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위에서 - P90

*
나는 ㅁ 위에 있으면 남이 된다

텅 빈 방 하나만 있어도
사람은 누구나 나 아닌 남처럼 낯설어진다 - P90

*
밑의 ㅁ에 사는 사람이
시끄럽다고 인터폰으로 연락해 왔다

나또 노래 부르며
잠시 남이 되었나 보다 - P90

바람개비 정원 - P91

나는 매일매일 바람개비를 심어

꽃이랑 달라, 해를 봐도 해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아 해를 보겠다고
밤새 열심히 모은 이슬로 눈동자를 만들지도 않아

비, 비, 비가 띄어쓰기하듯 내리는 날 좋다고 세수를 하지도 않아

내가 바라는 건 바람이 전부니까
빨간 바람개비, 키 큰 바람개비, 비누 냄새 나는 바람개비
사랑해라고 써 놓은 바람개비, 바보라고 써 놓은 바람개비
귀퉁이가 조금 찢어진 바람개비
날개 하나가 없는 바람개비
깡마른 수수깡 한 발에 힘을 주고 서 있는 이 모든 바람개비들

처음에는 바람개비 혼자였는데 - P91

지금 여기는 바람개비 정원
이제 곧 바람개비 마을
조금 더 있으면 바람개비 도시
일 년이 지나면 바람개비 나라
십년이 지나면 바람개비 행성
백 년이 지나면 바람개비 우주가 될까?

너희들이 하는 일은 두 가지
자기가 보고 싶은 곳을 바라보기
바람을 기다리기

그러다가 하루쯤 바람이 불잖아? 그런 날은 돌아, 조금씩 돌다가 확 돌아, 아주 돌아 버려
신이 나니까 신이 훨훨 날아오니까
제가 바람개비라는 걸 잊고 내가 사람이라는 걸 잊고
그저 모두 함께 바람을 입고
빙글빙글 돌고 돌면서 돌고, 돌고, 돌고, 돌고, 돌고, 돌고, 돌다가 - P92

바람에 뽑혀서 훨훨 날아가 버려도 좋아

바람이 분다면, 바람이 온다면, 내가 바랄 수 있다면 다 바람
그게 오는 거야, 나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보내 버릴 바람이 오는 거야 - P93

해설 - P94

마음을 재다 보면 귀가자주 간지러웠어 - P94

고명재(시인) - P94

마음의 수학 - P94

넓이와 깊이 - P96

정답 없애기 : 모든 것을 딱 잘라 말하지 않기 - P101

이상한 셈법: 나눠도 더해도 빛나는 얼굴 - P108

시인의 말 - P116

2022년 7월
김준현 - P117

"초록을 더 진한 초록이게
노랑을 더 빛나는 노랑이게 해 주기를"

있는 그대로 서로를 보듬어 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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