6년 후 규장각의 초계문신이 되었습니다.  정조임금께선 저를 지극히 다뤄 주셨답니다.
아! 그러셨군요.  31세 때는 화성과 거중기를 설계하시고, 2년 뒤 경기도에 암해어사로도 활약한 바 있으십니다.  이렇게 훌륭한 분이신데, 천주교 일로 귀양을 가신 일도 있으십니다.
정약용 : 저도 그 때는 매우 외롭고 힘들었지요.
저라도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정약용선생님은 다산에서 제자도 기르고.  셀 수 없을 정도의 책을 쓰셨습니다.  짝짝짝~~  그리고 57세 때는 [목민심서]도 완성하고 고향으로 돌아오십니다.
정약용 : 허허허, 그렇습니다.
하하하.  그러면 이제 묘 속에서 좀 쉬쉬지요.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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