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분 정도 지나서
고구마 속으로 들어가는 쇠젓가락
그곳에서부터 노랑이 뜨거운 숨을 쉬듯이
살아 있니, 살아 있니
그런 연락처럼
나도 모르는 마음을 찌른다는 것
그런 연락이 톡, 톡
나를 울리는 알림음이
어둠 속에서 견뎌 온 고구마의 삶이
삶은 고구마의 부드러움이
이제는 먹을 수 있는 마음이
세상 밖으로 드러난다는 것 - P11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면
입에서 고래가 튀어나올 것 같아
바닷속에서 숨을 참았던 고래가 평!
분수처럼 숨소리가 하늘 높이 솟구치는 기분
등대를 세우는 기분
참았던 걸 다 쏟아 내 버려!
정민이가 굽은 내 등을 지느러미로 쓰다듬어 주더라
노래보다 그게 훨씬 좋았어
정민이랑 나랑
둘이서 세상 끝까지 헤엄치는 돌고래처럼
우우 우우 우우 우우 우리 둘이
노래가 되었어 - P12
밖에서 매미가 울어도 여기는 겨울
밖에서 초록 잎이 연둣빛이 되어도 여기는 겨울
밖에서 수박씨 툭, 툭 뱉는 소리가 나도 여기는 겨울
밖에서 반소매를 입어도 나는 털모자에 긴소매 여기는겨울
밖에서 장대비가 쏟아져도 여기는 함박눈이 오는 겨울
네가 내게 주고 간 겨울
잊고 있다가도 한 번씩 나를 뒤흔들면
쌓인 눈이 솟구쳐
온 세상이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
나 여기 있어, 외쳐도
너를 잊고 지내다
어느 날 발견한 그 겨울
먼지 쌓인 스노볼 겨울 - P13
모든 일을 끝내고 몇 년 전 우주에 버려진 인공위성이궤도를 이탈해 지구 대기권으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인공위성이 지구 대기권으로 진입할 경우 높은 열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겠지만, 일부 불에 완전히 타지 않은 인공위성의 파편이 지구로 떨어져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왜 돌아오는 걸까
사람들은 인공위성이 태어나자마자
어두컴컴한 우주로 보냈는데
지구에서 쏟아내는 말들을 다 받아서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기로
전해 주는 인공위성, 그러나
정작 인공위성에게 건네는 말은 한 마디도 없었는데 - P14
몇 년 후, 수명이 다 된 인공위성은
잊힌 채 버려졌지
홀로
제 외로움만큼 큰 원을 그리며 지구를 돌아도
아무리 빛을 내도
아무도 바라봐 주지 않았는데
왜 돌아오는 걸까
제 몸이 부서지면서까지
온 힘을 다해서 지구로 돌아오는 건
어쩌면 누군가를
지구의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어서일지 몰라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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