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덴, 부활의 기적을 이룬」 - P244

나의 드레스덴 여행지 - P246

가해자의 상처 - P247

체코 접경지 수데텐란트(Sudetenland, 보헤미아의 독일 국경 인접 지역) - P248

역사적 구시가 - P249

드레스덴의 역사적 구시가 - P250

엘베계곡의 길 - P252

엘베를 따라 북진하는 기차에서 본보헤미아의 지형은 우리나라 충청북도와 비슷했다. - P253

사랑의 성모교회 - P254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 1483-1546) 동상이 있는 노이마르크트(Neumarkt, 신시장)‘ 광장 - P255

마르틴 루터 동상, 성모교회 앞에서 광장쪽을 보고 있다. - P256

성모교회는 내부에 날카로운 직선이나 뾰족한 모서리가 없었다. - P257

집은 건축주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 - P258

성모교회 내부, 날카로운 모서리나 직선이 보이지 않는다. - P259

부활의 서사 - P260

성모교회, 벽면의 검은 점은 폭격을 맞은 돌이다. - P261

게오르게 베어는 작센의 ‘토종 건축가‘였다. - P260

근본적 해결책 없이 끝없이 보수공사를 했던 부실 건축물은 1945년 2월 13일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최후를 맞았다. - P262

브륄 테라스 - P263

폭격에 불탄 사암, 성모교회의 죽음을 증언한다. - P264

첨단 기술을 적용한 재건축을 비판한 이들이 있었다. - P265

사회주의 건축양식 - P266

그 집들은 사회주의체제의 문화 유전자를 지닌 ‘화석‘이었다. - P267

알트마르크트는 프라하의 틴과 비슷한 곳이다. - P268

‘자본주의 건축양식‘을 자랑하는 상업지구. - P269

이 교회는 ‘코번트리 못 십자가(Coventry Cross of Nails) 공동체‘ 회원이다. - P270

문화궁전의 외벽에는 사회주의체제의 유산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초대형 벽화가 있었다. - P271

‘문화궁전‘의 집단창작 벽화 - P272

중세의 신도시 - P273

역사적 구시가의 밤 풍경 - P274

성안 신시가 - P275

역사적 구시가 - P276

박물관 덕후 - P277

왕궁 마구간 담벼락에 마이센 도자기로 제작한 ‘귀족들의 행진‘. - P278

구시가에서 성모교회 다음으로 사람이 많은 곳은 ‘빙어(Zwinger)‘였다. - P280

한낮의 태양이 작열하는 츠빙어. - P281

‘테아터플라츠 (Theaterplatz, 극장 광장)‘ - P282

고트프리트 젬퍼(Goufried Semper, 1803-1879) - P282

젬퍼가 재건한 오페라하우스는 폭격에 치명상을 입었다. - P284

젬퍼오페라하우스의 전면부 - P285

원래는 16세기에 만든 방어용 군사시설이었다. - P286

엘베강을 따라 들어선 브륄 테라스. - P287

정력왕 아우구스트 - P288

공정왕 아우구스트의 좌상, 눈여겨보는 이가 없었다. - P289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데어 슈타르케 (Friedrich August der Starkc, 1670-1733)‘ - P290

국제사회에서 왕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기까지 했지만 정력왕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예순셋 나이에 당뇨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 P291

성안 신시가 - P292

‘황금기사(Goldner Reiter)‘ 동상 - P293

정력왕 아우구스트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성안신도시‘ 초입의 황금기사. - P294

‘광대의 집 기념 동상(Narrenhaus-denkmal)‘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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