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조봉암 선생이 구속되면서 조용수의 인생은 급격하게 바뀐다. - P37
자금을 끌어모은 조용수는 혁신계신문 「민족일보」를 창간했다. - P38
박정희와 김종필은 조용수의 죄목이 그가 신문 논설에서 평화통일을 주장한 것이라고 밝혔다. 조총련계 자금으로 신문을 만들면서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통일을 선전했다는 것이 혐의 내용이었다. - P39
1964년 8월 14일 중정부장 김형욱은 "좌익 계열 정당인 인민혁명당이 북괴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 지하조직을 구축해 국가를 변란하려 했던" 사건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 P45
완벽하게 기획된 올가미 같은 사건, 그게 바로 ‘동백림 사건‘이었다. - P49
생전 지독한 고문 후유증에 시달렸던 문인 천상병 - P51
억울하게 오랜 시간 고통받았던 이응노 - P53
이들 대다수는 김종태 등의 실체와 북한 연루 사실을 몰랐고, 심지어 ‘통일혁명당‘이라는 조직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 P57
"이 독재국가를 끌고 가는 원부가 바로 중정이요. 그 책임자 김형욱은 민족반역자다. 이건 날 죽이려는 정부의 음모다." - P61
정부는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용공 조작 사건을 하나 기획했다. - P62
을사오적에 오늘날의 도적들이라 불리는 재벌, 장차관, 국회의원, 군 장성, 고급공무원 등 사회의 다섯 악폐 계층을 빗대어 신랄하게 비판한다. - P66
판사들이 뽑은 가장 부끄러운 판결 1위 - P73
유신정권은 사형 집행된 시신조차 가족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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